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시한부
김단한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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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이롱 시한부』는 시한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세상 사람은 부자든 가난하든, 권력자든 노예이든, 늙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 김단한의 주장은 억지처럼 들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있는 것이지만,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세계는 불균형하다.’라는 말을 어쩌면 제일 잘 대변해 주는 것은 죽음이 아닐까?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어떻게 언제 죽어야 공평한 것인가. 저자의 불평일 뿐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도 지금 죽음에 맞닥뜨렸다고 '불공평'이라는 말은 억지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그 때문에 죽음을 앞둔 사람은 물론 죽음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불공정한 죽음에 대하여 저마다의 방법으로 받아들인다.

그 많고 많은 사람의 방법 중 『나이롱 시한부』 속에 등장하는 안나는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반면 안나를 너무 사랑하는 단한은 저항한다. 아직 안나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화사한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것이 모두 안나를 잡아 둘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저자의 생각이 이 같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죽는 일에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말하지만 사실은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책을 조금만 더 촘촘하게 읽어보면 저자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이롱'이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어 읽어본다. 나이롱이란 단어는 사실 나일론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무척 많이 들었지만 요즘은 잘 들리지는 않는 단어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줄이고 늘이는 것을 자기 편한 대로 하는 사람에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일정한 규칙 없이, 정작 죽어가는 당사자의 의사와도 상관없이 죽음은 다가온다는 사실 때문에 저자는 시한부란 의미의 정반대의 개념인 나이롱을 붙였나 싶다.

저자는 독자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나이롱의 의미를 밝힌다. "안나는 가끔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며, 아픈 것도 다 거짓말 같다고 말한다. 통증이 없다고, 오늘은 피를 쏟지 않았다며 웃는다." 이해가 된다. 충분히... 그러면서 저자는 덧붙인다. "나는 나이롱 시한부다. 하나도 안 아픈 시한부다. 안 아프다고 생각하면 안 아프다. 나는 백 살까지 살 거다. 나는 악바리다. 지(죽음)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 보라지." 짓궂은 목소리는 정말로 안나를 한순간에 나이롱 시한부로 만들어 버린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자칭 ‘나이롱 시한부’인 안나는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오죽 안타까우면 그렇게 표현했을까. 환자의 삶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나일론은 탄력성이 좋아 줄였다 늘였다가 뛰어나다. 또 질기디 질긴 대상에 대해 나일론이란 단어를 붙여도 적절하다. 생명을 두고 질기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삶의 의지를 표현하기에는 이처럼 좋은 비유도 드물다. 나일론의 속성이 그렇다. 저자는 할머니 안나의 삶에의 의지가 엿보일 때는 그렇게 마음이 좋은 것 같다. 그러다 비관하거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에는 '그렇지 않다'고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어렵다.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의 전언에는 안나의 정신이 총총할 때는 삶의 의지가 매우 강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나는 남겨질 이에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고. 끝이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이냐고. 그러니 한 번 사는 인생, 촘촘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똑같이 끝이 정해져 있지만 어떤 끝인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고." 안나가 한 말과 행동을 저자는 자신의 삶의 의지에 투영시킨다. "안나가 자신에게 남은 세상의 조각을 나에게 슬며시 꺼내 보여 주곤 했다."고 한다. 어떤 것은 너무 커서 시야를 다 가리고, 어떤 것은 너무 작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안나와의 대화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안나와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나의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세상을 넓히는 것엔 약간의 품이 든다. 아프기도 하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기록이다.

 


 

"『나이롱 시한부』는 죽음을 목전에 둔 할머니와 손녀의 마지막을 그린 단순한 신파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뻔하디뻔한 신파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단한 작가의 문장이다.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로 정제된 단한 작가의 문장은 나를 떠난 사람과 나를 떠나게 될 사람을 떠오르게 하고, 홀로 남겨질 나를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에 『나이롱 시한부』는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자세에 대해서 한 번쯤 환기시킬 수 있는 글이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이지만 안나의 마음을 궤뚫고 있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책을 낸 후 〈채널 예스24〉와 인터뷰를 가졌다. "글 속에 등장하는 '안나'(할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루하루가 그냥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게 느껴졌기 때문에요. 처음에는 단순한 기록용으로 썼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것이 많아 이 글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와 '안나'가 보낸 시간에 관련하여 가족들은 단순히 제가 말로 건네는 이야기들만 접했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조금 더 색다를 것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안나에게도 읽어주고 싶었고요. 그렇게 쓰다보니까 또 욕심이 생겨서, 브런치에 연재를 하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자랑이자 맹목적인 사랑은 첫째 딸인 자자의 엄마이다. 엄마는 할머니의 엄청난 교육열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 엄마는 몸도 유약한 편이라 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을 끊임없이 받았다. 때때로 그 사랑과 관심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럽다. 누구나 다 그렇다. 그렇게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던 할머니의 첫째 딸은 대학에 입학했고 할머니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5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그중에 첫딸인 엄마를 유독 많이 사랑했나 보다.

저자는 유년 시절을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한테는 외할머니가 나의 최초의 엄마였던 셈이다. 이 책의 안나 할머니는 독자의 어머니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다. 다만 독자의 어머니는 요양병원까지 가지도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다.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주지 못한 독자로서는 그 점이 한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독자의 어머니도 자식 걱정만 했다. 자상하지도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대한 것이 지금은 한으로 맺혀 있다. 이 때문인지 저자의 심정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이 책은 에세이다. 안나와의 얘기를 일기처럼 써나가는 것 같지만 충분히 스토리가 있고, 스토리의 전개도 극적인 점이 엿보인다. 차분하게 글을 끌어가면서도 독자에게 눈물 콸콸나게 하는 감정선을 자극하는 표현을 무척이나 쉽게 쓰고 있다. 제목이나 처음 글을 읽어나가면 마치 소설 같기도 하다. 3장으로 구성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할머니와의 추억과 대화 - 남겨진 이들 - 요양병원에서의 할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독자를 울리기 위한 책이 아닌데, 투박한 할머니의 글씨체가 떠오르면서 저자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이유가 독자의 어머니와 한나 할머니가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도 저자의 애끓고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제일 처음 초고를 쓰던 시기에는 '안나'의 병세가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에 마냥 재미있었어요.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었고, 매번 '안나'를 만나고 난 다음에 일기처럼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죠. 그런데, 한 권으로 묶기 위해서 글을 다시 정리할 때는 앞서 말씀드렸듯 '안나'의 병세가 더 심각해졌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짜가 점점 다가옴을 느끼면서 원고를 정리할 때는 저도 모르게 울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일들이지만 써놓길 잘했다, 맞아 이런 이야기를 나눴지,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우느라 원고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적도 많아요. 불쑥불쑥 떠오르는 '안나'에 대한 그리움들을 제어하면서 너무 감정적이지 않게 글을 쓰려 노력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안나는 짧으면 2개월, 길면 6개월이라는 시한부의 삶을 선고를 받았다. 나는 안나에게 찾아온 죽음이 너무나 미웠지만,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까지 죽음과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소심함을 탓했지만, 안나는 그 무엇도 탓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나는 씩씩했다.씩씩한 안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나이롱 시한부’라고 칭한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는 할머니와 아직 죽음이 뭔지 모르는 손녀는 종일 대화를 나눈다. 대화에는 주제가 없다. 그저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앞으로 있을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에는 죽음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둘의 대화에 등장하는 죽음은 결코 무거운 존재가 아니다. ‘나이롱 시한부’ 안나 덕분에 죽음은 손녀에게 더더욱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p.6)

 

저자 : 김단한

 

가끔 정처없이 떠도는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많이 쓰려 노력하는 중이다. 쓰는 글 중에 사람과 사랑이 등장하지 않는 글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랑에 대해 지겹다 말하면서도 이 두 가지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말간 백지를 보며 얼굴이 새하얗게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받는 사람. 내면에 숨쉬는 다양한 것들을 숨김없이 끄집어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고 싶단 생각을 품고 있다.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너를 앓고』와 『연못 산책』을 독립출판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kim_danhan_delay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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