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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세계
고요한 외 지음 / &(앤드)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의 제목 『2의 세계』가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이 책은 제목부터 조금 이질적이다. 책 소개글이나 직접 읽지 않은 사람들은 '판타지' 문학쯤으로 생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들은 숫자 '2'가 주는 의미나 상징성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최고'를 의미하는 '1'도 아니고 가장 안정된 숫자 '3'도 아닌 2를 갑자기 들이밀면 그렇다. 굳이 좋은 생각으로 찾자면 '짝수' '둘이 함께'라는 상징성으로 보기 알맞다. 컴퓨터의 2진법도 '0'과 '1'의 조합이지 숫자 2가 없는 것 아닌가? 잠깐 출판사 편집자의 말에 귀 기울여본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짐작은 가능하지만 도저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내일을. 그런 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 삶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끌어들이는 통로가 아닐까. 삶을 1이라 본다면, 그 문을 두드리면 또 다른 세계, 제2의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겉으로 보이는 삶 너머의 이야기 말이다." 겨우 이해가 가지만 설득력은 조금 약한 듯하다. 그러나 편집자의 의견을 존중하며 읽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고집대로 읽어나간다면 작가들의 문학에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울 테니.
이 책 『2의 세계』는 단편소설 앤솔러지다. 숫자 ‘2’라는 테마로 일곱 명(고요한, 권여름, 김혜나, 류시은, 박생강, 서유미, 조수경)의 작가가 열어 보이는 세계는 현실적이면서도 비밀스럽고, 진지하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커튼을 열어젖히면 이내 보이는 바깥세상처럼,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볼 수 없었던 한 겹의 막을 걷고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줄 것이다. 이젠 우리가 못 보던 '2'의 세계로 여행을 간다. 우선 앤솔러지 문학에 대한 이해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앤솔로지(Anthology) 문학이란 한 작가의 여러 단편이나, 특정한 주제에 따라 여러 작가의 단편을 모은 작품집을 일컬을 때 쓰이는 명칭이다. 어원은 그리스어로 꽃다발이라는 뜻의 안톨로기아(anthologia)라고 한다.
본래는 문학작품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문학작품 외의 것도 각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주제에 따라 한데 모은 작품집이라면 앤솔로지로 부르게 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는 것. 즉 편집자가 기존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모아 다시 수록한 문학 작품집으로, 우리말로는 선집(選集)이라고도 한다. 한 작가의 작품 가운데서 선별해 엮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쓴 글을 엮은 앤솔로지 문학 작품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앤솔로지 문학은 신인 작가와 신생 출판사의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반가운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독자로서는 무척 반갑다. 판타지 문학이 대세이고 작품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듬뿍 지닌 소설들이 실렸기 때문이다. 아날로그라고 해서 옛날 민주와 산업화 시절 서민의 애환을 담았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쳐다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뜻이다. 7명의 작가들 중에는 독자로서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도 있지만 잘 모르는 작가들이 태반이다. 독자의 독서가 부족한 탓이리라.
삶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 삶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모르는 일들. 둘 중에 어떤 게 더 비밀스럽고 신비롭다고 느껴지는가? 물론 후자 쪽일 것이다. 일곱 편의 소설은 우리 삶에 펼쳐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2’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고요한의 〈모노레일 찾기〉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어느 횟집에서 만난 전 여자 친구 주변을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마음을 ‘모노레일’로 표현한다. ‘두 개’의 선로가 있어서 영원히 하나 되지 못하는 사랑을 형상화한 것인 듯하다. 저자 고요한은 「작가의 말」을 통해 "십여 년 만에 다시 월미도에 갔다. 그사이 월미도에는 모노레일이 생겨 있었다. (...) 바닷가를 돌면서 이곳에 같이 왔던 당신을 떠올렸다. 세월은 바람과 같아서 당신은 바람처럼 떠나갔다.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은 시간이 가면서 소멸되어 버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기억의 파편뿐이다."고 적었다.
권여름의 〈시험의 미래〉는 파이널 점독관으로 채택된 구은열이 시험을 점독하는 상황을 그리며, 보이는 세계를 통제하는 또 다른 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방 역시 통제하는 ‘제2의 방’이 있다. 시험 출제위원들의 문제를 검토하는 검토자를 인물로 내세우며 시험의 시험, 제2의 시험을 재료로 카운트되지 않는 그 비밀을 재밌는 포인트로 잡은 소설이었다. 주인공구은열이 아내와 나눈 대화에는 많은 생각을 하는 한마디가 있다.
"자기야, 시험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심드렁하게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점독을 할 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이 세상 자체가 시험이기 때문이야."(p.70)
저자는 「작가의 말」을 보탠다. "'2'라는 숫자는 긴장감과 신비함을 품고 있다. '1'과는 확실히 다르다. 앤솔러지 테마를 들었을 때, 흥미로웠던 건 '2'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느낌, 매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긴장감과 신비로움. 보이지 않음. 숨김. 그런 이미지들이 소설을 구상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김혜나의 〈코너스툴〉은 ‘코너스툴’처럼 자신이 그 사람의 쉼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정작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반’ 작가의 사랑을 편지로 그려낸다. 류시은의 〈2차 세계의 최애〉는 아이돌 쇼케이스에서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현실과 달리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있는 ‘2차 세계’ 그리고 ‘덕질’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면서도, 인생에 있어 진짜 즐거움이 무엇인지 질문을 남긴다. 박생강의 〈2의 감옥〉은 퍼펙트 도플갱어를 만나 ‘2의 감옥’에 떨어진 2% 부족한 남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0)천공의 세계에 사는 존재를 만난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코너스툴〉은 책방 이름이다. 저자는 책방 이름인 이곳과의 인연과 작가 자신의 첫 책방 강연 경험을 묶어 하나의 형상화된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아마 꽤 강렬한 인상이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책방의 기억보다 책방 주인에 대한 이미지가 작가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자의 상상력은 우리 독자들 앞에 재밌는 이야기로 나와 반갑다.
"그 이듬해 동두천의 유일한 동네책방이던 코너스툴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어 첫 소설집을 토대로 강연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가 본 도시에서 처음으로 해보는 책방 강연이었습니다. 그 강연을 계기로 다음 해에도 코너스툴에서 소설 낭독회를 가졌고 책방이 사라진 뒤에도 읽기와 쓰기를 이어가는 회원님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모이기도 했습니다."(p.127)
서유미의 〈다음이 있다면〉은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게 된 미진이 자신과 닮은 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담아내며, 미래가 불투명하고 나만 정지된 상태인 것 같을 때 ‘다음’이 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수경의 〈이야기 둘〉은 죽음과 만남을 통해 긴밀히 연결된 ‘두 개의 시공간’을 그린다. 두 가지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죽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상태이고, 그 속에서 켜켜이 쌓인 그리움이 또 다른 형태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삶을 산다는 건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을 해도 그 끝은 예상할 수 없고,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며, 오늘은 괜찮아도 내일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기대감이 생기는 것일 테다. 눈에 보이는 삶 너머의 세상, ‘2의 세계’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다. 1(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래서 더욱 삶은 신비롭기만 하다.
우리는 오랜 시간 팬데믹을 겪으며 ‘내년엔 괜찮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2022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막상 2022년을 살면서도 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상황의 익숙함만이 삶에 자리해 있다고 느낀다. 그런 우리에게 『2의 세계』는 잠시나마 우리의 눈을 돌리고 이렇게 위로해줄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오늘이 또 다른 세계로 이끌 통로라고. 1의 뒤에 ‘2’가 있듯 그 후의 세계도 있을 것이다. 숫자 2의 형태처럼 구불구불하고 또 다른 고통과 아픔, 슬픔의 순간과 직면할 수 있지만, 분명 즐겁고 행복한 길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고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그래서 인생을 살 만하다고 하지 않던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미지의 세계에 발을 푹 담고 가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데에 위로를,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그 세계를 매일 경험하고 있는 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저자 : 고요한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2022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에 단편소설 <종이비행기>가 번역 소개됐다. 소설집 《사랑이 스테이크라니》, 장편소설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를 출간했다.
저자 : 권여름
1982년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작은 섬, 식도에서 태어나 정읍에서 자랐다.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제1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 잔잔한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 언제 어디서든 소설을 ‘쓰는 중’인 작가가 되고 싶다.
저자 : 김혜나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장편소설 『제리』로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청귤』, 중편소설 『그랑 주떼』, 장편소설 『정크』,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이 있다. 제4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요가 지도자 과정을 이수한 뒤 인도 마이소르에서 아쉬탕가 요가를 수련하고 요가 철학을 공부했다.
저자 : 류시은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자 : 박생강
1977년 북한방송 전파가 종종 흑백텔레비전에 잡히던 경기 파주 금촌에서 태어났다. 2005년 단군신화 설화를 패러디한 호랑아낙을 등장시킨 장편소설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본명 박진규로 등단했다. 2014년 장편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출간하면서 박생강이란 필명으로 문학 활동을 새로이 시작했다. 생강이란 필명은 생강이 몸에 좋다는 어떤 건강 서적의 표지를 서점에서 보고 충동적으로 정했지만, 성자saint와 악당gang의 혼성, ‘생각의 강’ 같은 심오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대한민국의 한물간 상류층들이 주로 드나드는 멤버십 피트니스 남자 사우나의 사우나 매니저로 잠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장편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로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엔터미디어를 통해 대중문화 칼럼 [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를 연재했다.
저자 : 서유미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화려한 올가미에 얽혀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을 이야기한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2007년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을, 서른 살을 지나서도 여전히 철들지 못하고 무엇 하나 정해진 바 없이 방황해야만 하는 서른셋 여자의 일상을 그린 『쿨하게 한걸음』으로 2007년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틈』, 『홀딩, 턴』을 썼다.
저자 : 조수경
글 · 그림 · 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과 동물들을 사랑하면서 살다 가고 싶은 소설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젤리피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 장편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그들이 사라진 뒤에》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