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 - 육필서명 필자, 강인섭 김광균 김광협 김구용 김동리 김문수 김민부 김승옥 김영태 김종길 김태규 김현 김현승 마광수 문덕수 문익환 박남수 박두진 박목월 박성룡 박종구 박화목 박희진 서정주 석용원 송상옥 송수남 신봉승 오규원 이경남 이상보 이승훈 이청준 이탄 이해인 임인수
박이도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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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간행한 출판사는 "이런 형식의 책은 국내 최초이다."고 강조한다. 독자가 생각해도(많은 책을 읽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런 류의 책은 본 기억이 없다. 국내 유명 문학인, 종교인, 사상가들과의 교우 관계를 바탕으로 박이도 원로시인이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연과 얽힌 에피소드를 슬며시 꺼내놓은 에세이다. 특이한 점은 대상 인사들의 친필이 함께 수록됐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인 박이도 시인의 기억을 명징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고, 그가 꺼내놓은 이야기들이 사실적이라는 확증을 주기도 한다.

특히 저자의 기억에 의존한 에피소드들마저 시인의 기억이 맞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 것이라 문단 이면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역할에도 비중을 둘 수 있는 글들이다.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에 담겨 있는 인물들은 당대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시인 작가 화가 평론가들이다. 친필 서명이 모두 공개될 뿐만 아니라 그 서명본을 보내준 분들과의 인문학적 교유의 일화들이 곁들여져 있어 재미를 한층 북돋워준다. 이는 예술계 인사들과 폭넓은 교유를 해온 저자만이 집필할 수 있는 내용들이란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게다가 그 증정본 필자들이 두 분 외에는 모두 작고한 분들이어서 더욱 이런 자료들이 귀중하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시인들의 이름만 들어도 사실 놀라울 정도다. 시인의 연배보다 훨씬 앞인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문인부터 최근까지 활동을 계속하는 문인들이라 연대가 길다.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박희진, 이탄, 오규원, 마광수, 박목월, 김영태, 박성룡, 김광협, 김종길 박화목, 김종길, 이승훈, 조태일, 김현승 등 한 분 한 분이 모두 한국 현대문학사를 대표하는 문인들이 아닌가. 또한, 이경남, 강인섭, 문익환 같은, 시인이면서 언론인 목회자로 활동했던 분들, 전영택 황순원 이청준, 김승옥 현길언 같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 한 시대 방송가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신봉승, 주태익 선생, 여기에 화가 송수남, 서예가, 박종구, 수녀 이해인 등…은 우리 시대의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문학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다.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국현대문학사에 길이 이름이 빛날 분들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해서 이 책에 대한 애정도 깊어진다. 독자는 단순한 독자로서 20세기 후반기에 태어났지만 그 무렵 교과서나 한국현대문학사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들의 문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다. 문학을 처음 접하게 해준 분들이 그 당시로는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대부분 어려울 때 우리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분들이었기에 더욱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많은 문인들에 대한 기억과 교유의 추억 중 고등학교 후배인 마광수 시인, 요절한 〈기다리는 마음〉의 천재시인 김민부, 평생의 두 분 스승인 소설가 황순원, 시인 조병화, 민주 투사 허명(?)을 남기고 떠난 ‘아름다운 서정시인’ 문익환 목사, 〈민들레의 영토〉에 시의 씨를 뿌린 이해인 수녀, 방송가의 풍운아 신봉승 방송작가 등등... 한 분 한 분 모두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48명의 인연과 비화를 정감 있는 문장으로 불러오고 있다. 독자로서는 오랜만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한껏 맛보고 그들과의 대화를 주선해준 저자 박이도 시인에 감사한 마음 비길 데 없다. 독자가 1980년 대 이후 알게 됐던 문인 중 조정래 작가가 쓴 말도 감동적이다.

"글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야말로 박이도 시인을 위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박 시인의 인간적 품격과 시의 격조가 혼연일체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성직자적인 고요한 미소로 평생을 살아온 고운 마음의 소유자 박 시인의 시편들은 그 미소처럼 담백하고 고결하며, 그 마음처럼 순결하고 고아하여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를 준다."(작가 조정래)

 


 

저자는 책의 「머리말」에서 “오랜 세월 문단의 문객들과 나눈 육필서명본을 비롯해 편지 글과 엽서 글을 모아놓은 서첩(書帖)이다. 문단의 큰 어르신들부터 가까운 선후배들까지, 서로 나누었던 나의 사적 교우록이 되는 셈이다. 신문학이 싹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단의 기라성들의 시화(詩畵)와 육필을 귀감삼아 정면(正面)교사로 삼고자 함이다. 이분들의 시문(詩文)에 담긴 저마다의 문학적 발상법과 시정신에서 많은 교훈을 받은 바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어르신들의 예술과 인격을 기리고 명심불망(銘心不忘)하고자 한다. 특히 친필 육필로 받은 이분들의 함자와 필체를 한 자리에 모아 나 스스로에게 귀감이 되는 서첩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매우 겸손하게 그들의 삶과 문학을 배우려는 태도를 가다듬고 있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혹은 스승인 황순원 작가의 말을 듣고 배운 것인지 문장이 간결해 읽기에도 매끄럽고 이해하기도 쉽다. 오랜 시간 시를 쓰고 늘 우리말을 갈고 닦는 내공이 엿보인다. 저자의 이러한 문학적 재능은 일찍 드러난 것 같다. 「일출봉에서 하늘나라로 사라지다」, -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를 회억하면서 "나는 1958년 서라벌예대(2년제)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민부를 처음 만났다. 이미 그는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시인이었다. 그 해 여름방학에 나는 민부와 같이 부산에서 온 권영근 군의 초대를 받아 부산으로 갔다. 초량의 철길 주변에 있었던 집(두 친구 중 누구네 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음)에서 일박하고 역시 동기생이었던 송상옥 군이 사는 마산으로 이동했었다. 앞에 거명한 세 친구 중 권영근 군은 분당에 살고 있을 때 한두 번 만났으나 지금은 소식이 없다."(p.114)는 글에서 추측할 수 있다.

 


 

또 책의 첫 번째 기억나는 인물 김광균이 등장하는 글에서도 저자가 등단한 해가 정확하게 나온다. "나는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황제皇帝와 나」라는 시로 당선했다. 1월 4일자 지상에 작품이 실리자 전국에서 편지가 답지했다. 뜻밖의 서신들이었다. 그 중 소포 하나가 배달되었다. 난생 처음 받아본 소포, 보낸 이의 함자(銜字)는 김광균(金光均). 소포를 뜯어보니 고급 양장본의 『시집 와사등(詩集瓦斯燈)』이 나왔다. 시집의 저자 김광균이란 함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먼 옛날인 듯 마음속에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시집에 편지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봉하지 않은 봉투에서 뽑아 보니 만년필로 쓴 손글씨 편지로, 두 장에 이르는 장문이었다.

그 내용은 ‘우리 시단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요지의 격려의 글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제일 먼저 서정주 선생님에게 보여 드렸다. 그리고 신촌 주변에 몰려 하숙하던 마산 출신 송상옥, 이제하, 강위석 등과 송수남 등의 친구들의 요청으로 이 편지를 건넸는데, 그 후 편지는 행방을 찾을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읽고 적어 보며 그렇게 암송하던 시 한 편 「설야雪夜」가 동動사진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속 표지에는 머리말에 해당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와사등(瓦斯燈)에 처음 불이 켜진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떠나온 지 오랜 내 시의 산하(山河) 저쪽 일이라, 지금도 등불이 살아 있는지 이미 꺼진 지 오래인지 알 길이 없다.(p.13~14) - 「십 년 만에 부치는 글월」 중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문인들 중에서 저자에게는 어느 하나 소중한 기억이 아닐 수 없지만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마광수 교수에 대한 글이다. 「누가 마광수를 죽였는가」 - 유서가 된 메멘토모리, 광마 왜 그랬어?란 기억이다. 저자는 그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자연인 마광수(馬光洙)를 사랑한다. 아니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을 거둘 수가 없다.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 스스로의 사유와 행동에 관한 원리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 천부(天賦)의 인권이라는데... 문명사회의 법과 제도들은 천부의 인권과 선의의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광수를 죽였는가? /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음란행위를 하던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를 사랑했던 자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내린 설법이다. 여인을 끌어 왔던 무리들은 뒤꽁무니를 뺐다. 이들이나 음행한 여인이나 모두 생래의 선한 양심소유자들이 아닌가. 이들은 율법을 신봉하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의 양심과 음행한 여인의 양심을 저울추에 달아본다면 어느 쪽이 법적인 죄가 무거울까. 당연히 현행법인 음행한 여인이 무거울 것이다. 이런 판단에 대해 예수님은 지혜롭게 용서와 사랑의 본질에 의한 판결을 내렸다.

세상과 법정이 마광수에게 내린 조롱과 범법적(?) 판결은 '선한 사마리안 법'으로 합리화할 수 있을까. 즉각적인 판단이 어렵다. 저자는 마광수 교수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자살자를 위하여」란 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마광수의 유언이 된 메멘토모리. 생의 무의식 속에 잠자던 본능의 욕구를 끄집어내어 계속 까발리는 성담론 탐구자. 그가 집요하게 집착한 성담론은 그의 종교가 되었을까. 그를 한 세태, 경박한 호기심 따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 이어 저자는 인터넷에 작가 공지영 씨가 남긴 마광수 교수에 관한 기록 한 토막을 찾아내 적는다. '대학 때 부임해 왔던 마광수 교수, 1987년 잠깐 국문과 대학원 진학했을 때 나보고 뻔뻔하다면서 "넌 그렇게 니 얼굴에 대해 오만하냐?" 했다. "여자는 그저 야해야지" 지금 많이 늙었겠지.'라고 마교수를 회상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에는 천천히 읽을수록 맛이 나는 적당히 질기고 촉촉한 글이 많다. '촉촉'이란 단어는 독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기 때문이다. 저자가 많은 문우들과 친분을 맺는 동기는 각기 다른 이유겠지만 후에 되돌아보는 추억으로는 모두가 아름답고 감성 녹이는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저자 : 박이도

 

자유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1959),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1962). 시집 <회상의 숲> <폭설> <불꽃놀이> <홀로 상수리나무를 바라볼 때> <민담시집> <있는 듯 없는 듯> 등 15권, 시선집 <빛의 형상><순결을 위하여> <반추> <삭개오야 삭개오야> <가벼운 걸음> 등 6권, 번역시집 <朴利道詩集.權宅明역>(일어), <Language on the Surface of the Earth.Translate by Kevin O’Rourke/Chang-Wuk Kang번역>(영어).

전집 <박이도문학전집>(전4권)

수필집 <선비는 갓을 벗지 않는다>

평론집 <한국현대시와 기독교>

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편운문학상’, ‘문덕수문학상’ 등 받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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