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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마지막 서점
매들린 마틴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서재 / 2022년 4월
평점 :
「1939년 8월, 영국 런던」이라는 소제목 아래 "그레이스 베넷은 언젠가 런던에서 살게 될 날을 매일 꿈꿔 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런던이 그녀에게 유일한 선택지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매우 일상적인 일을 아무 감정 없이 주인공 이름과 장소를 밝히고 있다. 다만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어구에서 독자들은 잠깐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이후 전개된 문장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특히나 이런 전쟁 직전 상황에." 이어 "열차는 패링던 역에 정차했다." 다시 일상적인 분위기다. 도시의 세련된 스타일의 옷차림, 주인공 베넷은 자신이 살던 시골 노포크의 트레이튼과 비교하며 읊조린다. "마음속에서 긴장과 열망이 동시에 요동을 쳤다." 주인공 베넷이 드디어 꿈에 그리던 런던 생활을 위해 패링던 역에 도착하는 상황이다.
그레이스는 『여성과 여성의 삶』이라는 책을 읽으며 사투리를 교정하려고 노력했고 함께 런던에 도착한 친구 비브는 광고에 나오는 모델들처럼 화장법까지 바꿨다. 런던 시내 중심을 벗어나자 광고 전단지마다 남자들에게 군 입대를 재촉하는 문구와 함께 거리 곳곳마다 '공습 대피소'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1차대전 참전으로 남편을 잃고 외동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지인 웨더포드 아주머니의 집에 도착한 그레이스와 비브,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독일 나치군의 폭격이 임박해질 시점에 그레이스는 방공호 바로 입구에 위치한 서점에 찾아간다. 그레이스와 프림로즈 힐 서점의 첫 번째 만남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잘 되리라는 원대한 기대를 품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자신을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렇듯 유럽이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 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직전 런던의 모습이 간략하게 묘사된다. 런던 1939년 8월의 모습이다. 독일은 이미 전쟁 준비를 마치고 곧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2차대전의 시작이니까 1939년 9월이다. 그러니까 독일의 폴란드 침공 한 달쯤 전의 영국 런던의 모습이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밝혀지지만 독일은 전쟁이 진행되면 러시아, 영국도 모두 지배하기를 원하고 전략적 계획표에 따라 독일의 영국 침공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전쟁 후 밝혀지지만 윈스턴 처칠이 영국 총리에 취임했을 때, 런던은 공습 위기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마지노선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유럽 대륙에 파견된 영국군도 독일 기갑사단에 밀려 퇴각을 거듭했다. 영국 정보부는 전력 면에서 독일 공군이 영국 공군보다 월등하게 우세하다고 자체 판단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처칠은 '피와 땀'을 언급하며 항전 의지를 분명히 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처칠은 총리에 취임한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육지와 하늘, 그리고 바다를 가리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서 싸우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급박한 상황인데도 당시 영국 국민들은 전쟁이 터지더라도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희망적인 낙관론을 가졌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낸 후 '제2차 세계대전 런던 대공습(THE BLITZ)에서 살아남은 서점들에 영감을 받은 소설'이라고 밝혔다. 또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감사의 말」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소설을 쓰는 것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고 말한다. 이렇게 완성된 『런던의 마지막 서점』은 시대를 뛰어넘어 전쟁으로 인한 상실, 사랑 그리고 문학의 영속적인 힘을 표현한 수작(秀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히틀러가 무력으로 유럽 전역을 휩쓸자 런던은 전쟁 준비에 착수한다. 그레이스 베넷은 도시에서 살게 될 날만을 꿈꿔 왔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습 대피소와 등화관제 커튼뿐이었다. 게다가 런던의 중심부에 위치한 먼지 자욱한 책방, 프림로즈 힐 서점에서 일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공습이 점차 격렬해지며 등화관제와 공습에 시달리는 동안, 그레이스는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한데 묶어주는 이야기의 힘을 발견한다. 이는 그녀가 단 한 번도 꿈꿔 본 적이 없었던, 전쟁으로 인한 가장 어두운 시기마저도 압도해 버리는 강력한 힘이었다.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으로 인해 살고 있는 터전에서 전쟁의 참상을 맞닥뜨린 런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절체절명의 전쟁에 휩싸인 사람들이 그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특히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던 문학의 힘이 이루어낸 기적을 사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무차별한 폭격 속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런던의 마지막 서점』이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주었는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레이스가 찾아간 프림로즈 힐 서점은 폭격에 대비해 이층까지 검게 칠해져 있었다.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서점 내부에 책들은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백발에 짙은 눈썹을 한 우둥퉁한 체구의 서점 주인 에번스,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레이스 말을 단번에 거절한다. 도시 전체에 짙게 드리워진 전쟁의 기운, 당장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그레이스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긴 웨더포드 아주머니는 내일 당장 8시까지 서점으로 출근하라며 보조직원으로 채용된 사실을 알려준다. 서점 주인 에번스가 부인을 처음 만난 곳 '프로림즈 언덕' 그곳에 자리잡은 서점에 첫 출근을 한 그레이스는 딱 6개월만 버텨보겠다고 다짐한다.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들을 흡착한 책더미를 정리하기도 전에 손님들이 찾아오고 그레이스는 난생 처음 듣는 책 제목에 당황한다. 그레이스는 손님이 원하는 존 딕슨 카의 <검은 안경>을 찾는데 혈안이 되고 그녀에게 책의 위치를 알려주는 남자 손님 덕분에 무사히 책을 판매하게 된다. 매력적인 녹색 눈을 반짝이는 멋진 외모의 남자 손님의 이름은 조지 앤더슨. 서점 수습 사원 그레이스가 앞으로 어떻게 서점을 만들어 갈지 궁금하다는 말을 하며 떠난다.
폭격이 수일 내로 임박했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터져 나오고 런던 시내의 아이들은 정부의 대피 조치로 시골로 이주한다. 등화관제 명령이 내려지고 도시 전체는 암흑으로 변해 버린다. 아이들이 떠난 도시. 어둠으로 가득 차버린 도시의 서점에 찾아오는 손님은 없자 서점 주인은 그레이스에게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온 도시에 공습 임박 경보음이 울려 퍼진 날 그레이스는 서점으로 달려가 등화관제용 커튼을 서점에 달면단 한 권이라도 손님에게 책을 팔기 위해 진열대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아침 11시 15분 영국 수상 처칠은 특별 담화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한다. 마침내 독일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 영국, 그레이스와 비브는 웨더포드 아주머니와 그의 외아들과 함께 생필품을 챙겨서 방공호로 대피한다. 방공호로 대피하는 시민들과 달리 서점 주인은 어디에도 대피하지 않은 채 책더미 속을 헤집으며 책들을 정리하고 있다.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의 이동이 줄어드는 시기에 서점으로 찾아온 손님 조지 앤더슨은 그레이스에게 찾아달라며 책 목록이 적힌 종이쪽지를 건넨다. 그레이스가 종이 쪽지에 적힌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두 도시 이야기, 프랑켄슈타인을 찾아내는 동안 조지 앤더슨은 『오만과 편견』 책을 슬쩍 끄집어 낸다 그가 말하는 "독서란 마치 기차나 배를 타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아요. 새롭고 놀라운 세상이 펼쳐지는 거죠. 당신이 태어나지 않을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의 관점에서 다채롭게 색칠한 것을 볼 기회가 되기도 해요. 실제로 실패를 겪지 않고 배울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
책이란, 무언가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어떤 빈 공간이 있는 곳을 간접적인 경험으로 채워주는 곳, 서점 〈프림로즈 힐〉은 절체절명의 전쟁에 휩싸인 순간에도 문학의 힘을 믿고 마법 같은 세상, 희망으로 가득 찬 내일을 꿈꾸는 곳이 된다. 조지 앤더슨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책 『콘테크리스토 백작』을 그레이스에게 선물로 준다. 남자들은 전쟁터로 떠나고, 도시 곳곳에 무시무시한 폭격으로 불에 타오르고, 사람들은 방공호에서 라디오에 귀 기울이고 책을 읽었다. 대 공습이 점차 격렬해지며 등화관제와 공습에 시달리는 동안 그레이스는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를 한데 묶어주는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공포,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버린다. 유럽을 강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저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바랐던 런던 시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야 할 곳에 무차별 폭탄이 떨어지는 참혹한 시절을 겪게 된다. 몇 년에 걸친 세월 동안 매일매일 방공호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사람들은 무기력한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그 연결고리는 전쟁 중에도 문을 열었던 서점이고, 책을 읽어주는 여인과 책을 찾는 독자들이었다.
이 책은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군인이 주인공이 아니라 런던 한복판에서 폭탄을 마주한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집, 직장, 학교, 백화점, 공원 등 우리의 일상을 파괴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무지, 공포 그리고 이겨내려는 의지와 열망 등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해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결코 좌절하지 않고 힘을 합쳐 딛고 일어나는 인간애를 잊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 이웃들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만들어 내는 진정한 휴머니즘을 만날 수 있다.
“독서란……”
그의 눈썹이 가운데로 몰리더니 이마에 들어갔던 힘이 다시 스르르 풀렸다.
“마치 기차나 배를 타지 않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아요. 새롭고 놀라운 세상이 펼쳐지는 거죠.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곳에서 살아 보는 것이고, 다른 누군가의 관점에서 다채롭게 색칠한 것을 볼 기회가 되기도 해요. 실제로 실패를 겪지않고 배울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모두가, 무언가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어떤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그 무언가란 책이고 책이 권하는 모든 경험들이랍니다.”(p.102)
“네 멋진 서점은 어떻게 되고 있어?”
그레이스의 생각이 서점으로 향했다. 세련되고 깨끗한 그녀의 서점. 책이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는 곳. 책장은 폐품으로 만들어서 짝이 맞지 않지만 전쟁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그레이스는 계속 책을 읽었고 이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대공습 이후 그녀가 도움을 준 서점 주인들은 드디어 자신의 서점을 되찾았고 서점마다 감사의 표시로 ‘런던의 마지막 서점’을 위한 선반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
그레이스는 ‘에번스 앤 베넷’의 하나하나가 모두 좋았다.(p.451)
저자 : 매들린 마틴(MADELINE MARTIN)
매들린 마틴은 역사 소설가이자 USA 투데이 베스트셀러인 스코틀랜드 역사 로맨스 시리즈의 작가이다. 현재 플로리다 잭슨빌에 살고 있으며 반전과 모험, 열정적인 로맨스로 가득한 작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저서로는 BORDERLAND REBELS SERIES, BORDERLAND LADIES SERIES, THE LONDON SCHOOL FOR LADIES SERIES, HIGHLAND PASSIONS SERIES, WICKED EARLS’ CLUB SERIES 등이 있다.
역자 : 김미선
중앙대학교 사학과 졸업 후 미국 마켓대학교 MARQUET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디즈니 알라딘 소설: 파 프롬 아그라바》,《아홉 시에 뜨는 달》,《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바이러스 사냥꾼》,《자연 속 탐구 쏙 시리즈 세트》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