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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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한국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인기과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가다. 1964년 도쿄 출신으로 간결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문체, 빼어난 감성과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스토리 등으로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마다 히트를 쳤다. 이 작품집(단편소설집)은 사실 지난 2004년에 소담출판사가 초판을 발행한 이후 꾸준히 인기를 얻는 스테디셀러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번 개정판은 번역가 김난주의 「옮긴이의 말」도 세간에 오르내릴 정도로 에쿠니 가오리의 전문 번역(?)가의 에쿠니 가오리 번역의 전문가로 명성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집은 『냉정과 열정 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등으로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의 도서 중 제130회 나오키상을 받은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모두 12편의 작품이 실렸다. 나오키상은 아쿠타가와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아쿠타가와상이 순수문학에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상은 주로 대중 작가의 통속 소설에 수여된다. 1934년 소설가 나오키 산주고(直木三十五)가 죽자 기쿠치 칸이 그의 대중문학의 선구적인 업적을 기려 제정하였다. 1935년 상반기부터 1년에 2회씩 문예춘추사(文藝春秋社)에서 대중문학부문의 신인작가 가운데서 우수한 소설 ·희곡 작품을 발표한 자를 가려서 수상해왔으나, 1938년 이후로는 일본문학진흥회가 맡고 있다. 제1회 수상자는 가와구치 마쓰타로(川口松太郞)다.

 


 

"제130회 나오키상은 세련된 도시적 감성의 연애소설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에쿠니 가오리와 남성 작가 한 명에게 돌아갔다. 나오키상은 연애, 시대소설 등의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연애소설로 압도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는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다양한 사랑의 파국에 직면한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를 그린 단편 소설집이다. 나오키상 선정위원은 “빼어난 감성과 시와 산문의 중간에 있는 독특한 표현력, 필력 등이 호평되었다.”라고 요미우리 신문은 평가했다.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에는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세련되고 담담한 문체로 표현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여행 내내 아들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만 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바람피웠던 애인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요이치도 왔으면 좋았을걸』,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을 뒤로한 채 밝고 명랑한 밤의 술집의 분위기에 취한 모습을 보여 주는 『그 어느 곳도 아닌 장소』, 변해 버린 애인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그런 애인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백배는 더 증오하는 마음을 잘 표현한 『울 준비는 되어 있다』 등. 에쿠니 가오리는 잔잔하지만 날카롭게 마음을 파고드는 12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 이별 그리고 상실에 대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 주며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사람들이 만사에 대처하는 방식은 늘 이 세상에서 처음 있는 것이고 한 번뿐인 것이라서 놀랍도록 진지하고 극적입니다. 가령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기억을 안고 다양한 얼굴로 다양한 몸짓으로, 하지만 여전히 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색깔이나 맛은 달라도, 성분은 같고 크기도 모양도 비슷비슷한 사탕 한 주머니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밝혀 소설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또 「옮긴이의 말」을 쓴 번역가 김난주는 "지금껏 우리에게 사랑의 무수한 변주곡을 들려주었던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새 소설은 지금 사랑이 끝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녹여 버릴 듯 뜨거웠던 그 사랑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요? 그리고 그 열기 식은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꽃이 제 몸을 불살라 언젠가는 싸늘한 재로 변하듯, 타오르는 사랑이란 스치고 지나가는 열병 같은 것일 뿐, 사랑의 끝에는 언제든 고독한 자기 자신만이 남는다는 비극적 진실에 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라는 글로 독자들의 인기를 끌어내는 데 큰몫을 했다.

 


 

이 책은 작가, 번역가, 출판사가 삼위일체가 되어 훌륭한 책을 출판한 데 각기 맡은 역할을 잘 해낸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4년 초판 출간 당시 「편집자의 말」조차도작품의 격을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고 한다. 작가와 작품의 의미를 선명히 드러내고 거기에 맞춘 독자의 감동을 끌어올리도록 잘 썼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별이란, 그 동기가 사랑에 있든 우정에 있든, 그 깊이가 설혹 차이가 나더라도 누구에게나 아쉬움과 슬픔을 안겨 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인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며 조급한 심정으로 상대방을 구속하고, 친구와 멀어질까봐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노력 과정을 이미 지나쳐 버리고 관계의 끝이라는 부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들을 백지 위에 그려 놓았다. 전체적 구도는 서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였던 인연의 줄이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뚝 끊겨 버리거나 오랫동안 쥐가 갉아먹은 듯 어느새 느슨해진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는 마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고 물었던 '봄날은 간다' 식의 물음표를 주인공들이 던진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미 그 질문이 단절이란 상황의 재확인일 뿐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은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끊임없이 남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감당치 못할 슬픔이기 때문이다. 절망하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공감하는 우리도 결국은 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잃음에 대한 두려움이 시작된 아주 처음부터……"

 


 

독자는 이 소설들을 읽으며 사랑의 감정을 담백하게 표현하면서도 절절한 느낌을 어떻게 주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특유의 표현력이 뒷받침했겠지만 정말 제3자 입장의 감정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듯한 담백한 느낌이 처음엔 익숙지 않아 너무 냉정한 느낌이 들었으나 찬찬히, 그리고 촘촘히 읽으니 작가의 표현법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응축된 감정의 표현법도 배우게 되었다.

이 소설집의 단편소설은 길이가 일반 단편들에 비해 짧다. 한편을 읽는데 빠르면 20분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에 곱씹어보면 작가의 의도나 표현, 작중 인물들의 심리, 갈등 표현, 응축된 의미 등이 하나씩 하나씩 되새김질흘 하게 한다. 무척 통속적인 표현인데도 인간의 감정, 사랑에 대한 감정이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되면서 오히려 현실감을 더하고,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을 얻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표현법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는 표제어도 "슬픔을 통과할 때, 그 슬픔이 아무리 갑작스러운 것이라도 그 사람은 이미 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잃기 위해서는 소유가 필요하고, 적어도 거기에 분명하게 있었다는 의심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겠죠."란 작가의 속내가 손에 잡힌다.

 


 

이 책의 소설들은 사랑을 상실하는 순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상실의 순간을 겪었을 것이다. 대상이 연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동물이든 간에 무언가를 잃는 것에 대한 아픔은 누구나 같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 슬픔의 감정들을 꼭 붙잡아 우리에게 언어로 전달한다. 에쿠니 가오리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에게 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란 장작이 없었다면 뜨거운 불꽃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재가 된 사랑을 날려 보내며 사랑이 존재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잃음은 소유했다는 증거이고, 잃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했다는 증거이다. 사랑 속에서도 사랑의 마지막을 슬퍼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울 준비를 마쳤다.

 

나는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다카시도 나도 변했는데, 어느 쪽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 둘 다 영원히, 사막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프링클러일 수 있다고, 쉬 믿었다. 여기는 노퍽이 아닌데도.(p.187~188)

 

나는 다카시의 친절함을 저주하고 성실함을 저주하고 아름다움을 저주하고 특별함을 저주하고 약함과 강함을 저주했다. 그리고 다카시를 정말 사랑하는 나 자신의 약함과 강함을 그 백배는 저주했다.(p.191)

 


 

저자 :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3),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 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 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역자 : 김난주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 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오쓰마 여자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홀리 가든』, 『좌안 1·2』, 『제비꽃 설탕 절임』,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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