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의 신화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돌고래의 신화』는 단편소설집이다. 저자 최인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이다. 지금은 등단의 기회가 많지만 예전 70~80년대 산업사회 때까지는 등단의 기회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각 신문사도 모두 신춘문예 응모를 열어놓고 받아들이고, 심사도 엄격하게 절차에 따라 시행했다. 때문에 신춘문예 1회 당선이면 등단이 가능했다. 그만큼 출중한 작가들이 모두 응모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방지도 신춘문예를 실시할 정도로 인기도 있었다. 또 신문사에서 당선자에게는 책 출판 기회도 연결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운 신춘문예를 통해야 작가가 되는 경우는 오히려 그때에 비해 줄었다.

신춘문예도 그렇게 열광적으로 응모하지도 않는 것 같다. 다른 등단의 기회가 많으니 굳이 어려운 신춘문에에 목매달 듯 주력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신춘문예는 실력을 인정받는 최고의 기회이긴 하지만. 더욱이 신춘문예에는 장편소설 등 긴 글은 아예 응모 기회도 없었다. '단편소설 전성시대'라고 불릴 만큼 독자들이 단편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는 아마 생계에 집중하느라 책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긴 장편소설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기 힘들었을 때였다. 작가들이 책을 낼 때는 대부분 여러 해 쓴 단편을 모아 단편소설집을 많이 내던 때였다. 또 출판사 입장에서는 장편이 잘 팔린다는 확신만 있으면 출간을 감행하겠지만 대부분의 출판사가 '모험'을 강행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신문사는 자사 신춘문예 작가 중 이른바 '인기작가'에게는 연재하는 장편을 실어주기도 했다. 산업화에 전 국민이 온 힘을 기울일 때는 책을 읽을 시간이 정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현상이다.

 


 

이 책은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단편소설집이다. 독자의 관심을 끈 것은 저자가 신문문예 출신이라는 점이다. 사실 저자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입장으로서는 선택의 이유가 충분히 된다.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대부분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저자가 그동안 써온 작품들의 모음집이다. 저자의 전직을 감안하더라도 20년이 넘어서야 첫 출판한다는 것은 과작임에 틀림없다. 원래 직업이었던 경찰직을 그만 둔 이후로 꾸준히 문학과 가까운 일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때문으로 짐작된다. 저자는 이 작품집에서 포우와 오 헨리가 즐겨 쓴 '충격요법'과 '반전기법'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이 작품집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한편, 극적 반전을 이뤄 독자를 글 속으로 몰입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치밀하고 세밀한 점묘법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 녹아 흐르는 에로티시즘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 한층 배가시킨다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다. 단편소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충격요법, 반전기법, 점묘법 등은 단편소설의 요건에 해당되는 일들이다. 단편소설이 대부분 200자 원고지 70~80장 분량임을 감안한다면 장편소설처럼 사건이나 인물에 구구한 설명도, 장황한 묘사도 필요없다. 오히려 소설 전개나 반전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포우와 오 헨리의 소설작법은 이미 '교과서'로 지목될 정도로 모범적 단편소설들이다.

 


 

이 책을 읽다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저자는 데뷔 이후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못하고 쓰고 고치는 행위만 반복했다고 고백한다. 견고하다 못해 철옹성 같은 한국 출판시장의 높은 벽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최인 작가는 그 동안 8편의 장편소설과 1권 분량의 단편소설을 썼지만 번번이 출판을 거절당했고, 결국 2020년 도서출판 글여울을 설립하고 직접 출판시장에 뛰어들었다고 밝힌다. 문학에의 열정은 남다르다. 독자는 이런 소설을 좋아하지만 요즘 독자들의 트렌드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가 싶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구성이 촘촘하고 유기적이어서 단편소설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세태 고발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의미가 깊다. 다만 에로티시즘에 국한된 느낌이 있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얘기들 듣다 보니 우리 문학계의 트렌드화는 생각을 더 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요즘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판타지 문학 작품이 빼지 않고 올라 있다. 아마 독자들의 독서 취향에 따른 것으로 불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책으로 내지, 불안하거나 정통 문학만을 고집하는 작품으로는 타산이 안 맞아서 출판을 거부하는 것 아닌가 추정된다. 물론 무시할 수 없다. 독자가 사지 않는 책을 수십 권 내는 출판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통 문학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기회마저 없는 출판 풍토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유행은 흘러 가는 것이고 문학은 영원할 텐데 기본적으로 탄탄한 실력의 작가가 사장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란 게 독자의 신념이다. 문화 지원 정책의 점진적 개선을 바라본다.

 


 

이 책의 첫 부분 「작가의 말」에 저자의 작품 성격을 상세할 정도로 썼다. 이에 따르면 10편의 단편은 현대인의 일그러지고 왜곡된 자화상, 기형화되고 병들어 가는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이들 중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도 있고, 실존주의적 경향도 있다. 특히 몇 편은 위버-섹스얼픽션과 안티-펄프픽션, 디-내러티브픽션, 넌-헤비너시즘을 바타으로 쓰여진 작품도 있다. 표제작으로 선택된 「돌고래의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에 깔고 쓴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52명에 달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이 보조 인물로 등장한다. 이 보조 인물들은 주인공의 분신이면서도 제2, 제3, 제4의 자아이기도 하다.

 

카두케우스를 손에 든 헤르메스가 우리를 쫓아왔어.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그는 일렁이는 백사장과 하늘로 솟구치는 바닷물을 느끼며 물었다. 헤르메스가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거지? 미재가 오래된 진공관 소리처럼 말했다. 사랑에 빠진 자들을 징계하기 위해서야. 아니 깊이 잠들게 하고, 그 다음에 죽이려는 속셈이지.

그는 그럴 듯한 상상이라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은지로 변한 미재가 무릎을 꿇고 백사장에 앉았다.

“내가 펠라티오를 해 줄게.”

-「돌고래의 신화」 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비어 있는 방」은 한국 현대문학사의 시대적 '방' 시리즈의 일환으로 쓰여졌다. 즉 이상의 「날개」로부터 최인호의 「타인의 방」, 신경숙의 「외딴 방」으로 이어지는 '방' 시리즈의 시대적 연작의 일환이다. 「뒤로 가는 버스」 역시 기행소설의 시대적 연작이라고 생각하면서, 또는 그렇게 의도하고 쓴 소설이다. 즉 「뒤로 가는 버스」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승옥의 「무진 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의 2000년대식 기행소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물론 저자의 소설이 한국 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방' 시리즈와 '기행소설' 시리즈에 버금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저자가 「비어 있는 방」과 「뒤로 가는 버스」의 초고를 쓸 때 위 작품들을 시대적 연작이라는 구성의 토대 위에 놓고 쓴 점은 분명하다. 저자의 이 같은 설명은 독자들의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층이나 육층 높이에서 인간의 모습을 내려다보자. 그들은 보도 위를 당당하게 걸어다니지만 하나같이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흉측하게 불거진 엉덩이며 가슴, 연신 앞뒤로 뻗치는 팔과 다리, 모든 게 꼴불견이다. 그들의 위대한 눈과 코, 입은 어디로 갔는가. 인간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하게 눌려서 게처럼 땅 위를 기어 다니고 있다.

-「비어 있는 방」 중에서

 

불빛에 노출되었던 남자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또 다시 불빛이 덮쳐 왔다. 그는 연신 달려드는 푸른색 불빛을 피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때 남자의 잔영이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빛의 입자처럼 어른거렸다. 그는 불빛에 스쳐간 남자의 잔영으로부터 미래를 예언 받은 듯 진저리를 쳤다. 그는 초조한 심경으로 남자가 건네주는 맥주 캔을 받았다.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침전하던 감정도 다시 솟아올랐다.

“저도 담배 한 대 주세요.”

-「뒤로 가는 버스」 중에서

 


 

「변증법적함수성」은 관계의 단절이 극대화된 현대인의 왜곡된 단면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으면, 「캐멀비치로 가자」는 특정 계층의 젊은이들, 즉 삶의 목표를 상실한 20대의 반항이 어떻게 전개되고 이행되는지 그리고 있다. 「장미와 칼날」은 IS의 종교적 갈등이 어떻게 국내의 이념 갈등과 인간 갈등으로 비춰지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저자의 단편소설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 비인간적이 되기도 하고, 소시오패스적 경향도 보이며, 자아 파괴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 기저에 휴머니즘, 즉 인간 회복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다는 공통성을 가진다. 그 외 몇몇 주인공들은 비현실적 폭력성과 파괴성, 비정상적 성적 욕망관과 인간관에 빠져 있다는 점을 말해 둔다. 저자의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마치 작품 분석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독자들이 오해할까 하는 우려에서인지, 출판을 거부한 출판사 측에 대한 항의인지 독자로서는 헷갈린다. 그러나 작품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흡수돼 소설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셈이어서 고마운 마음이다.

 

“무슨 일로 우리집엘?”

“나는 우리 사이에 매여 있는 관계의 끈을 풀기 위해 찾아온 사람입니다.”

“관계의 끈?”

“그렇습니다. 관계의 끈… 나는 오래 전부터 그 사실을 고민해 왔습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관계의 끈을 어떻게 하면 풀어 버릴까 하고 말입니다.”

사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며 난폭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내의 태도와 목소리가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혜도 사내의 음성이 외모와 다르게 품위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였다. 사내의 목소리는 뮤지컬 배우처럼 깊고 맑은 바리톤이었다. 즉 베이스의 깊은 음색과 테너의 화려함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 「변증법적함수성」 중에서

 


 

그렇다. 어떤 것에 수동적으로 중독되어 갈수록 점점 더 그리로 몰입하게 한다. 그런 다음 오히려 이쪽에서 능동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게 섹스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중독성이다. 도엽과의 만남은 그런 것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한 번으로 끝내자고 마음먹었을 때 두 번째가 이루어졌다. 또 세 번째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빠져나올 수 없이 얽혀들었다.

- 「장미와 칼날」 중에서

 

저자 : 최인(최인호)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출생

1982∼1996년 인천경찰청에서 파출소장, 형사반장 역임.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

2002년 1억원고료 국제문학상 수상 「문명, 그 화려한 역설」

2008∼2019년 【최인 소설교실】 운영

2020년 【도서출판 글여울】 설립

2021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 「도피와 회귀」 출간

2022년 「돌고래의 신화」 출간

 

발표작품

장편 : 『문명, 그 화려한 역설』, 『도피와 회귀』, 『돌고래의 신화, 단편집』

경장편 :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