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 죄책감
도리스 볼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죄책감은 누구나 알고 누구나 느껴봤을 감정이다. 그런데 왜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의사들은 말할까. 감정이란 것이 갖기 싫다고 안 가질 수 있고, 좋은 감정만 선별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의사들, 특히 정신과 의사들은 죄책감에 빠지게 되면 쉽게 떨쳐낼 수 없기에 경계하란 듯하다. 한 번 죄책감에 사로잡힌 마음은 이내 지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을까?” 잠 못 이루고 후회로 밤을 새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더욱이 심한 죄책감은 몸과 마음을 옥죄어 집중력이 떨어뜨리고 우울감을 불러오기도 한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털어 넣은 술과 약은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이 책 『내 어깨 위의 죄책감』에서 독일 심리치료사 도리스 볼프는 죄책감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그 고통스러운 생각과 기분을 떨쳐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실수에 잘 대처하고 실수를 배움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과도한 책임감을 벗어버리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말하자면 심리 치료를 위한 책이다.

 


 

사실 죄책감은 감정이긴 하지만 상식적 수준 이상의 과도한 책임감이나 후회가 동반되는 감정이어서 정도가 심해질 경우 일상 생활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주범이라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으로 보고 있는 이유이다. 독자는 후회, 공포, 불안 등으로 인한 죄책감을 자세히 몰라 우선 『정신분석용어사전』에서 명확한 뜻을 알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해 '죄책감'의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죄책감의 정의도 모른 채 자신이 느낀 감정이 죄책감으로 오해해 이후 벌어질 오류를 덜기 위해서다.

사전에 따르면 죄책감은 외부와 내부로부터 오는 보복에 대한 공포, 후회, 회한 그리고 참회를 포함한 복합 정서다. 죄책감의 핵심에는 일종의 불안이 있는데, 이 불안에는“만약 내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결국 나도 다칠 거야”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성적 및 공격적 행동 또는 소망에 대한 외부적이거나 내부적인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공포 외에도, 개인은 자신이 이미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고 그에 따른 벌을 받을 것이라는 우울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여기에는 자신이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대가로 용서와 수용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따른다고 사전은 밝히고 있다.

 


 

죄책감이 갖고 있는 불안과 우울은 차츰 복잡한 일련의 내적 과정을 거쳐 양심이라는 초자아 기능으로 변형된다고 한다. 양심의 기능 중 하나는 개인의 소망과 행동을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기준에 따라 측정하는 것이다. 양심은 이외에도 자기 평가, 자기 비판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자기 처벌 기능을 포함한다. 이런 기능들은 후회와 자기 징벌을 통해서 속죄와 용서에 대한 희망을 갖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공격성을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공격성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은 죄책감이 사용하는 방어의 일부이며, 동시에 자아가 죄책감을 다루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즉 반동 형성은 죄책감에 대한 방어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공격성과는 반대되는 모습(과장된 친절, 자비, 수동성, 경쟁에 대한 거부 그리고 복종)을 보이거나 또는 역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상처를 주고 침해하는 형태를 띤다. 반동 형성의 또 다른 형태는 수동적 행동을 적극적 행동으로 바꾸는 것(자신이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에 다른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죄책감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의 의도나 행동을 비난하는 것과, 타인을 제거되어야 하고 비난받아야 하는 공격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 그것이다. 100%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슴푸레나마 죄책감의 정체를 파악한다.

 


 

저자에 따르면 죄책감의 느낌은 매우 많고 복잡한 표현 양상을 띤다. 저자가 파악해 설명한 내용만 여기에 옮겨본다. 죄책감이 몰고 올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은 이렇게나 많다. 죄책감이 사라지면 어떻게 달라질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자.

 

1)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의식이 낮아진다.

2) 현재를 살아갈 힘이 없다.

3) 자꾸 희생양이 된다.

4) 조종당한다.

5) 우울증과 심신 장애를 앓는다.

6) 절대 안 그런 척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7) 조그만 비판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8) 남에게 책임을 떠민다.

9) 남들을 혹독하게 비난한다.

10) 중독이 된다.

11) 잘못을 부인한다.

12) 앞으로는 될 수 있는 대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13) 잘못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해버리므로 또다시 잘못을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① “죄책감을 느껴도 싸지.” 죄책감을 정당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행동하는 인간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거야. 죄책감은 내가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증거지.” 심지어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평생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도 많다. 장점 : 죄책감을 느끼니까 잘못은 했어도 자신이 선한 인간이라고 믿는다. 단점 : 기분이 좋지 않고 삶의 질이 떨어지며 의욕이 사라진다. 심한 경우 심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

② “죄책감이 드니까 난 나쁜 사람이야.” 자신을 낮춘다. “죄책감을 느끼니까 나쁜 인간인 게 분명해.” 자존감이 떨어져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고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재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남의 이목을 받는 것이 두렵고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사람을 피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며 혹시 또 잘못을 저지를까 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장점 : 남들이 동정을 해줄 수도 있다. 단점 :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 열등감을 느끼고 우울증과 심신질환이 생긴다. 굴종적인 행동을 본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용할 수 있다. 저항하지 못하는 제물이 될 수 있다.

③ “난 안 그랬어. 그러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지.” 자신의 죄를 부인한다. 자신의 행동을 변명한다. 상황 탓이었다고 둘러댄다. “난 안 그랬어. 상황이 안 그랬으면…… 나도 안 그랬을 거야.” 장점 : 잠깐은 마음이 편할 것이고 죄책감이 줄어들 것이다. 단점 : 잘못을 고칠 기회를 놓친다. 죄책감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혹시라도 누가 잘못을 발각하여 지적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그러느라 행동을 고칠 여력이 없다.

 


 

④ “난 안 그랬어. 다른 이가 그랬어.” 상대의 공격에 역공을 가한다. “당신이 이랬으면 나도 저랬을 거야.” “그가 먼저 시작했어.” “부모님이 날 이렇게 키웠으니 하는 수 없지.” 남들을 공격하며 그들에게 죄를 떠민다. 장점 : 잠깐은 마음이 편할 것이고 죄책감이 줄어들 것이다. 단점 : 짜증이 나고 긴장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갈등이 일어나거나 관계가 위태로울 수 있다. 잘못을 고칠 수 없다.

⑤ “죄책감을 못 참겠어.” 죄책감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일에 몰두하고 과식을 하고 진정제나 마약을 털어 먹는다. 장점 : 잠깐은 마음이 편할 것이고 죄책감이 줄어들 것이다. 단점 : 죄책감의 원인을 손보지 못하고 잘못을 고치지 못한다. 마음은 물론이고 몸도 괴롭다. 중독에 빠질 위험이 높고 직장이나 사람을 잃을 수 있다.

⑥ “다 내 잘못이야.” 농담처럼 이렇게 둘러댄다. “다 내 잘못이야. 또 나야. 그저 내가 죄인이지.” 속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피해자인양 행세한다. 장점 : 과도하게 죄를 인정함으로써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를 농담거리로 삼는다. 단점 :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불가능하다.

⑦ “다른 사람들도 잘못했는데 뭐.”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다른 사람들도 나보다 나을 게 없어.” 그렇게 자기 잘못의 정도를 줄이려 한다. 장점 : 죄책감이 줄어든다. 단점 : 잘못을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⑧ “다른 사람들이 더 나빠.” 다른 이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증거를 찾는다. 장점 : 죄책감이 줄어든다. 단점 : 잘못을 현실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평소 같으면 자신의 가치관에 전혀 맞지 않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⑨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죄를 줄이거나 미화한다. 장점 : 죄책감이 줄어든다. 단점 : 잘못의 정도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으므로 고칠 수도 없다.

⑩ “그런 일 없었어. 그러니까 난 아무 잘못도 없어.” 자신의 행동을 다 부인한다. 장점 : 죄책감이 줄어든다. 단점 : 잘못의 정도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으므로 고칠 수도 없다.

 

당신도 이미 짐작했듯 위에서 나열한 전략들은 우리 삶에 모두가 전혀, 혹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절하고 유익한 전략은 사실을 직시한다. 다시 말해 우리 행동의 영향을 부인하지도, 과소 혹은 과대평가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되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일까지 굳이 책임지려 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과장된 결론을 끌어내지 않는다. 방금 위에서 나열한 전략들 중엔 당신도 이미 써먹은 적 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이 방법을 써봤다가 안 되어서 저 방법을 써보기도 했을 것이며, 집에서는 끝까지 잘못을 부인하지만 직장에 가면 무조건 다 당신의 잘못이라고 고개 숙인 적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전략들의 공통점은 죄책감을 일으키는 마음가짐을 점검하지 않고 그것을 수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신의 결론이 상황에 적절한지 과장은 아닌지 점검하지 않는다. 그저 잘못을 딴 사람 탓으로 돌리거나 우리의 인간 전체를 단죄한다. 자신의 행동과 인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어 2부 구체적인 전략이 제시되고, 3부 '내가 만난 많은 환자들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저자 : 도리스 볼프(DORIS WOLF)

 

130개가 넘는 라디오방송국과 60여 개의 TV 방송국 자문을 역임했고, 30년 넘게 심리치료 전문가로 활동하며, 강연과 저술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독일의 대표 심리학자다. 대학에서 대화치료, 인지정서 행동치료를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심리치료를 공부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198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심리치료에서의 도서요법〉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남편이자 동료인 롤프 메르클레와 함께 만하임에서 심리치료실을 운영 중이다. 많은 환자를 접하는 동안,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책을 쓰게 되었고, 매일같이 심리치료실에서 환자들에게 한 조언과 전략을 책에 담아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인지·행동치료를 바탕으로 다수의 심리학 도서를 출간했으며, 그중에서 남편인 롤프 메르클레와 함께 이해하기 쉽게 쓴 심리치유서 《감정사용설명서》는 1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20만 명이 넘는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그녀의 저술은 의사·병원·상담소와 심리치료사들의 추천으로 많은 사람의 임상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또 다른 저서로는 《심장이 소금 뿌린 것처럼 아플 때》가 있다.

 

역자 :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내 안의 차별주의자》, 《불안할 때, 심리학 》, 《가까운 사람이 경계성 성격 장애일 때》, 《오노 요코》,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변신》, 《사물의 심리학》, 《나무 수업》,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등 많은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