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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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 받던 이어령 선생이 별세했다. 그는 우리 현대사 한가운데서 문학 예술 철학 사상 등 많은 분야에서 뛰어난 지성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 이 책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서원을 기록한 책이에요. 서원(誓願)이란 '가톨릭에서 그리스도적인 완전한 덕을 쌓기 위하여 스스로가 숙고하여 자유의사로 하느님과 약속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국어사전은 ① 신불(神佛)이나 자기 마음속에 맹세하여 소원을 세움. 또는 그 소원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에 더해 ② 보다 선하고 훌륭하게 살겠다고 하느님에게 약속하는 행위라는 뜻도 갖고 있다. 이어령 선생은 과거 무신론자였으나 나중에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종교에 깊이 빠졌고 많은 글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종교에 귀의한 후 더 깊은 깨달음과 성찰을 했기 때문에 출간에 맞춰 종교적 신념이나 생각을 담은 책은 아니지만 '서원시'란 부제를 붙인 듯하다.

 


 

3월 중순 출간된 이 책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는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서원을 기록한 책이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온 국민이 눈부신 하늘로 다시 한번 날아올랐으면 좋겠다는 선생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 책자는 14년 전 선생이 지은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시에 선생의 구술 해설을 입혀 서문을 완성했다.

거기에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출판사의 사정으로 묵혀두었던 열세 가지 ‘생각’에 대한 원고를 더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선생은 새해 소원 그대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새 옷을 입히고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붉은 기운의 낙관을 직접 청해 책을 완성했다.

 

“개인이나 국가나 도저히 걷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하나의 소원이 있을 겁니다. 나에게 날개를 달라는 기도지요. 그래서 나는 실제로 해마다 그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게 바로 이 시를 낳게 한 동기요, 기도였던 겁니다.”

 


 

이어령 선생은 책 속 시에서 “해마다 해가 바뀌어도 양 진영으로 갈라져 싸움박질을 하는 정치인들에게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쳐 주눅 든 가난한 자들에게는 용맹한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고, 풀이 죽은 기업인들에게는 『갈매기의 꿈』 속 조나단 같이 비행할 수 있는 날개를 주소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어 이념 싸움을 하는 지식인에게는 구름보다 높이 나는 종달새의 공허한 날개를 보여주소서"라고 썼다. 그의 하나님께 드리는 날개의 소원을 담은 기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뒤처지는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마련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천년학의 날개를 주소서. 핵가족으로 흩어지고 이혼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원앙새의 사랑의 깃털을 주소서”라고 기원했다. 선생이 우리 국민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날개는 '기러기의 날개'다. 기러기의 날개? 소리 내어 서로 격려하고 대열을 이끌어가는 기러기의 날개다.

 

“기러기들처럼 날고 싶습니다. 온 국민이 그렇게 날았으면 싶습니다. 소리 내어 서로 격려하고 대열을 이끌어가는 저 신비하고 오묘한 기러기처럼 날고 싶습니다.”(p.28)

 


 

혼돈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생의 지성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떠맡았고, 발자취의 흔적은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다. 선생은 자신의 학력은 높지만 시대의 이유로 제대로 된 학교를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에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책에서 말한다. 현행의 획일화된 교육이 창조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앗아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책을 넘기다 보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건 노력하지 않는 자의 핑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독자를 두고 하는 말인 것처럼 폐부에 깊숙이 박힌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치를 잃은 시대, 선생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데 큰 가치를 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는 건 아니란 말이다. 특히 미키 마우스와 일본의 디즈니랜드를 예로 들면서 정작 누가 돈을 버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선생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무형의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성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새로운 정의의 3D도 매우 흥미로웠다.(p.89, 「새로운 3D」) 미래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이 무엇인지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니뭐니해도 오역으로 인해 사람들이 열광하는 구절들이었다. 그것이 잘못됨을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 왜 일까. 왜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할까 싶으면서도 오역이, 다시 말해 틀린 것이 옳은 것을 압도하다니. 하나의 작은 예이지만 실상 우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진짜 사람들이 원하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그의 작업실을 TV로 방영된 적이 있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여러 대의 IT 기기를 활용하며 집필하는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기록하는 트렌드세터이자 언어 수집광이었다. 그러나 배우고 기록을 중시하는 선생은 지식도 영양분처럼 넘쳐날 때가 더 위험한 법이라 경고한다. 고여 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며 우리를 괴롭히던 고정관념들, 집념이나 원한도 모두 버려야 한다는 말이 기억난다. 즉,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뒤집어 생각하는 사고의 틀 깨기가 중요함을 이 책에서도 여러 면에 걸쳐 강조한다.

뽀빠이와 낙타의 신화, 낙타는 성경 속에서 운다, 세 마리 쥐의 변신, 달마의 신발 등 가벼운 에피소드를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에피소드들은 정체성과 창조적 사고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사고의 틀을 깨고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시작된다고 담담하게 전하는 저자의 글을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내 책상 한구석에는 작은 종이 한 쌍 놓여 있다. 우연히 눈에 띄어 무심코 흔들어보았더니 뜻밖에도 투명한 소리가 난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으로 매다는 종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슨 금속 같은 것에 도금한 진짜 종이었던 것이다. 높은 소리를 내는 것이 은종이고, 조금 낮은 소리로 울리는 것이 금종이다. 별로 눈여겨본 적도 없던 것이 소리를 내는 순간, 무엇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소리는 먼지 속에 감춰져 있었던 것일까. 내 손이 닿기 전까지 그것은 하나의 돌멩이와 같은 존재였거나, 아니면 한 번도 존재해본 적 없는 그냥 텅 빈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 목숨을 지닌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환한 대낮 속을 날고 있다.(p.44, 「종소리처럼 생각이 울려왔으면」)

 

옛날에는 하잘것없는 사람의 죽음이라 해도 죽음은 장엄하고 엄숙한 사건이어서 가장 큰 뉴스거리였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조종을 울렸으며, 사람들은 그것이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를 궁금해했다. 잠시 일손을 멈추고 죽은 자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고개를 숙여 슬픔을 표시했다. 그러나 존 던은 말한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 종소리인가를 묻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종소리, 내 죽음의 조종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완전한 섬일 수는 없다. 나는 홀로 있는 섬이 아니다. 아무리 홀로 떨어져 있으려고 해도 인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섬이 아니다. 나는 대륙의 일부다. 아무리 작은 모래나 흙덩이라고 해도 그것은 광활한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존 던은 말했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모래 한 알과 작은 흙덩어리가 바다에 휩쓸려 가면 그만큼 대지는 가벼워지고 작아진다”고···.(p.48,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저자 : 이어령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중앙일보 상임 고문 및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하였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였고, 석좌교수를 지냈다. 그는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명 칼럼리스트로만 활약한 게 아니라 88서울올림픽 때는 개ㆍ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1980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일본 동경대학에서 연구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소의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1990~1991년에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젊음의 탄생』,『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등이 있고, 어린이 도서로는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시리즈 등이 있다.

디지로그(Digilog)는 아날로그 사회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 혹은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그는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현재 우리가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은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해준다. 시대를 읽는 특별한 눈을 가진 그는 우리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사명으로 디지로그 시대의 개척자이자 전도사가 되었다. 한국이 산업사회에선 뒤졌지만 정보화사회에선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음을 일찍부터 설파한 그가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디지로그 시대의 개막'을 선언한다. 물리적 나이로 보자면 분명 노학자이지만, 그는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한 문명전환의 시기에 누구보다도 앞서 디지털 패러다임의 한계와 가능성을 몸소 체험한 얼리어댑터이다.

그의 서재에는 7대의 컴퓨터와 2대의 스캐너, 무선 공유기, 프린터 등 각종 디지털 장비가 자리한다. 7대의 컴퓨터를 직접 네트워킹했다. 그는 컴퓨터들을 이용해 직접 자료를 모으고, 검색하고, 정리하고, 자신의 지적 회로망에 연결한다. 그에게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뇌의 확장된 영역이 되고, 그가 선창하는 디지로그 세상을 몸소 살고 있는 인간임을 증명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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