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엄기용 지음 / 아임스토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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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기억은 대부분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특별한 상처가 남아 있는 이들을 빼놓고는 말이다. 독자도 어렸을 적 기억은 늘 행복하다. 잘 살지도 않았고, 형제가 많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모두 계셨고, 학교 생활도 충실하게 한 편이라 지금 생각하면 행복감이 가장 높았던 것 같다. 물론 힘들고 어려웠던 생각도 기억의 편린도 남아 있긴 하지만 어렸을 적 기억 전체를 흐릴 만큼은 아니었던 듯하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가능할 만큼. 그러나 기억의 한편에는 참 부족한 게 많았던 듯하다. 그때는 모두 다 어렵고 가난했기에 그렇다. 일부 소문난 부잣집을 제외하곤 '결핍의 시대'라고 생각될 만큼 가진 게 없는 시절이었다. 지금 중년의 나이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가난의 기억을 갖고 있을 터, 밥만 굶지 않으면 그럭저럭 사는 집에 들었을 때이니까. 그러나 가난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렸을 적 기억은 왜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을까. 정이 많고, 가난의 유대감이 행복감으로 변화되었을까? 독자의 생각으로는 '정'과 '함께'라는 두 가지 이유가 모두 합쳐져 그런 것으로 풀이한다.

 


 

이 책 『집으로 가는 길』은 가난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눈물겨운 고백이 담긴 포토에세이집이다. 원망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유년의 집은 저자 엄기용의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외로운 공간이다. 책을 낸 후 개운하기는커녕 "가슴 밑에서 밀려오는 것돌로 종이에 베인 살처럼 마음 한 켠이 아린다"는 저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어렸을 적은 다르다. 개인의 환경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다르지만 공감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흐르는 마음의 한가운데 '가난'이라는 공감 형성의 단초가 되는 키워드가 있기 때문이리라.

세월이 흘러 집을 떠나 세상을 여행한 저자는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신사, 비맞는 말, 호수 위의 나무 등 작가의 내면을 투영한 다양한 피사체와 교감하며 ‘존재’의 순간을 기록했다. 저자는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가 ‘그리움’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조우한다. 본문에 수록된 29편의 사진을 통해 ‘존재’와 ‘그리움’을 바탕으로 하는 작가의 시선과 사진철학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포토 에세이로서 2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숨을 쉬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들의 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온기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진솔하게 쓴 글이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이리라. 1부와 2부의 추억의 장소들은 이어져 만났고, 결국엔 저자는 길을 돌아 다시 왔음을 느끼고 있다. 집을 떠나온 그 길은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제 3부 '집으로 가는 길'로 옮겨 소회를 밝혔고,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고 저자는 술회한다.

이 책은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기억나는 '나'에 대한 소감을 사진과 함께 표현했다. 일부러 흑백으로 처리한 것은 과거 기억, 특히 어려웠던 기억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기에 좋고, 한편으론 저자의 흑백 사진 선호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1부에서 저자는 고향에서의 유년시절에 대한 내용을 '유년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불러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왔으니 시간으로 계산하면 고향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억의 잔상은 깊고, 그래서인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흑백 사진처럼.

 


 

2부에서는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여행하면서 느낀 생각을 '집을 떠나다'라는 제목으로 담아냈다. 여행지에서 본 그들을 모두 저자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옷을 입지 않고 사람은 살 수가 없다.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씨실과 날실의 연속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인생이라는 베틀에서 살아온 시간으로 씨실을 묶고, 삶을 지탱시켜 준 공간을 날실로 엮어서 지금 여기에 '가 있다는 저자의 말은 독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

저자의 유년이 독자의 유년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공감이 된다. '가난'이라는 키워드만으로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한데 묶는 힘이 있는가? 그 점이 독자로서는 의문스럽다. 독자는 한참을 생각한 후에 "가난이 묶은 게 아니라 그 속에 흐르는 유대감과 정"이 공감을 갖게 했다고 믿는다. 상황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지만 인간은 마음으로 유대하고 정을 나누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의 기억들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이되는 순간 공감이 가고 저자의 아리고 애잔한 마음과 일치된다. 어릴 적 친구들과 '딱지치기' 놀이를 함께할 때 딱지를 만든 종이의 재질, 용도를 말하는 저자의 마음은 독자의 마음과 똑같다. 어릴 때 마음은 순수하니만큼 생각도 '순수'만 함께한다면 공감대 역시 형성된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 제주 어딘가를 돌아다닐 때 비가 몹시 내린다. 차의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바닥에 고인 빗물을 가르는 바퀴의 거친 물소리가 합쳐져 유년의 기억 단상을 헤집어 놓기 시작한다. 저자는 과거의 회상 속으로 소용돌이처럼 빨려들어간다.

"비는 내리는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느낌과 소리가 다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비올 때 나의 상태와 기분에 따라서 비가 전해 주는 분위기와 그 느낌이 다르다는 말이다. (중략) 날씨 좋은 날 태양빛은 사물에 광채를 내지만, 비가 내리는 날 구름속에 숨어 있는 빛은 사물의 속살을 비추어 그들의 본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듯하다. (중략) 내가 흑백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서 죽음과 탄생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고 존재하는 이 순간도 곧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은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공간이 카메라 프레임 안이라면 사라짐과 나타냄의 맞물림 속에 지금 나는 존재하고 있다."(p.120~121) 저자는 살아 있는 한 여행을 할 것이고, 그것은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고, 죽음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저자의 카메라 안에는 자신의 삶의 기록이 있고, 그 기록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소 영적인 저자의 이 생각은 독자에게도 오롯이 전이되면서 공감을 형성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저자 : 엄기용

 

-사진작가, (주)혜미항공해운 대표이사

-개인전

ㆍ 은밀한 시선SIGHTS IN SECRET(2017)

-단체전

ㆍ 뻔뻔한 사진전(2013)

ㆍ 뻔FUN한 사진전(2014)

ㆍ INSIDE 4 GATES(2015)

ㆍ 우리 한번은... (2016)

ㆍ 시간여행자(TIME TRAVELER)(2018)

ㆍ 을지단상(2019)

ㆍ 을지단상(2020)

ㆍ 그날들(2021)

ㆍ 한번은(2022)

-저서

ㆍ 『은밀한 시선 SIGHTS IN SECRET』(2017)

ㆍ 『CEO의 인생서재』(공저, 2021)

ㆍ 『코로나 시대의 여행자들』(공저, 2022)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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