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설은아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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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표현이 자유로워진 시대라 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 수는 없다. 법 규범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못하는 말도 있고, 표현하기 어려워 목으로 꿀꺽 삼킨 말을 가슴에 묻고도 살아간다. 상대를 욕하거나 불만을 표현하는 말은 오히려 거침없이 해대는 혐오의 말은 잘 하지만, '닭살' 돋는 말은 오히려 꺼내기 어려워 마음은 있어도 꿀꺽 삼킨 채 산다.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 언어 생활은 의외로 말로 표현하는 것을 오히려 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는 말, 감사를 전하는 말 등 상대가 들으면 오히려 기분 좋을 말들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오랜 습관인 것 같다. 간혹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는 탓이다. 그러나 요즘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품은 채 사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고, 과감하게 하다보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하지만 습관이 안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힘들다.

 


 

이 책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2018년부터 2021년도까지 열린 동명의 전시를 엮은 책이자, 10만 명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에세이집이다. 전시를 기획한 설은아 저자는 한국 최초 칸 국제광고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국내 웹아트 1세대 작가라고 한다. 2018년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첫 여정을 시작한 이 전시는 소외된 소통을 주제로 하며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형태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에 이야기를 남기면 부스 밖 아날로그 전화기에 전달되어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닿는다.

“가슴이 먹먹하다”, “전시장에서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등의 후기들이 SNS에서 공유되었으며, 3년간 ‘부재중 통화’라는 이름으로 약 10만 통의 목소리가 남겨졌다. 이 책에는 우리 삶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450개의 부재중 통화를 담았다. 익명의 부재중 통화들을 읽다 보면 음성으로 느껴지는 한숨, 정적, 떨림, 울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인생 살기 힘들다며 악을 쓰는 사람, 엄마를 부르고 울기만 하는 사람,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성소수자, 거식증을 앓고 있는 대학생, 상사 욕을 하는 직장인까지. 일상적인 언어로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낸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닫힌 마음을 두드린다. 이름 모를 이들이 남긴 부재중 통화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파동으로 다가가길 저자는 바란다.

 


 

“내가 외로운 이유는 누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꽤 오래전에 알았다. 그래서 나는 외로울 때마다 더더욱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에 집착하며 드라마를 쓴다. 쓰다 보면 알게 된다. 누구의 삶도 녹록지 않으며, 얕잡아 볼 수 없으며, 나만큼 이번 삶을 버텨내기 위해 사투 중임을. 그러다 얻게 되는 동질감과 공감은 내 안에 갇힌 외로움을 걷어내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지금 당신 외롭다면, 10만 명의 사람들이 듣는 이 받는 이 없는 전화기에 제 속내를 털어놓은 이 책을 읽어라.” 작가 노희경의 추천평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대부분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전시장을 빠져나갔다. “가슴이 먹먹하다”, “전시장에서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등의 후기들이 SNS에서 공유되었으며, 3년간 ‘부재중 통화’라는 이름으로 약 10만 통의 목소리가 남겨졌다. 저자는 글이 아닌 목소리로 쓰인 이야기들을 세상에 공유하기 위해 음성으로 남겨진 통화들을 모두 텍스트로 옮기는 과정을 거쳤다. 이 책에는 우리 삶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450개의 부재중 통화를 담았다. 차마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홀로 수많은 말을 삼켜야 했던 이들의 나직한 고백은 삶의 진실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전시장에 남겨진 부재중 통화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 과정, 전시장의 풍경까지 담았다. 전시의 한 일부로서 설은아 작가는 사람들이 남긴 부재중 통화들을 세상의 끝에 놓아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18년 첫 전시로 모인 부재중 통화는 총 2,690통이었고, 이 목소리들을 2019년 2월 지리적 세상의 끝,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의 바람 속에 놓아주었다. 고요하고 광활한 우수아이아의 자연 속에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려주는 퍼포먼스 영상은 세계 3대 단편 영화제인 ‘탐페레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국제 경쟁,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다. 우수아이아 이후 모인 부재중 통화들은 사하라 사막의 바람 속에 흩어질 예정이다.

우리는 하루 평균 손바닥 안에서 150미터의 스크롤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어떤 게시물이 올라왔는지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더 빠르고 더 많은 양의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은 공허한 느낌이 든다. 환영받을 만한 일상을 편집해 올리고, 어둡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최대한 감추고 나면 오히려 외로워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을 깊숙이 숨긴 채 일상을 보내게 된다.

 


 

10만 통의 부재중 통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사랑하면서 괴로워하고, 사랑하면서 외로웠던 이야기들이 남겨졌다. 그러나 10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의미로 많이 남겨진 통화는 ‘침묵’이었다. 용기를 내 수화기를 들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끊어버린 통화들이다. 목이 턱 막히고, 눈앞이 흐려져 울 것 같아 끝내 머뭇거리다 전화를 끊는 경우였다. 그들이 차마 꺼내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둔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이 책은 우리의 말이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떠한 비난이나 충고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언제든 전화번호 1522-2290을 통해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 참여할 수 있는데, 지금도 매일 누군가의 부재중 통화가 남겨지고 있다. ‘힘들 때 거는 전화번호’로 트위터에서 수만 차례 리트윗되며 하루 만에 약 7천 통의 부재중 통화가 쌓이기도 했다. 이름 모를 이들이 남긴 부재중 통화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파동으로 다가가길 저자는 바란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진정 위로가 되는 건 “괜찮아, 힘내”라는 말보다,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수화기를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사람도, 그 목소리를 들어준 사람도 모두 위로받는다.

 

편저자 : 설은아

 

진정한 소통 한 조각이 이 세상 혹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러. 설은아는 국내 웹아트 1세대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99년 웹사이트 ‘설은아닷컴’으로 제1회 국제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그 후 ‘포스트비쥬얼’이라는 디지털 광고대행사를 만들어 2004년 한국 최초로 칸 국제광고제에서 사이버 부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나이키, 이니스프리, 유한킴벌리 등의 디지털 캠페인을 맡으며 70여 차례 해외 광고제에서 수상했고, 2019년 ‘대한민국디자인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최근엔 20년간 재직했던 일을 떠나, 그동안 꿈꿔왔던 작가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시도로 소외된 소통을 주제로 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를 선보였다. 2018년 12월부터 시작된 이 전시는 2021년까지 약 10만 통의 목소리를 모았다.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바람 속에 놓아주는 퍼포먼스 필름은 세계 3대 단편 영화제인 ‘탐페레 국제 단편 영화제’에서 국제 경쟁, 다큐멘터리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다. 앞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귀한 이야기들을 두드릴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seoleuna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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