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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 『진실의 조건』을 처음 봤을 때 제목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서 꽤 어려울 것이란 생각은 했다. 그러나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금세 독서욕이 살아났다. 특히 저자의 이름도 처음 들어본 터라 다소 생소한 문제로 내용을 이끌지 않을까 걱정은 했었다. 더욱이 철학자인 데다 북유럽의 학자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중인 것도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처음 책 소개글을 볼 때 이 책이 "그의 연구가 집약된 대중인문서로, 믿어 마땅한 진실을 좇는 데 큰 걸림돌이 되는 지식 저항 현상을 철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다."고 출판사 측에서 설명하고 있어 무척 머리 아픈 것을 각오하고 도전했다.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저라는 점이 확인됐고,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저자는 철학이 지난 수천 년간 논의해온 진실의 정의를 짚어가며 그 해답을 찾아왔다. 그리고 심리, 사회, 언어학의 관점에서 ‘진실의 적’들이 어떻게 우리를 속였는지, 왜 우리가 그들에게 속을 수밖에 없었는지 밝히고 돌파구를 이 책이 제시한다. ‘진실’과 관련한 철학·심리학·사회학·언어학 등 거의 모든 인문학적 지식을 집약한 『진실의 조건』은 스웨덴에서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 유수의 사회과학상을 수상했다. 또 스티븐 핑커를 비롯한 전 세계 지식인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탈진실 시대를 헤쳐 나갈 미래 세대의 가이드북으로 선정되어 11만 명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무상 제공되는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정치적 견해가 극도로 양극화된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이 ‘진짜’ 진실을 구별해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자는 이 책이 바로 '진짜' 진실을 구별해낼 수 있다는 말이 매력적으로 들렸고 대한민국 사회에 양극화, 진영 싸움으로 대표되는 '검찰 개혁' 문제를 적용해보기 위해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저자 오사 빅포르스가 시대를 가장 위협하는 ‘지식의 적’과 맞서 싸우는 철학자란 말도 독자에게는 적잖은 매력 포인트이다. 우선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탈진실(post-truth) 시대'로 규정한다. 탈진실의 시대란 말도 독자로서는 생소하다. 처음 들어본 단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독서를 계속했다.
언뜻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이 보이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탈진실의 사도들이 바라는 바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단순히 속이기보다 사람들에게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 자체를 빼앗으려 한다. 혼란 끝에 피로에 빠진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의 구분 자체를 포기하고 그저 믿고 싶은 것만 믿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저 믿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싸우는 오늘날 ‘내 편 정치’와 극심한 갈등은 그렇게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어 “진실을 향한 싸움은 점차 출처에 대한 신뢰성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믿음이 진실을 대체해버리는 탈신뢰(post-trust) 시대의 도래를 막기 위해 “철학자가 나서야 할 때”라고 선언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철학을 주 무기로 삼아 심리학·사회학·언어학 등 인문 분야를 넘나들며 수집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가 무엇인지 저자는 하나하나 규명해 나간다. 그리고 진실을 지키기 위한 대중·언론·전문가 각각의 소임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출발점은 철학이다.” 진실을 구별해내기 위해 저자는 먼저 진실이 무엇인지, 또 이와 근접한 개념인 사실, 거짓, 지식 등이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 개념을 살핀다. 이를 위해 저자가 맨 처음 짚고 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철학이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리 대응론, 데카르트의 회의적 합리론, 니체의 가치 허무주의를 비롯한 고대-근대 철학자들의 주요 견해를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그 뒤, 현대에 이르러 선동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의도적으로 곡해해 전파하고 있는 사실 허무주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이 무기로 삼은 “모든 것은 그저 해석의 문제일 따름이다”라는 사고방식은 ‘사실’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선동가들은 이를 알고도 버젓이 “모든 것이 그저 해석에 불과”하다며 사실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 가령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조차 의문을 제기할 빌미를 제공한다. 이렇듯 선동가들은 그들의 거짓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사실’을 없애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엄중히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러한 수박 겉핥기식 ‘포스트모더니즘’ 사고방식을 단순히 ‘열린 사고’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그편이 보다 객관적이고 포용력 있는 자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사람만의 말이 맞겠느냐” 하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인데, 이 역시 선동가들이 파놓은 사고 함정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대중뿐만 아니라 언론마저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진단한다. “(그들은 사안을) ‘중립적’으로 다루지 않다는 이유로 공영 매체를 공격한다. 하지만 객관적이라는 말은 모든 주장(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과 근거가 없는 주장)을 똑같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성이 중립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명쾌하고 날카로운 지적이고 문제 제기라는 데 독자는 공감한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저자는 보편타당한 사실과 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탈진실’ 시대의 도래를 부정한다. “‘탈진실post-truth’ 시대는 절대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진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사실 허무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반박해 “사실은 없다”라는 진술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사실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으며, 무슨 논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떤 논쟁도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그들의 시도에 대해 저자는 “사실 허무주의는 철학의 대량살상무기와도 같다”고 지적한 뒤, 곧이어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이 말했듯 “아뇨, 제 말이 옳습니다. 당신은 틀렸고요!”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진실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맞설 “가장 파괴적인 대항 무기는 역선전이 아니라 증거와 객관적 진실과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확언한다. 이 믿음이 선동가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지식’ ‘믿음’ ‘거짓’ ‘증거’ 등 진실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주요 요소들의 철학적 개념을 쉬운 언어와 비근한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동시에 사실 허무주의자들의 무차별적이고 극단적인 공격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튼튼히 구축한다. 『진실의 조건』을 통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증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의심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객관적 진실은 존재할까?”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일까?” “이해가 중요할까? 암기가 중요할까?” 이를 토대로 진실의 개념과 조건, 그리고 그 추구 당위성을 쌓아 선동가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다.
독자는 이쯤에서 많은 혼란을 겪는다. 애초에 저자의 논리로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탐색하는 것이 잘못된 시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의 믿음처럼 '안타까운 사람' 축에서 벗어나려면 인내와 끈기를 갖고 이 책을 이해해야 한다는 묘한 근성도 서서히 올라온다. 저자가 여기서 하나의 열쇠를 더 던져준다. "하지만 진실을 좇는 것을 방해하는 상대는 비단 선동가들뿐만이 아니다. 적은 우리 내부에도 있다."는 말이 그 열쇠인 셈이다. 앞서 논의한 진실의 철학적 정의를 토대로 저자는 3장 〈사고는 어떻게 왜곡되는가?〉와 4장 〈거짓말과 가짜 뉴스, 그리고 선전은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어째서 선동가들의 그토록 노골적인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는지를 심리학·사회학·언어학 관점에서 분석해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왜 우리는 그처럼 이상한 것을 믿을까?” 먼저 저자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 확언한 뒤, 인간의 이성을 망가뜨리는 확증 편향, 의도된 합리화, 역화 현상 등 다양한 인지기제를 하나씩 점검한다. 그리고 여느 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이토록 부자연스러운 기제를 갖도록 진화한 것일까? 거짓을 믿는 것보다 진실을 믿는 것이 생존에 분명 유리해 보임에도 말이다. 심지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본능이 ‘진실’보다 ‘소속감’이 생존에 유효하리라 판단했다고 진단한다. 선동가들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들이 갈라치기를 통해 선동하는 ‘내 편 정치’는 ‘생존’을 위협한다. 그러나 소속감을 위해 진실을 등한시하는 행위는 결국 인류를 쇄락으로 이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어진 이성을 활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크나큰 착각은 이성이 단순히 내부동력만으로 작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판단의 준거, 즉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타당한 반대 증거를 놓고도 엉뚱한 무언가를 믿는 것은 “자기 믿음에 대한 반론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연구한 더닝-크루거 효과이다. 이 현상은 지식 부족이 어떻게 인지 왜곡을 이끄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의 능력을 평가할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닝에 따르면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의견을 형성하기가 지나치게 쉬워진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 빅포르스는 우리가 인지 기제에 속지 않고 진실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 타당한 근거를 갖춘 지식이라 설파한다. 저자의 논리는 빈틈없어 보이고 일목요연하게 진전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해하고 읽기만 하면 저자의 말의 내용이 통째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일 것이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물론 선동가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대중들의 지식 습득을 저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들이 전문가들과 전문성을 경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음모론과 같은 타당한 지식의 ‘대안적 내러티브’를 퍼뜨린다. ‘내 편’이 그저 무언가 믿을 수 있도록 ‘가짜 지식’을 건네는 것이다.
끊임없이 확산하는 음모론의 허위성을 모두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가 지식인들의 시간을 빼앗아 인류의 발전을 후퇴시킨다. 게다가 음모론은 반대 지적 자체를 음모 세력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여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또, 이와 비슷한 기법으로 ‘거짓 동일시’라는 것이 있다. 가령 기후학자들이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과 ‘논의’ 중에 있다는 설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록 비전문가가 그 논의를 평가할 수 없다고 해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은 그 사안과 관련해 의견 불일치가 있으며, 양측 모두 증거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전해준다. 이러한 선동가들의 방해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빅포르스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돌파구를 제시한다. 끝으로 빅포르스는 5장 〈지식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육 현장의 과제〉와 6장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향후 우리가 지속·발전시켜야 할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다만 공론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노고가 빛나는 지점이다.
저자 : 오사 빅포르스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뉴욕 콜롬비아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언어의 의미와 규칙을 연구한 논문 〈언어적 자유LINGUISTIC FREEDOM: AN ESSAY ON MEANING AND RULES〉를 발표했고, 이후 언어철학과 정신철학을 넘나들며 수많은 글을 작성해왔다. 2002년 스톡홀름대학교 부교수로 임용되면서 스웨덴 이론철학 분야 최초의 여성 부교수가 되었고, 2008년 동 대학의 이론철학 교수 자리에 올랐다. 철학적 관점에서 진실과 거짓, 지식 저항의 원인을 분석하고 돌파구를 제시한 《진실의 조건ALTERNATIVE FACTS: ON KNOWLEDGE AND ITS ENEMIES》은 그의 대표작으로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스웨덴 내 출판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팝 그룹 ABBA의 멤버이자 스웨덴의 국민 가수인 비에른 울바에우스가 설립한 출판사 프리 탄케FRI TANKE의 지원을 받아 사회 진출을 앞둔 11만 명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배포되어 스웨덴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을 넘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그는 ‘지식의 적’에 맞서 이성과 진리를 수호하는 대중적인 지식인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9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인 스웨덴 한림원의 평생회원 18인 중 한 명으로 선출되어,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유수의 상을 선정하고 있다.
역자 : 박세연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IT기업에서 10년간 마케터와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번역가 모임 ‘번역인’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행동경제학》, 《열 번의 산책》,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더 나은 세상》, 《플루토크라트》, 《딥 씽킹》, 《OKR》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