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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ㅣ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평점 :
철학자 강신주를 만나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직접 볼 기회도, 그의 책을 읽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읽을 생각까지는 해보질 못했다. 그의 철학이 독자의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닌데 유독 그의 책을 읽어보지 못한 이유는 독자가 철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독자는 철학을 햑교에서도 또 다른 교육기관에서도 배워 본 적이 없다.
최근 읽은 철학 관련 서적을 빼면 대학 때 한 학기 들은 '철학개론'이 전부다. 철학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도 못했고, 또 사회에서도 철학과 출신은 직장 채용이 잘 안 되는 분위기여서 더욱 멀어졌던 것 같다. 군부 독재 시절 철학은 굉장히 집권자나 권력층에서 굉장히 꺼리는 학과였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종합대학교라고 해도 '철학과'가 없는 대학도 많았다. 인문계열에 철학과도 없는데 과연 종합대학이라 일컬을 수 있는가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철학과는 몇몇 종합대학교에서만 학과가 개설되어 있었던 시절이 그 시절이었다. 실제로 철학하는 사람들은 반항적 기질이 있는 듯하다는 느낌은 많이 가졌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하나같이 현실 비판은 정치 비판, 권력 비판을 했다. 운동권 학생들보다 더 격렬하고 뜨거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독자는 이유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철학을 접하지 못하고 대학도 졸업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철학은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식을 강조하는 대화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삶의 현장에서 철학은 별 필요하지 않은 학문으로 생각되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쏟아져 나온 서적 가운데 철학책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에 독자는 놀랐다. 의학이나 심리학 등이 필요하다고는 쉽게 수긍이 가지만 철학은 왜 감염병 사태에 필요한 걸까. 그러다 한 권, 두 권 읽다보니 철학은 모든 학문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학문 자체가 우리의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점도 인식한 후였다. 인간의 삶과 연계되지 않은 학문을 힘들여 배우고 연구하고 탐구할 필요는없다는 사실을 왜 학교 다닐 때는 몰랐을까. 출간된 책은 대부분 서양철학 책이었다.
뒤늦게 철학 책을 읽어본 것으로만족해야 할 상황이지만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죽어도 한이 안 될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철학은 독자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이 책도 철학을 깨닫게 된 것이 독서의 이유가 됐다. 강신주의 이름만 들었지 그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는 잘 몰랐다. 이 책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도 사실은 위로 에세이쯤으로 생각했던 사실도 고백한다. 철학자가 에세이로 힘든 시대를 위로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이 책은 인터뷰집 시리즈 〈EBS 인생문답〉의 첫 책으로, 자신만의 철학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쟁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 시대의 문제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고민했던 인물들의 말과 생각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나. 인문, 경제경영, 교육 등 당대의 대표 인물을 만나 인생을 묻고 철학을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이 책은 철학자 강신주를 인터뷰한 형식으로 그의 말을 풀어쓴 것이다. 인터뷰어는 지승호다. 지승호는 특별한 재주가 없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사회적 문제를 파헤치는 인터뷰어의 역할을 하는 문답 대화를 통해 우리 삶을 탐구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길을 제시하는 학자처럼 느껴진다. 강신주와의 인터뷰도 10년 만에 만나 이뤄진 것으로 소개된다. 몸이 불편한 강신주 철학자와의 11번의 만남을 통해 그의 철학과 사상, 그가 가진 삶의 방향도 제대로 짚어냈다는 독후 느낌이다.
지승호는 강신주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책으로 펴낸 출판사 측은 두 사람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끊임없이 당대의 문제에 천착하며 시대적 징후를 읽어온 인터뷰어 지승호와 시대의 징후로부터 철학적 담론을 생성해온 강신주의 만남" 이 책은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 작가가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철학자 강신주를 10년 만에 만나 인터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자본주의는 매번 새롭게 변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유일한 체제이며, "자본주의의 전대미문성은 거기에 있다"고 진단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또 필수품을 낳고, 그 필수품이 새로운 사치품을 만들고, 이 새로운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거기서 자연과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강신주의 말 일부를 전한다.(p.9)
지승호는 10년간 철학자 강신주의 타인에 대한 애정은 더 단단하고 깊어졌다고 인터뷰 소감을 밝힌다. 타인은 물론, 가족마저 ‘기브 앤 테이크’ 관계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우리 존재는 ‘교환’이 아닌 ‘불가능한 교환’의 관계임을 일깨운다. 또한 10년간 철학자 강신주의 말과 생각은 더 강력하고 신랄해졌다. 강력한 자본주의 세상을 ‘스마트폰’으로 압축하여 분석하고, 누구나 ‘작은 자본가’가 되기를 꿈꾸는 현시대를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애독자들이 유독 궁금해하는 건강 문제와 집필 중인 책 이야기도 담았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담론들과 맞서 싸우며 삶과 시대에 대한 강신주만의 성찰을 오롯이 담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그늘이 넓은 나무'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철학자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거리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강신주는 어느덧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가슴에 그는 몰래 폭탄 하나씩 넣어두는 것만 같다. 그것은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무기보다 강한 폭발력을 지닌, 세계를 정화하는 작고 단단한 연꽃 씨앗과도 같다. 그리고 무심한 듯하지만 몸 안에 수많은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결핍과 허기 가득한 질문들을 주머니에 넣고 와서 철학자 앞에 가만히 놓아둔다. 두 사람의 치열하고 뜨거운 만남은 우리 시대의 찢긴 의식들, 갈라진 세계를 뜨겁게 용접한다. 좀 더 나이 들고 아픈 몸으로 만난 두 사람의 말과 생각은 '몸의 시간'을 통과하며 역설적이게도 더욱 힘 있어졌고 폭 넓어졌다.
21년 동안 60권이 넘는 인터뷰 책을 출간한 인터뷰어 지승호는 혐오가 혐오를 부추기는 시대, 가족이라는 공동체마저 위태로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엽기적인 사건들, 팬데믹과 언택트 시대의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이에 더해서 강신주의 철학과 담론, 집필한 책과 작업 중인 책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쏟아놓는다. 이에 대한 답변을 통해 지승호는 “현상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라고 털어놓으며, 강신주라는 철학자가 “점점 더 본질을 파고들어 꿰뚫어가고 있다”고 긴 만남 후의 감회를 전한다.
강신주의 말과 생각은 불편하다. 내가 속한 세계가 '억압체제'이며 “거대한 요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현실을 까발려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과 생각은 뜨거우면서 동시에 상쾌하다. 사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방향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를 가능성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모든 가치를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발적 노예, 출퇴근 노예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벤담적 사고를 지닌 이기적 개인이며,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로 포섭된다고 비판한다. 강신주가 드러내는 현실 속의 ‘나’는 이렇듯 무엇인가로부터 목이 눌려 있다. 이 불편함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신주는 내 몸을 누르고 있는 형상을 들춰내고 그 압력을 온전히 느끼게 만든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가능성 너머로 가는 실천의 길을 함께 제시한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철학자 강신주가 한 말을 정리해 우리에게 전한다. “강자에게 복종하지 말고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다, 약자를 돌보는 것이 자유인의 자긍심이고 당당한 사람의 자긍심이라고 나는 말했어요. 어떤 강자라고 해도 그 사람이 힘이 세고 나를 억압한다고 하더라도 강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야 자유인이라고 배웠으니까요. 당당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공동체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고, 최제우가 말했던 하늘처럼 존귀한 님들의 공동체고,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들이 살고 있는 땅, 불국토(佛國土)예요. 원효가 꿈꿨던 불국토. 모두가 부처고, 모두가 하늘님인데 누가 누구를 지배해요. 누가 자유인의 목을 눌러요.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내 몸에 걸터앉을 수 없어요. 사자를 죽여야만 사자의 목에 발을 올릴 수 있는 거죠. 강자한테는 사자 같은 사람이어야 해요. 그것이 자유인의 전통이에요.” (p.316)
강신주는 억압체제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가 “가슴속에 품어야 할 하나의 가치”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누군가를 지배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타자와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소수 지배자가 되거나 그들 편을 들지 않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인문주의적 패밀리의 구축을 이야기한다. 결국 타인에 대한 애정과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특히 ‘스마트폰 사회경제학’과 ‘팬데믹과 언택트 시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강신주는 전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의 원인을 자본의 팽창과 세계화 그리고 몸의 로컬리티, 인간의 시간을 넘어서는 자본의 속도에서 찾는다. 그리고 여기서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전염병은 또 온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가속화되는 스마트폰 시장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새로운 사치품을 만들고, 이 새로운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자연과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향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어요. 자본주의는 계속 신제품을 만들어서 사용가치가 다하지 않은 제품을 버리고 새로 사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산업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이전 시대에서는 어땠을까요? 낫이 다 닳아서 쓸모를 다했을 때 바꿨어요. 당연히 낫을 다량으로 소유할 필요가 없었죠. 집에 옷이나 신발이 쌓여 있지도 않았어요. 옷이 해지거나 신발이 닳을 때 옷이나 신발을 구하면 되니까요.” (p.125) 강신주는 이러한 인간의 소유 욕망,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려면 각자가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인의 정신을 가질 때 비로소 “타인 역시 존중의 대상 그리고 아낌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자유인들이 꿈꾸는 공동체의 이념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생산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명령하는 상전을 뽑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대표자는 언제나 소환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이 책에는 '몸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한 철학자의 생각과 말들이 그늘을 드리운 나무의 잎처럼 아우성치는 소리가 담겨 있다. 철학자 강신주는 모두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내기를 바라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간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를 바라며 바람처럼 우리를 흔들어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폭주하는 기차의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소통 가능성의 조건을 만들고 있다.
저자 : 강신주
철학과 삶을 연결하며 대중과 가슴으로 소통해온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동서양 철학을 종횡으로 아우르며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인문학적 통찰로 우리 삶과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들에 다가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강신주의 역사철학 · 정치철학 3 : 구경꾼 VS 주체》 《강신주의 역사철학 · 정치철학 1 : 철학 VS 실천》 《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의 감정수업》 《강신주의 다상담》 《김수영을 위하여》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이 있다.
저자 : 지승호
열심히 읽고 성의껏 듣는 것밖에 다른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전업 인터뷰어로 살고자 하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21년째 꾸준함 하나로 버티며 60여 권의 인터뷰 단행본을 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강신주) 《홍혜걸을 말한다》 《잡담》(고종석)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 하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공범들의 도시》(표창원)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닥치고 정치》(김어준) 《괜찮다 다 괜찮다》(공지영) 《신해철의 쾌변독설》 외 다수의 책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