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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
애나 렘키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3월
평점 :
품절
독자의 인체에 대한 지식은 매우 초보단계다. 고등학교 다닐 때 '생물' 시간에 배운 내용, 그것도 인체의 생리작용에 대한 내용을 배울 때 정도가 전부다. 특히 호르몬과 비타민의 차이점만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몸이 살아서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물질 중 필수적인 두 가지를 배웠다. 바로 비타민과 호르몬이다. 이때 배운 기억으로는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생성돼 나오는 것이고 비타민은 인체에서 생선되지 않기 때문에 외부 음식물을 섭취 보충해야 한다고 배웠다. 물론 두 가지 다 부족하면 거기에 따른 신체 이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적정량을 보충해줘야 한다는 것.
특히 호르몬은 우리 몸의 한 부분에서 분비되어 혈액을 타고 표적기관으로 이동하는 일종의 화학물질을 일컫는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표적 기관에 도착한 호르몬은 세포 외부 혹은 내부에 위치하는 수용체와 결합하여 작용을 나타낸다. 호르몬은 구성 성분에 따라 크게 펩타이드 호르몬과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서울대학교병원 신체기관정보'는 밝히고 있다. 이 사전에 따르면 프로락틴, 성장 호르몬, 갑상샘 자극 호르몬,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난포 자극 호르몬, 황체 자극 호르몬, 항이뇨 호르몬, 옥시토신이 뇌하수체에서 분비된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호르몬들은 다른 내분비계 기관들의 수용체에 작용하여 호르몬 분비를 자극한다. 프로락틴은 여성에서 임신을 했을 때 유방에서 젖을 만들도록 도와주고 성적 욕구를 감소시킨다.
책에 따르면 도파민(Dopamine)는 우리 뇌에서 신경전달물질로서 작용한다. 뇌의 주요 기능성 세포는 뉴런인데 이 뉴런들은 시냅스에서 전기신호와 신경전달물질로 서로 소통한다. 도파민은 1957년 두 명의 과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한명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의 원제는 『Dopamine Nation』이다. 한글로 번역된 것이 한 단어로 되어 있어서 짧은 영어 실력으로 잠깐 착오했다. '도파민의 작용'쯤으로 생각했었다. 'Dopamine+ation'으로 짐작한 것이다. 책의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도파민이 넘쳐나는 나라(쾌락에 중독된 나라)'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은 미국을 중심으로 마약과 같은 각종 중독성 물질의 폐해를 지적하고 중독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역시 정신과 의사로서 본인이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약물 중독에서 빠져나와 정상생활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결국 이 책 『도파민네이션』은 '피로사회에서 도파민으로 버텨내는 현대인을 위한 인간, 뇌, 중독 그리고 회복에 대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부제를 「쾌락 과잉 시대에서 균형 찾기」로 쓰고 있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쾌락 추구, 탐닉의 시대라고 전제하고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도파민의 과잉 생성을 막는 것이 과제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중독성 물질,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 문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등… 오늘날 큰 보상을 약속하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디지털 세상의 등장은 이런 자극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됐다.
우리는 도파민,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된 탐닉의 사회, 도파민네이션에 살고 있다. 이제 누구도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약물, 술, 도박, SNS 등 중독 문제를 두고 우리는 흔히 개개인의 약한 의지나 타락한 도덕성을 원인으로 든다. 중독을 개인의 일탈로 보았지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독 치료는 약물 처방, 심리 치료 또는 도덕적 각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또한 중독성 물질,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된 현실 때문에 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애나 렘키 박사는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스탠퍼드대학 중독치료 센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이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의료 정책을 만드는데 참여하고 있으며 100여 편이 넘는 글과 논문을 발표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이력과 달리 저자는 이 책에서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왔고 의사가 된 후에도 에로티즘 소설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한마디로 중독에 관해서는 ‘전문가’인 동시에 ‘내부고발자’인 셈이다. 저자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도파민네이션』은 최신 뇌과학, 신경과학 연구와 자신이 20년 동안 만난 수 만 명의 임상사례를 통해 인간, 뇌, 중독 그리고 회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약물 치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도파민의 법칙을 이해하고 고통과 화해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쾌락을 다룬다. 동시에 고통도 다룬다. 무엇보다 쾌락과 고통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쾌락과 고통의 관계가 왜 중요할까? 우리가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풍요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중독성 물질,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 문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오늘날 큰 보상을 약속하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디지털 세상의 등장은 이런 자극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됐다. ‘나는 아직 무언가에 중독된 적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장담컨대 머지않아 자주 찾는 웹사이트에서 그것을 만나게 될 것이다.(「머리말」 중에서)
책에 따르면 지난 세기 신경과학은 두 가지 획기적인 발견을 한다. 첫 번째는 쾌락과 고통의 지휘자 도파민의 발견이다. 도파민은 인간 뇌의 신경전달물질로 1957년에 처음 발견되었다. 스웨덴에서 아르비드 칼손과 영국의 캐슬린 몬터규가 그 주인공이다. 나중에 칼손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을 찾지 못하고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굶어 죽지만, 음식을 입안으로 바로 넣어주면 음식을 씹어서 먹으며 그걸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두 번째 발견은 뇌가 쾌락과 고통을 같은 곳에서 처리한다는 사실이다. 쾌락과 고통은 저울 양 끝에 놓인 추와 같다. 초콜릿을 한 조각 먹으면 다음 조각이 또 먹고 싶어지고, 괜찮은 책, 영화, 또는 비디오 게임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라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뇌의 균형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쾌락이 아니라 고통 쪽으로 기울다가 결국에는 저울 자체가 망가지고 만다. 뇌에 저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중간에 지렛대 받침이 있는 저울이다.
평소에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우리가 쾌락을 경험할 때, 도파민이 뇌에 분비되고 저울은 쾌락 쪽으로 기울어진다. 저울이 더 많이, 더 빨리 기울어질수록, 더 많은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저울에 관한 중요한 속성이 하나 있다. 저울은 수평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한쪽이나 다른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울이 쾌락 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저울을 다시 수평 상태로 돌리려는 강력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러한 자기 조정 메커니즘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다. 그저 반사 작용처럼 균형을 잡으려 한다. 쾌락을 추구할수록 고통 또한 더 커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이 넘으면 마약, 알코올, 포르노 등 어떤 강력한 자극을 주어도 뇌는 더 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저자는 기존의 약물 중심 치료법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이미 과도한 약물 처방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오늘날의 의사들은 자비 넘치는 치료자로서의 역할에 실패할까 봐 모든 고통을 없애려 한다. 고통은 어떤 형태든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아파서 만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신경 손상을 남겨서 완치를 해도 고통을 느끼도록 뇌를 자극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고통을 둘러싼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알약을 대량 처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미국 성인 25퍼센트 이상, 미국 어린이 5퍼센트 이상이 매일 정신 치료제를 먹는다. 팩실, 프로작, 셀렉사 같은 항우울제 사용률은 미국을 선두로 세계 각지에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인 10퍼센트 이상(1,000명 중 110명)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아이슬란드(10.6퍼센트), 호주(8.9퍼센트), 캐나다(8.6퍼센트), 덴마크(8.5퍼센트), 스웨덴(7.9퍼센트), 포르투갈(7.8퍼센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약물 처방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합법적 처방이라는 가면을 쓰고 벌어지는 미국의 약물 과용은 총기와 자동차 사고보다 더 많은 미국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수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과 2017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새로 나타난 우울증 사례 수는 오히려 50퍼센트 증가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부유한 국가일수록 더 심하다. 최근 G2로 떠오른 중국의 항우울제 사용량도 급증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저자는 약물 치료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클릭 한 번으로 중독 대상을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약물 치료는 불법 약물 확산으로 이어지거나 약물을 대체하는 새로운 중독의 유행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약물에서 술로, 약물에서 음식으로 자극을 바꾸었을 뿐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중독자들의 경험에 주목한다.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을 가르쳐줄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중독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중독의 희생양이 되었다가 빠져나온 환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뇌의 균형, 삶의 중심을 찾는 법을 소개한다. 관음증에 빠져 자위 기계를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과학자, 13년 동안 수십 종의 약물을 전전한 대학생, 음식 중독으로 시작해 트럼프식 음모론에 빠져버린 여성, 인스타그램 때문에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한국인 유학생까지 다양한 중독자들의 사례와 그들의 극복기는 매혹적이면서도 살아있는 해결책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우울증과 에로티즘 소설에 빠졌던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포함된다.
저자는 이 책 「맺음말」을 통해 누구나 얼마쯤은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쉬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종종 적용하는 불가능한 기준으로부터 나와 있길 바란다. ‘내가 왜 그랬지? 이걸 왜 못하지? 그 사람들이 나한테 한 짓을 봐. 내가 그걸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겠어?’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장 기댈 수 있는 기분 좋은 도피라면 무엇에든 마음이 간다. 트렌디한 칵테일, 소셜 미디어의 반향실 효과, 리얼리티 쇼 몰아 보기, 밤에 인터넷으로 포르노 보기, 포테이토 칩과 패스트푸드, 몰입형 비디오 게임, 이류 뱀파이어 소설… 목록은 정말 끝이 없다. 중독성 있는 대상과 행동은 우리에게 잠시 휴식이 되지만 길게 보면 우리의 문제를 키운다. 그런데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망각의 길을 찾는 대신 세상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세상에서 도망가는 대신 세상에 몰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애나 렘키(ANNA LEMBKE, MD)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 스탠퍼드 중독치료센터 소장. 예일대학교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각종 중독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정신 질환에 관한 뛰어난 연구, 탁월한 지도, 혁신적인임상 치료법을 선보인 의학자로 유명하다. 「뉴잉글랜드의학저널」, 「미국의학협회저널」 등 명망 있는 매체에 100여 편의 글과 논문을 발표했다. 수만 건의 풍부한 임상 경험이 있는 의사로서 스탠퍼드 중독치료센터를 이끌며 미국 정부와 상하원의 중독 정책을 자문을 하고 있다. 2016년 처방약 남용을 다룬 『마약상, MD: 어떻게 의사들은 사기를 당하고 환자들은 걸려들며, 왜 그것은 멈추기 어려운가DRUG DEALER, MD』를 출간해 미국 사회에 널리 퍼진 약물 오남용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2020년 소셜 미디어의 중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역자 : 김두완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문화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중음악 전문 컨트리뷰터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번역 일을 병행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타인을 읽는 말』, 『폴 매카트니: 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 『모타운: 젊은 미국의 사운드』, 『나는 무슬림 래퍼다』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기타 100』과 『한국대중음악명반 100』이 있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