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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평점 :
독자가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었던 때는 청소년기 때다. 그리고 1년 전쯤 다시 읽었다. 작품성보다는 '연애 소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격정의 사랑을 그린 이 책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특히 작가가 러시아(구 소련) 작가라는 점도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자가 청소년 때는 소련 해체 전이라 우리로서는 적성 국가였고 그들의 정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마저 국내 유입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통제를 통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 소설은 소련이 들어서기 전 제정 러시아 시절의 이야기이고 당시 러시아의 정치 및 사회가 왕과 귀족 중심의 체제였고, 국민은 도탄에 빠진 상태여서 인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소련 공산주의가 들어서기 좋은 토양이었다.
더욱이 이 소설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부패 등을 정확하게 담고 있어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 타파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소설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문학적 한계선에 정확히 닿아 있다고 봐야 한다. 제정 러시아의 부패 정치와 귀족들의 향락의 재정을 담당한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표현함으로써 반정부, 반왕정, 반귀족의 민주주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독자도 청소년기 때는 러시아(소련)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소식이라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차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 상태였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이며 6.25때 남침을 묵인하고 북한에 무기를 원조해준, 우리로서는 적성국가였고 원수의 나라라는 사실만 학교에서 배웠을 뿐이다.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대문호의 작품이라는 것과 정치적 이념이 없는 단순 문학적 성과만 높이 평가돼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롭게 번역 출판됐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도스도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하면 3대 대문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인간 삶'에 맞춰져 있어 도스토옙스키와 대조되는 듯하다. 아무튼 그때는 톨스토이는 사회적 신분에서 작품 평가가 조금 절하되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 도스도옙스키와 달리 백작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귀족 계급으로서 이룬 러시아 문학의 최고봉 중의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격정적인 연애소설이 가능했던 것도 그가 귀족 출신의 작가라는 점이 한몫 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해본다. 그러나 이 소설이 안나 카레니나와 그 남편 카레닌, 안나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브론스키의 이야기만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격정적인 연애소설로서만 한 자리를 선점하였을 것이다. 연애소설 자체가 주는 매력과 불안과 괴로움, 질투, 증오, 광기의 감정들이 가져오는 인간적 고뇌, 심리적 통찰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에 대비되는 레빈과 키티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 놓음으로써 독자들이 더욱 극명하게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도록 만든다. 레빈과 키티가 인연을 맺기까지, 안나와 브론스크가 인연을 맺기까지 그들 모두의 인연의 고리가 얽혀 있음도 소설의 긴장감과 상처를 극대화시키며 한 단계 높은 진지한 성찰을 하도록 이끈다. 안나 카레니나의 '당신의 아내로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는 말에는 인간의 도덕과 시선이란 것이 얼마나 넘어서기 힘든 현실인가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녀 또한 순진하게 행복을 그려 보는 듯하지만 결국 이곳,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세상 모두로부터 버림받더라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던지더라도 당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격정. 가슴 안에 생의 불꽃을 구원과도 같이 달고 있던 사람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대상을 만났을 때 할 수밖에 없는 선택. 마음속에 폭발하기 직전처럼 부풀어 오른 열망을 간직하던 사랑이 그 촉매제를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도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전부를 걸고 만다.
『안나 카레니나』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이유는 치명적인 사랑이야기가 주는 흡입력은 물론 제도와 가족의 문제,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생활, 계급 간 갈등과 인간의 도덕적 모순, 농업 경영 문제,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박애주의 등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발전시킨 뛰어난 작가적 역량에 있다. 일찍이 토마스 만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고 한 점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고 격찬하였으며, 실로 이 소설은 그 찬사에 어긋남이 없는 걸작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또 하나의 장점은 전지적 시점임에도 내면의 독백을 통해 인물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 계승자답게 탁월한 사실성,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심리적 통찰, 역사적 특징을 포착하는 능력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소설은 격정적 사랑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삶에 대한 허무주의와 싸우는 등장인물(레빈으로 대표되는)의 이야기가 심도 있게 진행된다. 이는 톨스토이 자신이 젊은 시절 거부하지 못하고 즐겼던 쾌락적 유희와 뒤따라오는 허무함, 자괴감,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처절히 괴로워하며 힘들어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귀족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직접 개선하지 못하는 자책감과 이렇게 살아서는 '인간도 나라'도 안 된다는 뼈저린 반성의 성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무상함, 정서적 불안정함과 여기에서 오는 정신적 위기는 톨스토이 자신이 고작 9살이던 때에 부모를 잃은 경험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적 자아와 실제 모습 간의 격차, 자신의 부부 사이도 『안나 카레리나』에 그려 놓은 레빈과 키티처럼 이상적이길 바랐으나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했던 현실, 문학을 포기하고 종교에 깊이 빠질 정도로 힘겹게 겪었던 삶의 위기 등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소설의 진정성을 더한다.
최근 소담출판사에서 3권으로 이 책 『안나 카레니나』를 완간했다. 러시아어로 쓰였으니 당연히 번역자에 관심이 높다. 옮긴이는 이은연으로 러시아 국립 비노그라도프 러시아 언어학연구소에서 의미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서경대학교, 육군정보학교, 국방어학원 등에서 강사 생활을 했고,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일했다. 현재 육군군사연구소에서 6.25전쟁 관련 러시아 자료를 수집 및 번역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동아시아외교문서해제1』, 『근대동아시아외교문서해제10』, 『근대동아시아외교문서해제16』 그리고 주요 역서로는 『대위와 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도스도예프스키 단편집』, 『톨스토이와 떠나는 내 마음으로의 여행』, 『6.25전쟁 시 피아 부대편성 및 무기ㆍ장비』(공역), 『소련이 기술한 6.25전쟁1』, 『소련이 기술한 6.25전쟁2』 등이 있다. 원저자와 번역가, 출판사의 신뢰할 만한 조합이라고 생각된다.
3권으로 펴낸 이번 번역본의 1권의 내용은 페테르부르크의 고위 관리의 아내이자, 사랑스러운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가던 아름다운 여인 안나 카레니나는 오빠 스테판 아르카디치 부부 사이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인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국 사교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두 사람은 모든 이들에게 외면당한 채 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그들의 사랑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키티와 결혼한 레빈은 영지의 농촌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형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레빈은 키티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사람은 타인과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작품 발단 부분에서 저자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고 했다. 안나와 키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첫 단추는 안나의 오라버니 스테판과 그의 아내 돌리의 가정사로 시작됐다. 그들이 여성과 남성으로 사는 방법, 아내와 남편으로 사는 방법, 그리고 다른 개체자로 사랑을 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 행복과 불행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이제 시작인 일탈의 감정선들이 무의미하게 달려갈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의 갈등과 선택에 응한 심리를 들여다보는 은밀한 소설 속 감정 이입이 인물들을 내 자유의지대로 응원하게 만든다. 비록 불륜이지만 안나의 움직이는 사랑을 더 과감하게 보고 싶기도 하다. 2권이 기대되는 이유다.
저자 :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과 아홉 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