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드 파이퍼
네빌 슈트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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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참다운 인간애는 언제나 용기를 준다. 특히 유명하고 참혹한 전쟁일수록 그 향기는 멀리 오래도록 풍기는 것 같다. 이 소설 『파이드 파이퍼』는 세계 2차대전 발발 직후 독일에서 먼 지역은 아직 전쟁의 공포감이 채 퍼지지 않은 상태의 유럽에서 벌어지는 인간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제목인 『파이드 파이퍼(Pied Piper)』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The Pied Piper of Hamelin)」를 모티브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70대의 백발 노인 시드니 하워드는 영국 노인이다. 그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인간애 등이 부각되는 휴머니즘의 소설이다. 은퇴한 그는 참전한 아들 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다. 홀로 남은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프랑스 쥐라 지방으로 낚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초기였지만, 하워드는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낚시한다는 생각에만 들떠 하루하루를 보낸다.

 

햇살에서는 새로운 따스함을, 공기에서는 새로운 신선함을 느끼고 싶었다. 다가올 봄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맛보고 싶었다. 인생을 바꿔놓았다는 그 사건 때문에 이 세상 무엇보다도 봄을 원했다.(p.24)

 


 

이 작품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The Pied Piper of Hamelin)」에서 모티브로 제목을 따왔다고 앞서 언급한 대로다. 로버트 브라우닝이 쓴 동화 작품이다. 이 작품과 더 이상의 연관은 없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하멜른 피리'의 내용을 간략하게 여기에 쓴다.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하멜른.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하멜른 시민들은 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쥐들은 아기를 물어뜯고, 음식을 갉아먹고, 신사들의 모자에 둥지를 트는가 하면 찍찍 끽끽 소리로 마을 여자들의 수다까지 방해할 정도였다. 시민들은 시청으로 쫓아가 소리치며 항의해 보지만 늙고 피둥피둥 살찐 시장과 시의원들은 나 몰라라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다. 그런데 이때 골칫덩이 쥐들을 모두 없애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희한한 차림에 긴 피리를 든 피리 부는 사나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큰 쥐, 작은 쥐, 홀쭉한 쥐, 뚱뚱한 쥐, 가족끼리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쥐란 쥐는 죄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간다. 그러고는 깊디깊은 베저 강에 빠져 버린다. 그런데 쥐를 없애 주면 큰 돈을 준다던 시장이 발뺌을 하는데…….

아마 '피리 부는 사나이'의 줄거리를 대부분의 독자들이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프랑스에 도착한 하워드는 전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독일군이 프랑스로 곧 진격할 거라는 불길한 소식에 하워드는 서둘러 귀국하려 한다. 그러나 호텔에서 만난 어느 부부의 예기치 못한 부탁으로 어린 두 남매를 떠안게 되고, 자녀들을 영국으로 안전하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받은 하워드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서둘러 귀국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전쟁의 양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하워드 일행은 큰 혼란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의 포화 속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자기 몸조차 가누기 힘든 백발의 노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길에서 만난 아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실낱같은 삶의 의지를 이어 나간다.

 

그의 직감은 하녀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 둘을 보살펴야 하는 귀국 여정이 에너지를 완전히 고갈시키리라는 사실을 그도 잘 알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닥쳐올 끔찍한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었다.(p.99)

 


 

패전의 어둠이 드리우는 프랑스 전역에서 교통편도 막히자 하워드 일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고심 끝에 하워드는 점점 목을 조여오는 독일군을 피해 예전에 알고 지내던 루제롱 대령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대령도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없었고, 그의 부인과 딸만이 홀로 남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대령의 딸인 니콜이 하워드 일행을 돌보며 탈출을 위한 본격적인 계획이 시작된다. 독일군이 점령한 도시들을 지나치며 몸을 사리는 와중에 모국어인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이들로 인해 적군에게 노출될 위험에 처한다.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니콜은 하워드의 아들인 존과 있었던 그간의 일들을 하나둘씩 털어놓는다. 몰래 배를 타고 영국으로 떠날 계획을 하던 하워드 일행이 드디어 프랑스를 떠나게 되는 순간, 일행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노파는 대답하는 대신 배수로의 아이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남자애처럼 보이는 아이는 고개를 들어 노파를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여서 그런지 노파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금방 역겨운 음식을 다시 입에 넣기 시작했다.(p.169)

 


 

소설 속에서도 하워드는 아이들에게 나무를 깎아 만든 호루라기를 선물한다. 이 호루라기는 전쟁으로 닫혀있던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대비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행동으로 여러 위기에 처하지만, 하워드는 노년의 지혜와 인내심으로 슬기롭게 이를 극복해나간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 무사히 도착한 하워드는 회고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나간다. 아무리 참혹한 살륙의 현장이더라도 인간이 있는 곳곳에서는 휴머니즘과 사랑은 피어오르고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줌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니콜은 당당하게 서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대로 말하세요. 노을을 더러운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 아름다움까지 더럽힐 수는 없는 법이죠.”(p.342)

 

“세상에 선함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죠. 세상 모든 일이 미쳐서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이 세상을 히틀러 손에 맡겨둔 채 죽어버렸다고, 멀리 떠나버렸다고요. 심지어 이렇게 어린아이들도 계속 고통을 겪어야 했잖아요.”(p.379)

 


 

“그런데 지금은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존과 저는 행복하지 못할 운명이었죠. 딱 일주일만 빼고요. 또 우리가 부덕한 일을 저지를 운명이었고요.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이 아이들이 존과 저를 통해 유럽에서 벗어날 운명이었던 거예요. 평화로운 곳에서 자라날 수 있게요.”(p.379)

 

저자 : 네빌 슈트

네빌 슈트는 1899년 런던 일링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배일리얼 칼리지에서 공학을 공부했고, 어린 시절의 열정을 쫓아 항공업계에 엔지니어로 발을 들인 뒤 비행기 개발 일을 했다. 여가 시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엔지니어 경력을 보호하기 위해 네빌 슈트라는 필명으로 1926년 소설 《마르잔MARAZAN》을 출간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해군 지원 예비군에 합류해 비밀 무기 개발에 힘썼다. 전쟁 뒤에도 계속 글을 썼고, 호주에 정착해 196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로 《파이드 파이퍼》(1942), 《나의 도시를 앨리스처럼》(1950), 《해변에서》(1957) 등이 있다.

 

역자 : 성소희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서어서문학을 공부했다.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고전 추리 범죄소설 100선》, 《여름날 바다에서》, 《키다리 아저씨》, 《베르토를 찾아서》, 《하버드 논리학 수업》, 《미래를 위한 지구 한 바퀴》,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등이 있으며, 철학 잡지 《뉴 필로소퍼》 번역진에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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