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그녀들 일본문학 컬렉션 2
히구치 이치요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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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 『발칙한 그녀들』의 작가들은 일본 현대 여성작가는 아니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근대 일본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몸소 겪으며 여성운동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한 작가들이다. 앞서 나가는 생각으로 시대를 거슬렀던 일곱 명의 이들 여성 작가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당시 일본의 시대상이나 사회 현실, 여성의 사회적 위치 등을 살필 수 있는 문헌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돋보이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의 각 1편씩의 단편소설을 묶어 출판사 측에서 기획한 〈일본문학 컬렉션〉의 일환으로 출간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발칙한 그녀들』은 새로운 문명이 한창 유입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표된 작품들을 모았으며, 제목인 ‘발칙한 그녀들’은 작품을 쓴 여성 작가들 그리고 그녀들의 분신이었던 작품 속 여성 인물을 의미한다.

책의 첫 작품 「배반의 보랏빛」은 남성 중심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불륜이라는 소재를 다뤘다. 1890년 당시 일본에서는 메이지 민법이 공표되었지만 여전히 봉건제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남녀 불평등 규정이 많았고 가족 제도에서 여성의 법적 지위는 매우 낮았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불륜을 다루었다는 건 매우 파격적인 시도다. 이 작품은 저자 히구치 이치요(1872~1896)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 중 유일한 미완성 단편이다. 완결을 짓지 못하고 요절하는 바람에 작품으로서는 불완전하지만 상편의 내용만으로도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저자는 여성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없는 시대에 불륜이라는 대담한 선택을 하며 세상의 인습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소설이다.

 


 

일본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인 시미즈 시킹의 소설 「깨진 반지」는 당시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사회적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쓰였다. 그리고 합의 이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혼으로 인해 여성은 많은 비난과 모욕의 대상이 되고 본인한테도 후회와 분노가 남을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그런 체험을 그저 단순히 개인적인 일로 끝내지 않고 공론화하면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시미즈 시킹은 결혼하기보다 교사로 살고 싶었지만 부모의 강요로 결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다른 여성이 있었고 결혼한 후에도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결국 4년 뒤 이혼한다. 그후 여권 운동에 눈을 뜨게 된 시미즈 시킹은 〈여학잡지〉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 소설로 문단에 등장했다. ‘그 시대 최고의 젠더적 작품’, ‘여성들의 결혼 생활을 그린 선구적인 실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다무라 도시코의 「그녀의 생활」,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여성들도 성장해야 한다는 작가의 사상이 잘 반영된 미야모토 유리코의 「아침 바람」 등을 읽어 보면, 백여 년 전 소설 속에 그려진 여성의 삶이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녀들은 당시 여성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여성의 자립을 주장하기도 한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우리의 조선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시대임을 알 수 있는 전근대적 봉건사회의 시대나 다름없다. 일본은 1976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국가의 근대화를 시작했으나 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이전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의식이 사회의 주된 흐름이었던 것으로 소설 속의 인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독자는 소설 속의 인물들과 시대적 배경 설명, 또 사회 현상 등을 주목하며, 일제 강점기 시절 그들의 사회인식을 살펴보는 기회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여자(女)」는 당시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여자들은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존재란 말이야. 약은 건지 모자란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법정 같은 데서도 이건 이래서 이렇다고 딱 잘라서 말하는 증인들 대부분은 여자거든. 남자들이라면 확실히 기억이 안 난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텐데......" 여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진술을 한다고 비하 불평하는 남자 변호사의 말이 나온다. 이 작품의 저자는 미즈노 센코로 일본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 냈다. 자연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성장한 작가의 소설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일본 문단의 평이다. 누구나 무심코 할 법한 작은 거짓말을 소재로 과연 인간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얼마나 정직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녀는 여류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요미우리신문〉의 부인 기자로 활약했다.

 


 

「철 지난 국화(晩菊)」의 하야시 후미코는 25세 때 〈여인예술〉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인 「방랑기」가 평판을 얻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1948년 「철 지난 국화(晩菊)」로 여류문학자상을 받았다. 중국, 파리, 런던 등을 여행하면서 기행문을 투고했으며, 중일전쟁 중 〈매일신문〉 특파원으로 현지에 가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하야시 후미코가 막 등단했을 때 문단에서는 '가난을 파는 아마추어 소설가', '단 6개월의 파리 생활을 팔아먹는 벼락부자 소설가' 그리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중에는 '북치고 나팔 불며 군국주의를 부추긴 어용 소설가'라며 박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문단의 평가와는 별개로 대중은 그녀의 작품을 지지했다. 전후 일본 국민들의 정서가 드러나는 대목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작가가 서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인기 작가가 된 후로도 집필 의뢰를 거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집필을 계속했다.

이 소설 「철 지난 국화(晩菊)」는 작가가 성숙기에 쓴 작품(1948년)으로 전후를 살아가는 여성을 그린 걸작으로 꼽힌다. 나루세 미키오 감독에 의해 1954년 영화화되었으며 1960년에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50대 중반의 은퇴한 게이샤인 주인공 긴과 부모 자식뻘만큼 나이 차이가 나는 어린 옛 애인 다베가 조우하게 되면서 둘 사이에 오가는 다양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돈을 노리고 찾아온 젊은 옛 애인과 주인공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젊음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서로 부딪히며, 화자의 시점이 여자에서 남자로, 남자에서 여자로 교차될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남자와 여자, 젊다는 것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의 작품이 나열되어 일본 여성 근대문학을 접하는 귀중한 기회이어서 꽤 의미 있는 독서이지만 독자에게는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여성들도 성장해야 한다는 사상이 잘 반영된 미야모토 유리코의 「아침 바람」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녀가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주자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아침 바람」은 크게 세 가지 시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부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세로운 문명과 도시화, 그에 따른 빈부 격차 등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들판이었던 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또 비행장으로 바뀌기도 한다. 쪽방촌이 사라지고 거기에 공장이 들어선다. 도쿄에서는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세상은 점점 변해가는데 서민들의 삶은 날로 궁핍해진다. 두 번째는 좌익 활동으로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 죽은 시인의 아내 오토메에 관한 이야기다. 미야모토 유리코가 1934년에 발표한 「고이와이의 일가」는 프롤레타리아 시인 곤노 다이리키 일가, 특히 그의 부인 쓰토무로, 그리고 부인 히사코를 오토메라는 이름으로 등장시킨다. 곤노 다이리키는 프롤레타리아 잡지 〈일하는 부인〉의 편집 일을 했으며, 1932년 구속되어 고문을 당하다 1935년 31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점은 작가 미야모토 유리코를 그대로 투영한 주인공 사요의 감정이다. 미야모토 유리코의 남편은 정치가이자 문예평론가인 미야모토 겐지이다. 그는 당시 좌익활동으로 스가모의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관동대지진을 혼자 경험하면서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러다 여동생의 아기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희망을 엿보기도 하지만 다시 예전의 그리움이 떠오르면서 과거의 장면과 오버랩이 된다. 그녀는 급격하게 변해 가는 세상에서 행복했던 과거의 단순한 일상을 그리워하며 울컥한다. 미야모토 유리코는 '성장'을 중요한 키워드로 잡고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우리의 힘든 현실을 잘 이해하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품에서 언급되는 '평범한 여자'는 이데올로기에 지쳐 잠재적인 가능성을 포기한 고독한 여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는 일본 문단의 평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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