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
궈징밍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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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청소년 문제의 소설이란 말에 으레 그렇듯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이른바 '불량학생(?)'으로 일컬어지는 학생들의 일탈 문제를 다룬 소설로 생각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들 청소년의 가정은 결손 가정이거나 환경적으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학교 생활에 부적응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일진'이라고도 하고, 학교를 벗어나면 대부분 폭력 조직이나 지하 세계에 몸담게 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사회 문제로 비화하기 때문이다. '어둡고 칙칙한 동굴 속' 같은 「프롤로그」가 지나면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는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그 일들은 창백하고 적요한 어느 겨울날 시작되었다.”

이야오와 치밍은 한 골목에서 자라고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이야오는 이혼한 아빠에게 버림받고 따뜻한 보살핌은커녕 거친 욕과 매타작을 일삼는 엄마와 살아가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다. 반면 치밍은 부모와 교사들, 또래 여학생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우등생이다. 하지만 치밍은 이야오에게 매일 아침 따뜻한 우유를 건네고 등하교를 같이 하는 것은 물론 늘 혼자인 그녀의 곁을 지킨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르는 감정이 엇갈린다.

 


 

이 소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는 학교 폭력과 왕따 등 학원 문제가 주를 이루긴 하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지 잘 표현해 사회 고발 소설의 성격을 띤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거진 학교폭력 문제는 우리 사회를 경악시켰다. 언어폭력, 폭행, 지속된 괴롭힘, 집단 따돌림 외에도 사이버 폭력 등 한층 다양해진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학교폭력 가해자의 태도가 특히 그랬다. 반성은커녕 아무 일 없다는 듯 뻔뻔한 모습은 마땅히 보여야 할 가해자의 태도가 아니었다. 잘 포장된 이미지로 가까운 곳에서, TV에서 우리의 눈과 귀를 속여 온 것이다. 그들이 거짓된 모습으로 우리를 기만하는 동안 학교폭력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는 어떨까?

다행히 상처를 극복하고 평안한 삶을 되찾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극심한 공포와 분노 속에서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아물지 않는 상처에 아파한다.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보다 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중국이다. 이젠 세계 2위의 경제대국(G2)으로 올라섰고,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를 지속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말이다. 그곳도 경제 개방화로 사는 것은 나아졌지만 급속한 경제 발전의 뒤안에 남겨진 여러 문제들에는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이 소설이 사회 고발의 성격을 띈다는 독자의 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주인공 열일곱 살 소녀 이야오와 같은 골몰에서 함께 자란 동갑내기 소년 치밍 그리고 쌍둥이 남매 구썬시와 구썬샹의 슬픔으로 가득 찬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야오는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마음고생을 하다 유산을 결심하고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치밍을 좋아하여 이야오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탕샤오미에게 들키고 만다. 그때부터 탕샤오미는 교묘하게 이야오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야오는 돈만 주면 아무하고나 잔다는 소문을 퍼뜨리는데, 구썬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이야오를 찾아와 돈을 건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건 이후 이야오와 구썬시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구썬시의 쌍둥이 누나 구썬샹은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타고 학생회 일을 하는 우등생이다. 그녀와 치밍은 누가 보더라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자친구가 생긴 치밍을 바라보는 이야오는 마음이 복잡하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치밍 대신 자신을 지켜 주는 구썬시에게 마음을 열고 기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은 이야오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반복되는 학교폭력, 가정불화, 마음을 멍들게 만드는 사소한 오해들이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고, 아주 잠깐의 평범한 일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책을 읽을수록 화가 치밀고 눈물을 멈출 수 없는 이 소설은 아주 잠깐 동안의 아주 작은 행복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잔인하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좀 더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필요한 소녀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을 한꺼번에 모아 놓은 듯하다. 소설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음울하다. 현재 화자가 위치한 상황이나 장소가 겨울로 접어들어 가며 혹독한 추위가 예고된다. 기억은 햇살 아래 밝은 세상에 머물지만, 그곳을 멀고 멀다.

 

골목 안으로 가득 찬 새벽안개가 조금씩 밝아 오는 등불에 흐릿한 덩어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새벽, 차갑게 푸른 하늘 위로 여전히 남아 있는 별빛이 보였다.

며칠 사이 기온이 빠르게 떨어졌다. 입김이 뿜어져 나오고 곳곳에 두꺼운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억 속에 멈춰 있는 곳은 멀고먼 햇살 아래 밝은 세상이었다.(p.10)

 


 

이혼한 뒤 본심을 숨긴 채 욕설을 일삼는 엄마에게 늘 얻어맞는 이야오의 얼굴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다. 학교에는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탕샤오미가 있다. 그 무리에게 시달리는 건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닐 정도다. 그런 이야오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치밍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극명하게 달라진 집안 환경과 사소한 오해가 쌓여 둘을 조금씩 갈라놓기 시작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들 법하다. 왜 더 노력하지 않는 거지? 왜 당하고만 있는 걸까? 어떻게 해서든 끔찍한 현실을 벗어날 방법이 있을 텐데. 이 소설이 잔인한 점이 바로 여기 있다. 철저하게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소년 소녀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사회.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무관심.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현실. 소설은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사실적이다. 그래도 의구심이 든다면 관련 뉴스와 자료를 살펴보기를 바란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는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이야기의 축소판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것이다. 독자가 사회 고발이라는 이유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

이렇게 활기찬 생명력이라니.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어떤 생물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커다란 고통을 당하고 황산에 부식되고 끓는 물에 삶아져도 살 수 있단 말인가?

왜 그런 고통을 견디는 걸까?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p.276)

 


 

이 작품은 제목을 보면 누구나 예상하듯이 슬픔으로 가득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눈물이 마를 즈음, 여전히 가슴은 아릴지라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울고 있는 이야오와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도와주지 못해도 우리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까이 있는 단 한 명, 당신의 관심과 사랑이다. 당신이 내민 작은 손길은 슬픔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건져 줄 따뜻한 햇살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이 '청춘소설' '청소년소설'로 분류된다고 결코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더욱이 그 나이에 한참 빠져드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은 이 소설에 없다. 백마 탄 왕자 같은 남학생과 신데렐라형 여학생 사이의 조합은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제재라 해도 결국은 이야기하는 사람의 능력을 빌려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미 수면 위로 떠오른 어둠이다.

 

"잔인한 묘사도 적지 않다.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엄혹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는 시작하자마자 저제를 관통하는 색감을 드러낸다. 납과도 같은 회색, 어두운 파란색 그리고 검은색. 간혹 틈을 타고 나오는 흰색마저 봅시도 차갑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눈앞에 펼쳐진 상하이의 골목골목은 마치 그 사이를 걷고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고, 골목 양쪽에서 들려오는 서로 다른 소리들, 거친 욕설과 뭔가 깨지는 소리의 뒤를 잇는 절망에 찬 흐느낌은 다른 한쪽에서 들리는 따뜻한 위로를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만들어 버린다.(p.433)

 


 

그래도 이야오라는 인물 창조에는 작가의 작품의 질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인물 창조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희망 없는 어둠에서 그녀를 구해낼 수 있을까. 치밍의 일거수일투족은 애초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어찌되었든 '슬픔'이라는 두 글자로 시작하는 이야기 아닌가. 그의 친절함, 그의 도움은 단지 흑과 백의 대비를, 갈수록 멀어지는 거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 뿐인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소년의 발걸음은 종착역에서 더 멀어질 뿐 아니라 이야오는 약간의 온기를 느낄 때마다 하릴없이 더욱더 차가운 곤경에 빠지는 것이다.(p.434, 뤄뤄(落落)

 

저자 : 궈징밍

1983년 6월 6일 쓰촨성 자공시 출생. 고등학생 때 ‘사차원’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여, 중국 최고의 대중문학 잡지 《멍야》가 주최하는 신개념문학상 대상을 2001년, 2002년 2회 연속 수상했다. 2003년 출간해 200만 부 이상 판매된 소설 《환성》 이후 《하지미지》 《소시대》 《작적》 등을 발표하면서 중국의 빠링허우(八零后, 1980년대 출생자) 작가를 대표하는 한 명으로 자리했다. 2004년 작가 사무실 ‘섬’을 설립해 무크지를 발간했고, 2013년 영화 《소시대》를 연출하면서 제16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 《슬픔이 역류하여 강이 되다》가 영화화되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작가, 편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상하이최세문화발전유한공사 회장과 총책임자를 맡고 있다.

 

역자 : 김남희

전북대 중문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고 칭화대학에서 1980년대 중국 사상문예계의 번역 실천과 재생산의 양상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등 진융 소설 번역에 참여했고, 《진상제일교귀발》(공역), 《나의 할아버지가 탈옥한 이야기》 《산이 울다》를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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