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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말하는 죽음학 수업
박중철 지음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현직 의사가 쓴 인간 '죽음'에 대한 보고서이자 고발서이다. 제목처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배려 없이 죽음을 맞고 죽어가는 실태를 고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알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마음대로, 원하는 방법으로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은 많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의사들이나 병원 직원들마저 외면하고 있다는 꼼꼼한 폭로는 처음 이 책을 통해 접했다.
이 책은 시종 우리 사회 황폐한 죽음의 문화를 냉정하게 짚어내면서 왜 친절한 죽음이 모든 이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의학과 철학, 사회·역사적 근거들과 이론들을 통해 차례로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잘 죽는다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기 삶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저자 박종철은 20년 넘게 수많은 사망 환자 곁을 지켜온 의사로서, 저자는 삶만큼 죽음도 존중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품위 있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의과대학, 병원, 그리고 개인이 스스로 죽음에 대한 각박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을 차례로 제시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책에 따르면 삶은 자신의 정체성이 지켜지는 결말을 통해 온전히 완성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고통 없이 잘 죽을 수 있는 권리와 스스로 자기 죽음을 살아낼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삶을 소망하게 될 것이다.
책은 1997년 보라매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증 환자를 의료비 부담에 시달리던 부인의 요청으로 퇴원시켰다가 부인과 의료진이 살인치사와 살인방조죄로 형사 처벌받는 사건을 다시 재조명하고 있다. 이후 병원마다 중증 환자의 퇴원을 억제하기 시작하면서 의료비 부담으로 자살하거나 가족이 환자의 연명의료장치를 제거하는 사건이 빈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 4명 중 3명이 병원에서 죽는다고 한다. 병원이 명실상부 죽음의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중증 환자 대부분이 죽음의 시간을 질질 끄는 연명의료의 지옥에 갇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재앙을 겪다가 생애 동안 쓰는 의료비의 대부분을 마지막 1~2년 동안 쏟아붓다가 사망하게 된다. 죽음의 산업화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실상을 알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이제 화려한 장례식장은 있어도 임종실은 없는 병원의 불친절한 죽음의 시스템을 다시 생각할 때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우리 사회 죽음의 문화를 돌아볼 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철저히 배제시켰던 죽음에 관한 담론을 다시 삶의 공간으로 돌려놓고 현실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버리고 삶의 연장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사로서의 판단과 인간으로서의 죽음의 존엄성에 대한 사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삶만큼 죽음도 존중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품위 있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의과대학, 병원, 그리고 개인이 스스로 죽음에 대한 각박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들을 차례로 제시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저자의 사유와 고찰, 주장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을 갖게 되는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삶은 자신의 정체성이 지켜지는 결말을 통해 온전히 완성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고통 없이 잘 죽을 수 있는 권리와 스스로 자기 죽음을 살아낼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삶을 소망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당신의 죽음은 실패한다」, 2장 「우리의 죽음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 3장 「우리가 은폐해 왔던 이야기」, 4장 「죽음의 문화를 위한 발걸음」, 5장 「자연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6장 「후회 없는 삶에 도전한다」, 7장 「나는 친절한 죽음이 좋다」로 구성돼 우리의 죽음에 대해 고찰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상을 보고 사유하고 연구하다 보니 폭로 글이 되어버린다.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불친절과 무배려가 빚어낸 인간 존엄성의 훼손이 만연돼 있어 사실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폭로'가 된 것으로 이해됟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이나 논리는 합리적이고 깊은 고찰이 있었기에 설득력이 크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지금도 병원에서 매일같이 환자들의 죽음을 겪고 있다. 그 경험 속에서 깨우친 것은 인간에게 늙어감과 죽음은 필연이지만, 후회 없는 삶과 평온한 죽음은 선택이자 부단한 노력과 어느 정도의 행운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의사로서의 성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좋은 삶의 마무리를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비참한 죽음의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공포심으로 좋은 죽음에 대한 관심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왜 좋은 죽음이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내 편협한 지식을 동원하여 의학과 철학, 사회·역사적 근거들과 이론들을 동원하여 인문학적으로 최대한 친절하게 풀어내려고 시도했다.
저자는 1장에서 미국 듀크대학의 학장이자 정신과 의사인 앨런 프랜시스의 말을 인용한다. "병원 사망보다 더 나쁜 죽음은 없다. 잘 죽는다는 것은 집에서 죽는 것이다. 왜냐하면 병원은 주삿바늘이 쉴 새 없이 몸을 찌르고, 종일 시끄럽고, 밝은 불빛으로 잠들 수도 없고,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한 채 낯선 사람들 속에서 외롭게 죽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수잔 호벤이 『잘 죽는 것: 우리의 사랑과 상실 여행』이라는 책에서 '좋은 죽음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는 것'이라고 말한 내용도 인용한다. 즉 병원에서 죽기보다는 집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수잔 호벤은 '미국인의 90%가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이루는 사람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며 원하는 죽음의 방식에 대한 원칙을 미리 세울 것을 권유했다'고 밝힌다.
오늘날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많은 수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이 지역마다 고루 분포해 있고, 비용도 국가에서 전액 부담하고 있어서 호스피스에 대한 말기 환자의 접근성이 매우 높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국은 말기 환자의 95%가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죽음의 가장 큰 특징은 국민 대다수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이 집에서 병원으로 옮겨와 병원이 명실상부 죽음의 공간이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도시화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우리 문화의 세계화 속에 영국 BBC 뉴스의 페르난도 두르테 기자의 〈오징어 게임〉에 드러난 한국 사회의 여성과 노인 그리고 탈북민 및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심각한 양극화와 빈곤의 문제, 고질적인 사회적 비리 문제에 대한 지적을 기술하고 있다. 일확천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차피 여기도 지옥, 바깥도 지옥'이라고 외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각 장에서 의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적 접근과 고찰, 국민 의식 등을 통틀어 접근하는 집중력 있는 '존엄한 죽음' '원하는 죽음의 방식'을 살핀다. 마지막 7장 「나는 친절한 죽음이 좋다」는 표제어가 됐다. 이 장에서 저자는 〈마지막 제안〉을 통해 다섯 가지 과제를 내놓는다.
첫째, 종합병원 임종실 설치 의무화
둘째, 물과 영양공급 의무 조항 삭제
셋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적극적 확대
넷째, 생애 말기 돌봄에 대한 대책
다섯째, 의과대학과 병원에서 죽음을 가르치자
저자는 자신이 경험하고, 개선을 위해 연구하고, 사회적 고찰과 깊은 철학적 사유를 거쳐 내놓은 제안들이다. 저자는 이어 "의료인이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하는 죽음이 있다. 때 이른 죽음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이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질질 끄는 죽음과 고통스러운 죽음도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걸고 막아내야 한다. 저자의 주장은 비장하게도 느껴질 정도로 강력하다. 일말의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서운 것인지에 대한 비극적인 사례는 꽁꽁 감추고 있을 뿐 이미 병원마다 차고 넘친다.
한국인은 좋은 죽음을 바라면서도 대부분 그 바람과는 달리 비참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인생을 아름답고 품위 있게 마무리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노화, 또는 질병과 싸우면서 치료 과정 중에 사망하는 것이 오늘날의 흔한 죽음의 모습이다.(p.57)
우리는 후회 없이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또한 의료인들이 환자의 인간적인 죽음을 지켜주는 것으로부터 보람과 자부심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죽기 전 병원으로 옮겨져 연명의료를 받다가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감하는 자동화된 시스템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는 살면서 죽음에 대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p.95)
저자 : 박중철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호스피스 의사. 한때 재난지역을 누비는 긴급구호 전문가를 꿈꾸며 국제보건학 석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장은 아프리카 오지나 재난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병원도 해당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생명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 만들어 낸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게 된다.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을 찾고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인문사회의학 박사과정을 밟는다. 중년의 나이가 되기까지 겪은 한국사회의 왜곡된 성장과 20년 의사로 살면서 겪은 왜곡된 의학적 생명관을 비판하면서 의료현장 속에서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질병과 건강의 의미, 그리고 삶의 이유와 가치를 탐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