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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헨치 1~2 - 전2권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평점 :
요즘 열풍의 중심에 있는 히어로물 소설이다. SF 판타지가 대세인 요즘이다. 그 중에서도 선과 악이 엄격히 갈리고 선의 영웅이 악당들을 무찌르는 영화가 시리즈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끈다. 특히 영웅들은 독특한 캐릭터지만 모두 정의의 편에 서서 악당을 이기는 권선징악의 내용 일색인데도 열광한다. 영화는 물론이지만 판타지가 엄청난 인기로 대세몰이 중이다. 이 드라마에선 영웅이 정의의 편에 선 '히어로', 반대편 악당 편에 선 '빌런'이 대결을 펼치는 구도도 한결같다. 그래도 정의가 불의를 늘 이긴다는 내용 탓인지 젊은층 중심의 매니아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젠 소설의 경우 SF판타지와 맞물리며 활동무대도 지구 너머 우주로 향하는 것도 많이 등장한다. 곧 태양계를 접수하고 먼 우주로 날아갈 듯한 기세다.
읽고 보는 독자와 관람객, 시청자들의 스트레스 해소와 화려한 액션 등이 청소년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비결인 듯하다. 독자는 판타지물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책도 많이 읽지 않았는데 그 중에 판타지나 액션 히어로에 관한 내용은 한 권도 없었다. 그 유명한 '해리포터'도 읽지 않았다. 나름 생각에 현실성 없는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히어로물이나 SF 영화가 사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심이나 순수 독자의 멋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랫동안 멀리 했던 책을 손에 잡았다. 드디어 히어로물과 판타지물도 몇 권 읽었다. 팬데믹으로 시간이 많아지자 그냥 시간 때우기 식의 독서를 하다가 우연히 얻어 걸린 기분이다. 그러나 한 번 읽기 시작하니 묘한 즐거움과 스트레스도 해소되는 듯한 쾌감도 있었다. 이젠 광팬은 아니지만 꽤 이들 책을 꽤 즐기는 편이라고 해야 될까, 초보엔 들어갈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 히어로물과 또 다른 느낌이다. 이 책 『헨치』(전 2권)는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들과 빌런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다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까지 초보 독자가 읽어본 것과는(진보한 건지 퇴보한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른 즐거움을 준다. 어쩐지 주인공이 미숙하고 약한 캐릭터인데도 소설이 잘 전개되는 것은 어쩌면 저자의 글솜씨나 구성 능력일지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는 느낌은 오히려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약자인 주인공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빌런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이 판타지 소설 속 모든 등장인물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어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를 출판사 측에서는 미국 내에서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물에서 벗어난, 신선한 주제와 위트 있는 구성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주인공 애나는 프리랜서 ‘헨치’로 일하고 있다. 헨치는 빌런에게 고용되어 온갖 잡무를 하는 사람인데, 애나는 주로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를 담당한다. 빌런에게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사무직원인 셈이다. 애나는 한동안 일감을 의뢰받지 못해 바닥난 통장 잔고를 걱정하고,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남자와 저녁 식사를 하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헨치로 일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 준과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히어로와 빌런이 맞붙은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슈퍼콜라이더는 애나를 무참히 공격했고 그 결과 애나의 다리는 분쇄 골절 부상을 입는다. 물론 그녀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지팡이를 짚어야만 할 만큼 큰 잘못이 있는 것일까? 엄청난 트라우마에 휩싸인 애나는 마침내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슈퍼콜라이더는 빌런을 무찔러 세상을 구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오히려 세상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어로가 아무 생각 없이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수십 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가며 마련한 건물이 하루아침에 돌무더기로 전락한 사고부터 그저 사건 현장을 지나가다 히어로의 초능력 오용 때문에 시력을 잃는 봉변을 당한 사람까지, 히어로의 무차별적인 행동으로 인한 재산 및 인명 피해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왜인지, 언론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여론은 교묘하게 조작된다. 배후에 슈퍼히어로 관리국인 드래프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나는 히어로가 불러일으키는 피해량을 수치화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다 이를 눈여겨본 레비아탄의 회사로 스카우트되면서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레비아탄은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자, 악명 높은 슈퍼빌런이다. 한편으로 애나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에게 경외감인지 애정인지 모를, 이상한 마음이 샘솟기도 한다. 이성과 감성의 혼돈 속에서도 애나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굳건하게 해나간다. 그녀의 목표는 선에 맞서기 위해 악행을 일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믿어온 거짓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폭로해, 슈퍼콜라이더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신과 복수, 희생과 대가가 잇따르고, 우정과 사랑이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헨치』는 풍부한 상상력과 생동감 있는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작가 지나 나탈리 월쇼츠는 입체적인 캐릭터와 절묘한 설정을 통해 진실과 거짓,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 그 경계를 넘나들며, 이분법으로 사고하려는 세태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인간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로써 독자들은 강렬하고도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기대한다.
소설이 후반을 향해 가면서 슈퍼콜라이더와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히어로라고 해서 다 정의롭고 착하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위선적인 히어로의 가면을 벗겨내고 억압되어 있던 다른 히어로의 해방이 통쾌했다. 그리고 빌런 못지않은 애나의 활약 또한 놀랄 만한 발전이었다. 한편으로는 애나가 점점 빌러닝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싫어해야 하는 건지 좀 애매해지기도 했다. 소설이 확실히 마무리되지 않고 끝난 느낌인데, 혹시 후속작을 염두에 둔 건지 궁금하다. 퀸텀 인탱글먼트도 그렇게 떠나버리고, 레비아탄이나 애나의 모습고 확실한 끝맺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앟아서 그런가 보다. 소설로 읽는 코믹스라는 홍보 문구를 본 적이 있는 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재미있는 설정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상상되어 영화로도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자료나 평가에서는 양자 역장을 만들거나 물질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그녀의 초능력이 공격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능력은 훨씬 더 악랄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2권, p.230)
아주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도, 슈퍼콜라이더에게 피해나 불편을 끼칠 수 있는 기회라면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히어로들을 고통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는 일이 내 주특기가 돼가고 있었으므로, 레비아탄은 나에게 작은 불행들을 고안하여 슈퍼콜라이더는 물론 그와 가깝게 지내는 모든 존재에게 고루고루 선물하는 임무를 맡겼다. 나는 개업식에 참석한 히어로가 리본을 자르기 직전에 정전을 일으키거나, 히어로가 머무는 호텔방에 빈대의 시체들을 풀어놓았다.(1권, p.227)
슈퍼히어로 관리국은 초능력 표준검사를 법적으로 의무화했고, 재능 있는 아이들을 뽑아 히어로로 키우곤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 선발 과정은 실망스러우면서도 무서운 일이었다. 선발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비밀 훈련 시설에서 지내야 하며 가족을 만날 기회도 별로 없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내 초능력 표준검사의 결과는 ‘발현될 초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1권, p.282)
슈퍼콜라이더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이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내가 가진 느낌이었다. 그가 씩 웃었다. 그 작은 미소는 내가 이제껏 본 미소 중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홍보용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기롭게 보이도록 연출된 미소가 아니었다. 근육에 힘이 제멋대로 들어가 얼굴이 망가져 버린 괴상한 미소였다.(2권, p.223)
대부분의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슈퍼히어로는 뛰어난 홍보 능력 덕분에 이미지만 좋을 뿐, 결국은 세상에 해로운 족속들이라는 것. 그들은 바다를 질식시키는 플라스틱 섬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야금야금 모여서, 전 세계적 재앙을 초래하고 있지 않은가.(1권, p.125~126)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무조건 히어로라고 치켜세우거나 빌런 딱지를 붙이는 제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제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신 것 같은데요.”(2권, p.205)
저자 : 나탈리 지나 월쇼츠(NATALIE ZINA WALSCHOTS)
작가이자 시인, 그리고 게임 디자이너다. 또한 여성이나 퀴어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드는 데임스 메이킹 게임즈DAMES MAKING GAMES의 운영진으로서, 스토리텔링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즐기고, 공포 영화를 자주 보고, 사변 소설을 많이 읽는다. 현재 토론토에서 파트너와 함께 고양이 여섯 마리를 키우며 산다. 반론의 여지없이, 고양이가 너무 많다. 독특한 세계관과 기발한 서사, 놀라운 반전으로 주목받은 《헨치》는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이다. 그 외 출간한 시집으로 《DOOM: LOVE POEMS FOR SUPERVILLAINS》와 《THUMBSCREWS》가 있으며, 이 중《THUMBSCREWS》는 로버츠 크로에츠 어워드ROBERT KROETSCH AWARD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역자 : 진주 K. 가디너
미술가 ‘JINJOO KIM GARDINER’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영국 런던의 첼시 예술대학교에서 순수 미술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영국 플리머스 아트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그 외 다수의 전시에 아티스트로 참여했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 《비밀의 화원》,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