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마주할 수 있다면
탐신 머레이 지음, 민지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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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마주할 수 있다면』은 인공심장으로 평생을 살다 기적적으로 심장 이식을 받은 조니의 눈에 사고로 쌍둥이 오빠를 잃은 기증자의 여동생이 들어오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다 보니 점점 깊은 구덩이로 빠지던 두 사람의 만남. 공허와 슬픔이 켜켜이 쌓여 고개만 겨우 빼꼼 내밀고 숨을 쉬며 살아가던 두 사람 사이에, 독인지 약인지 알 수 없는 관계에서,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가 시작된다.

기적적으로 심장 이식을 받은 조니는 평범한 삶 앞에서 어쩐지 더 막막하고 공허하다. 평생을 인공심장으로 병원 생활을 해왔기에 병원 밖의 삶이 버겁고,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 왠지 심장 기증자를 찾으면 기적 같은 자신의 삶의 목적도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헤매다 보니 짐작 가는 사람, 사고로 목숨을 잃고 심장을 기부한 레오라는 남자아이가 있다. 레오에 대해 알아보던 중 우연히 쌍둥이 여동생 니브와 만나게 되고, 니브의 눈에 담긴 슬픔과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든다. 레오의 심장을 가지고 이렇게 마음을 줘도 되는 걸까. 윤리적 문제일까, 생물학적 문제일까. 인공 지능의 인간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저자가 새로운 시각의 문제를 던지는 느낌이다.

 


 

“그는 어쩌면 이 슬픔을 극복하게 해주는 빛 같아.” 사고로 쌍둥이 오빠를 잃고 슬픔과 상실감으로 가득한 니브. 삶 전체가 눈부시게 빛났던 오빠 때문에 항상 빛에 가려져 살던 니브는 오빠를 떠나보내고 나서 ‘잘난 레오의 동생’이라는 반쪽짜리 타이틀마저 잃은 채 그늘에 갇혀버린다. 그런 니브 앞에 오롯이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조니가 나타나 어깨를 내어준다. 무언가 숨기는 게 가득해 보이지만 자기와 유사한 공허함을 지닌 조니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버리게 된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다고 생각하지만, 각자의 이유로 멀어지려 하는 두 사람. 둘의 시점이 교차되며 담아내는 사랑과 슬픔, 죄책감, 공허함 등의 감정이 얽혀 예측 불가능한 감정선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을 싹틔우고 서로를 보듬으며 위기를 극복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저미게 했다가 이내 다시 벅차올라 따듯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감정을 가진 인간과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의 인간이 대비되어 독자 앞에 그려지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의도를 오버센스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읽으면서 떠오르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절절한 로맨스가 중심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또 한 번 매료된다. 운명적인 듯, 필연적인 듯한 이들의 이야기는 ‘심장 이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펼쳐진다. 로맨스 소설의 대가 조조 모예스가 탐신 머레이 작가에게 휴가지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게 되어 심장을 기증한 소년에 대한 기사를 전달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작가는 남겨진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소년의 도움으로 새 삶을 찾은 사람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그렇게 조니와 레오, 그리고 니브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심장을 이식받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심장의 주인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고 한다. 이는 심장이 우리의 영혼이 깃들었고 사랑의 원천이라 여겨진다는 관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조니 역시 마찬가지이다. 왠지 심장 주인인 레오의 피가 흐르는 거 같고 레오처럼 행동할 수 있을 거 같다. 난감한 상황에 처하면, 레오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부터 떠올린다. 그렇기에 더욱이 니브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게 되고, 왠지 니브와 가까이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인 것만 같다. 또한 조니 몸에 레오의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니브조차 함께 하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조니의 생각은 이미 온 마음이 서로를 향하는 둘의 관계를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

 


 

상실과 공허에 잠식되어버린 조니와 니브는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까지 파국으로 치닫으며 스스로를 철저히 더 단절시켜버린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니브, 지나온 삶 자체가 텅 빈 조니는 과연 문제를 극복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오롯이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리즈 북 어워드’, ‘햄프셔 북 어워드’ 수상에 이어 ‘영국 올해의 로맨스 소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탐 머레이 작가의 첫 한국어 장편소설이다. 수상작 후보의 추천사 등을 통해 보면 인공지능 인간 출현을 앞두고 저자가 또 다른 시각에서 제기한 문제를 떠올리는 것 아닌가 하는 독자의 의구심은 뒤로 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 문학부터 로맨스 소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탐신 머레이 저자의 특유의 말랑말랑하면서도 따듯함을 가진 문체와 서정에, 삶과 죽음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대한 절절함까지 담은 소설이라는 평에 독자의 조그마한 의구심은 단지 하나의 의혹을 더할 뿐인 것 같다.

 

“그만해, 잭슨.” 나는 책가방을 집어 들며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잭슨이 바로 나에게 다가와 땀에 젖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말했다. “어디 한 번 그만하게 만들어보시지?”

예전의 조니였다면 이쯤에서 뒷걸음질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난 더 이상 예전의 조니가 아니다. 내 안에는 레오의 심장이 뛰고 있으며 그가 살았던 삶의 기억과 모습을 지켜가야 한다. 나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그를 노려보았다.(p.255)

 


 

엄마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악몽 같은 시간을 견디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 그러는 중이다. 하지만 질식시킨다는 표현은 사실이었다. 엄마가 나를 쫓아다니며 다그칠 때는 정말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마에게 못되게 굴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시선을 옮겨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오빠의 사진과 그 옆에 있는 축구 경기 일정표를 보았다. 엄마와 내가 언쟁을 할 때면 늘 그러듯이 오빠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얇은 잠옷 위로 손톱을 세워 가려운 팔꿈치를 긁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오빤?” 오빠가 나를 약 올릴 때면 내가 늘 그랬듯이 낮게 쏘아붙였다. “꺼지란 말이야.”

그러나 내쳐진 사람은 오빠가 아니었다. 오빠를 잃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건 바로 우리였으니까.(p.279~280)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조니가 말했다. “네가 내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어. 알지?”

나는 순간 숨이 막힐 듯 놀라 그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뭐라고?”

조니는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면서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선 행사에서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온통 네 생각뿐이었어. 그 후로는 너의 모습 외에 다른 건 그릴 수 없었지. 그러면서 동시에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손에 들었던 스케치북이 침대 위로 떨어뜨렸다. “도대체… 왜?”

“내가 말했잖아.” 조니는 점점 더 얼굴이 붉어졌다.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네 생각뿐이었다고. 그런데 내가 과연 너에게 다가가도 되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p.371)

 


 

저자 : 탐신 머레이

 

그림책에서부터 로맨스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콘월에서 태어나 영국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살았다. 현재는 남편과 딸, 아들과 하트퍼드셔에 살며 런던의 시립대학에서 아동문학을 가르친다. 지은 책으로는 『탱글우드 동물공원TANGLEWOOD ANIMAL PARK』 시리즈를 비롯해서 『완벽한 캐시디COMPLETELY CASSIDY』 시리즈 등이 있다.

『너와 마주할 수 있다면(INSTRUCTIONS FOR A SECONDHAND HEART)』은 영국 로맨스 소설가 협회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로맨스 소설상 최종 후보작에 올랐으며, 리즈 북 어워드와 햄프셔 북 어워드에서 각각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자 : 민지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에 살면서,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꼴찌 마녀 밀드레드』 시리즈, 『메모왕 알로와 미스터리 학교』 시리즈, 『동물농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화 컬러링북』,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 『불법자들: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메이슨 버틀이 말하는 진실』, 『갤럭시』, 『착한 소녀의 거짓말』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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