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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 공감을 넘어선 상상력 '엠퍼시'의 발견
브래디 미카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평점 :
지금 세상은 혐오와 편견, 갈라치기가 일상화된 시대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공감 에세이와 ‘좋아요’가 넘치는 때여서 소통을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잘 된다고 생각했던 독자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진단이다. 독자의 기대와는 달리 시대는 혐오와 분열로 매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회학자들의 진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부터 우리 사회의 분열과 편가르기가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해봤다. 여당과 야당, 영남과 호남 같은 기존의 갈등 구도에 ‘이대녀’와 ‘이대남’, ‘자가’와 ‘임대’ 등 새로운 경계까지 만들어지며 혐오와 분열이 오히려 극심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해와 공감과는 다른 무엇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러나 대선이니 정치인들끼리 전쟁을 하는 입장에서 그러려니 했지만 당락이 결정되자 대선 때부터 네거티브전에 등장했던 후보 배우자들의 범법 행위에 대해 또 수사를 해야 하느니, 보복이느니 하는 싸움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 사회학자들의 진단이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남녀간 적대적 관계, 성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식, 우리 나라에는 광범위하지 않지만 인종 차별 문제 등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세상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실이 암울하기까지 하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염병 세상에서 혐오와 분열을 극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이 책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의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을 넘어선 ‘상상력’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타인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 즉, 타인에 대한 배려를 넘어 교감, 공감 이상의 엠퍼시(emphty)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세상이 지금처럼 격화되기 전부터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전작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서 계층 격차와 다문화 문제가 심각한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이야기로 차별과 다양성이라는 첨예한 이슈를 풀어냈다.
저자는 이어 이 책에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상상력 엠퍼시(emphty)를 혐오와 분열의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공감은 나와 감정·의견·주장 등이 비슷한 타인에게 느끼는 마음의 작용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엠퍼시는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명확한 인식을 지니고 ‘내가 상대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상상해보는 지적 능력이므로 공감이 지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독자의 해석이 맞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경제 문제, 심리와 교육, 문화와 공동체 등 다양한 분야를 엠퍼시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여 혐오와 분열의 시대에서 이해와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색한다.
책에 따르면 흔히 ‘공감은 지능의 문제’라고 말하고, 공감과 이해를 연결지어 공감 없는 이해는 불완전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우리의 공감은 주로 나와 환경이나 생활이 닮았거나 의견이 비슷한 사람처럼 공통점이 있는 이들에게 작동한다. 연예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예능을 보며 공감하고, 나와 취향이 맞는 SNS와 유튜브를 찾아본다. 반면 내 입엔 ‘치약맛’인 민트 초코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 극단적으로는 범죄자나 사이코패스에게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공감에는 나와 상대가 얼마나 닮았는지, 상대에게 동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말 공감은 ‘지능의 문제’인 걸까? 저자는 나와 닮은 사람에게 주로 작동하는 공감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감하지 않는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상상력 ‘엠퍼시’다. 공감과 달리 엠퍼시는 나와 상대가 얼마나 유사한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엠퍼시는 내가 상대의 신발을 신는다면(상대와 같은 입장·사상·사회적 배경 등을 지닌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상상해보는 지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나의 감정, 편견, 배경 등에서 벗어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즉 엠퍼시야말로 ‘지능의 문제’이며, 나와는 전혀 다른 입장과 배경을 지닌 타인을 이해하는 가능성이다.
그런데 저자는 일본과 한국은 ‘엠퍼시’를 주로 ‘공감’으로 번역하여, 엠퍼시에 담긴 상상력과 지적 작업이라는 의미를 지워버리고 만다고 주장한다. 공감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한층 좁아진다는 것. 공감이라는 번역어 뒤에 숨어 있던 엠퍼시의 발견은 곧 타인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다. 공감과 유사한 것은 오히려 엠퍼시처럼 ‘공감’으로 번역될 수 있는 ‘심퍼시(sympathy)’다.
나와 유사한 의견·관심을 지닌 사람이나 가여운 사람 등에게 느끼는 이해·지지·염려의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마음의 반응이다. SNS의 ‘좋아요’는 심퍼시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행위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서는 사용자 대부분이 게시물을 세세히 살펴보기 전에 순간적인 인상만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나와 의견이나 취향 등이 같아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심퍼시(공감)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SNS의 심퍼시는 느슨하고 넓은 연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한 혐오 발화나 가짜뉴스 유포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메시지로 사회적 편견과 혐오도 효과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심퍼시의 부작용을 ‘친구 vs 적’이라는 구도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친구’에게 이해와 지지를 보내는(공감하는) 것은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라는 인식을 만들며, 이러한 심퍼시가 강화될수록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닌 타인을 이해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특정 정당을 찍는 사람은 나라를 망친다거나 특정 사상을 지지하면 ‘정신병’이라거나 어떤 사안에 이견을 내면 무조건 ‘○○혐오자’라고 낙인을 찍으며, ‘친구 vs 적’ 구도를 강화하는 자극적인 표현을 양산해내고 자신에게 공감하는(심퍼시를 표하는) 사람을 결집하려 한다. 이러한 싸움에 몰입하면 상대의 메시지를 묵살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에 맞는 가짜뉴스를 생산하거나 정보를 왜곡하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게 된다.
이해·염려·지지와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심퍼시(공감)가 오해와 편견을 강화하고 결국 혐오와 차별을 퍼뜨리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심퍼시의 부작용은 SNS뿐만 아니라 정당·회사 내부, 선거 전략,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친구 vs 적’ 구도를 심화시킬 위험이 있는 심퍼시에서 벗어나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사람은 ‘나’가 아닌 ‘우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서로의 삶이 촘촘하게 연결된 세계화 시대에, ‘우리’의 관점을 갖는 것은 곧 ‘나’를 위하는 일이 된다. 이타적이 되면 이기적이 된다는 역설적인 고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코로나 사태 때 발생한 사재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식료품과 손세정제 사재기를 “배려가 없는 것을 넘어 생존법을 착각한 전형적인 예”로 해석한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은 사회 전체의 위생·건강 수준이 나아져야 종식되는 사회적 질병인데, 식료품과 위생용품을 독점하면 전염병에 취약한 사람이 많아지고 손세정제가 필요한 노동자들이 손을 살균할 수 없어 결국 코로나가 확산되고 나에게도 불행이 닥친다는 것이다. 코로나와 직접 마주하는 노동자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그들을 먼저 배려하는 일은 곧 내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이처럼 서로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에서는 타인의 삶이 무너지는 것이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며, 사회 전체를 위한 이타적 상상력은 곧 나를 위한 이기적인 일이 된다.
이처럼 이해와 공존의 씨앗이 되는 엠퍼시를 기르는 방법으로 저자는 ‘루트 오브 엠퍼시’, ‘TC(치료적 공동체)’, 연극 교육을 제시한다. 그중 루트 오브 엠퍼시는 생후 2~4개월 된 아이와 어린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초록색 담요 위에 둘러앉아 말 못 하는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서로 상상하여 이야기해보는 교육이다. 의식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상상해보면서 타인의 신발의 신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TC와 연극 교육도 스스로 타인이 되어보는 연습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기른다. 형태나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타인의 입장을 상상하려 노력하고 그 상상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저자 : 브래디 미카코(ブレイディみかこ)
보육사. 작가. 칼럼니스트. 1965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 현립슈유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도쿄에 머물다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 펑크 음악에 심취해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96년부터 영국 브라이턴에서 살고 있다.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근무하다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현재 보육사로 일하며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계급투쟁》으로 2017년 제16회 신초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2018년 오야 소이치 기념 일본 논픽션 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로 2019년 제7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특별상, 제2회 서점 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 제7회 북로그 대상(에세이·논픽션 부문)을 수상하였고 시리즈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하였다. 이 책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서 화제가 된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상상력인 ‘엠퍼시’를 탐구하여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그 밖에 지은 책으로 《여자들의 테러》 《꽃의 생명은 NO FUTURE》 《아나키즘 인 더 UK: 무너진 영국과 펑크 보육사 분투기》 《THIS IS JAPAN: 영국 보육사가 본 일본》 등이 있다.
역자 : 정수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교 문학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날마다 고독한 날》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유랑의 달》 《지니의 퍼즐》, 다자이 오사무 전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 실격》, 미야자와 겐지 《봄과 아수라》,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