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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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독자가 최근 읽어본 철학 서적을 중 으뜸이라 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여서가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박문재의 철학 강의라고 생각해서다. 독자는 박문재 번역자를 잘 알지 못한다. 직접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번역한 이 책에 신뢰감이 있는 것은 박문재 번역자의 다른 책을 조금 읽어봤기 때문이다. 어렵다는 그리스어와 로마어 많이 공부한 분이고 그의 번역본 철학서들은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리스 철학을 대표할 만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이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자에 따르면 『니코마코스 윤리학』는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가능하며, 유지되고 발전하는가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스로 이해하고 강의하기 위해 정리한 글이다. 1차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에우데모스가 스승의 강의를 필기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다시 원고를 정리해서 이 책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즉, 이 책은 ‘행복’이라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주제에 관해 인류 최고의 철학자가 제자와 아들과 공유한 매우 드문 ‘핫 콘텐츠’이다. 2,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 저작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자가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를 처음 읽는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교양 차원에서 읽다가 우연히 이 책의 발췌 번역본도 읽은 적이 있다. 수십 년 전 일이라 제목이나 번역자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이라고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래서 책의 구성이나 차례를 살펴보니 기억이 조금은 되살아난다. 이후 서양철학사 등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이처럼 자세하게 번역한 책은 처음이다. 한마디로 어렵다.

철학의 기본마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독자가 이해하고 소화하기에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번 기회가 아니면 죽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를 다시 읽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 읽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촘촘히 읽어 이해하려고 했지만 한 번 읽고 난 소감은 여전히 안갯속 같은 느낌이다. 다만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부분을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극히 일부를 알게 된다는 자부심이 일 정도로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되었다는 좋은 느낌이 꽉 차오르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미덕(아레테)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보았다.

 


 

번역자에 따르면 결과나 보상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사람들이 선택하고 싶어 하고,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족하는 상태를 말한다. 여러 감정과 욕망, 행동이 이성과 지성으로 잘 다스려지고, 지속적으로 삶의 의미를 충족하는 상태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후에 느끼는 성취감과 성장, 깨달음과 만족감 등이 어우러져 인생의 행복을 이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실천적 지혜”(프로네시스)를 통해 행동을 낳는 지식, 실생활로 이어지는 지식을 강조했다는 면에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체계와 영국의 공리주의, 서양 경험주의를 낳았고, 그것이 실용주의와 과학주의로 이어지면서 서양 철학의 중요한 뼈대를 형성했다고 번역가는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그리스어 원전을 꼼꼼한 해제 및 각주와 더불어 매끄럽게 옮긴 역자는 이 책에서도 380개의 세심한 각주와 군더더기 없이 전체를 꿰뚫는 해제, 그리고 중요 그리스어 용어 15개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이성과 지성이 활동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와 변주, 어울림이 결국 ‘에우다이모니아’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독자들은 지적인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첫 장에서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썼다고 밝힌다. 사람들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행복’이라고 부르는데, 그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 모든 생물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 가장 좋은 것인 행복은 가장 즐거운 것일 수밖에 없다고도 하며,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천착해 들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대화하는 형식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는 것은 당시 스승들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독자의 협소한 추측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방법 두 가지가 당시 학문하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첫째, 그리스인들은 윤리와 관련해, 선악 개념이나 당위와 의무가 아니라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개념을 사용해 “좋은 것과 즐거운 것과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간 본성에 들어맞는 행복의 조건을 찾기 위해 거의 모든 인간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으며, 단지 겉모습뿐 아닌 미덕과 중용, 지성과 행동, 이성 등을 두루 살펴야 했다. 둘째, 저자는 모든 참된 지식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서 분리될 수 없고, 반드시 현실 삶 속에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번역자의 견해이다. 명료하고 세심한 분석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자의 배려에 감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과 즐거움에 관한 사람들의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의 백미는 단지 결론만 알고 끝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성실한 추론 과정과 통찰력을 확인하는 데 있다고 번역자는 「해제」를 통해 밝힘으로써 책을 두 번 읽는 느낌이다. 안갯속 같은 의미 해석이 깨끗하게 밝아짐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이다.

 


 

책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에 관한 글을 여러 편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그는 미덕이 특정한 사물의 고유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눈은 제대로 볼 수 있을 때만 선한 눈이다. 눈의 고유한 기능은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에게도 고유한 기능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성(‘로고스’)에 따른 혼(‘프쉬케’)의 활동이었다. 그는 혼의 이성적인 활동은 인간의 모든 의도적인 행위의 목적인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을 향한다고 가르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해 가르치면서 인간은 자기 고유한 본성에 주어진 일(‘에르곤’)을 해야 좋은데, 그 일을 위해 동물에게는 없고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도 이성과 지성의 활동(‘에네르게이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설령 먹고 마시는 것이나 단순히 감각적으로 살아가는 일에 잠깐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런 것은 동물에게도 있으므로 인간 본성에 고유하게 좋은 것은 아니다. 여러 감정과 욕망, 행동이 이성과 지성으로 잘 다스려지고, 지속적으로 삶의 의미를 충족하는 상태가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행복은 이성과 지성의 활동이므로, 첫 번째 활동은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생겨나는 여러 감정과 욕망을 이성으로 다스리고, 두 번째 활동은 “행위” 자체를 이성으로 다스리는 것과 관련 있다. 이 통제가 올바르게 이루어졌을 때, 우리에게는 어떤 성품(‘에토스’) 또는 상태(‘헥시스’)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미덕”(‘아레테’)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후에 느끼는 성취감과 성장, 깨달음과 만족감 등이 어우러져 인생의 행복을 이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로고스)과 지성(누스)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독자들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주제(여기서는 ‘행복’)를 놓고, 이성과 지성을 총동원하여 하나의 수준 높은 결론에 도달하는 한 철인(哲人)의 진지한 성찰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숨겨지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관조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단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단답형 결론이 아니라, 이 책의 내용으로 우리를 설득하며 강의하고 있는 현자의 미소를 떠올리며 찬찬히 읽는다면 평생 행복을 위한 사고 실험의 기초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준 높은 작업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다양하다는 번역자의 해석은 '참'이다. 2,300여 년이라는 시간적 격차, 그리스인들의 논리 체계와 다소 지루하고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논증 방식, 비슷비슷한 철학적 개념과 단어들, 원문을 성실하게 옮기더라도 뜻을 파악하기 힘든 저자의 난해한 글쓰기 방식 등… 읽고 바로 이해하는 독서에만 익숙한 독자들에겐 이 책이 즉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해주진 못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준 번역자의 자상한 배려에도 감사한다. 번역자는 하지만 인생 전체에 걸쳐 지속하고 깊어지는 행복의 길을 찾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보화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들려준 강의를 정리한 이 책을 통해 ‘회복탄력성’과 ‘긍정심리학’이 결합된 개념인 ‘에우다이모니아’(행복)에 이르는 길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자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고 책으로 펴낸 이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 그리스어 원전을 꼼꼼한 해제 및 각주와 더불어 매끄럽게 옮긴 박문재 번역자는 이 책에서도 380개의 세심한 각주와 군더더기 없이 전체를 꿰뚫는 해제, 그리고 중요 그리스어 용어 15개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깊은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역자는 과거의 번역어와 비교하면서 더 합당한 번역어를 제시하기 위해 애썼다. 독자는 촘촘히 읽어나가면서 한 가지 재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그리스 문명을 발전시킨 훌륭한 학자이고, 그리스는 민주주의 발상지이다. 당연히 훌륭한 철학자이자 학문이 뛰어난 3명의 철인의 민주주의 사상이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서 '평등'의 개념은 없었던 듯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자'가 아니란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행복' '좋음' '미덕' '도덕' '품격' '정의' '청치' '이성' '철학' '자제력' '사랑' '삶'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인간됨'이나 인간의 행동, 도덕 및 윤리 등을 설명하면서 당시 사회의 한 구성원인 '노예'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인식이 없는 것 같다. 노예들을 이성을 갖지 못한 '짐승'으로 간주하고 미덕과 절제가 없으며 본능적 사랑만을 가진 짐승과 다름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 구조가 그랬기 때문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당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인류 최고의 철학과 각종 학문을 가진 사람으로 폴리스 제도를 부정하면서 출발했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계급사회의 시민으로 모두 위계질서를 긍정했던 반민주주의자였다는 평가에 더 힘이 실린다. 더 공부하고 싶은 대목이다.

 


 

저자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17세 때 어머니마저 여의자 후견인 프록세노스는 스승 플라톤이 있던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로 그를 보냈고,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기원전 347년에 플라톤이 죽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철학의 후원자였던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 헤르메이아스에게 갔다. 거기서 헤르메이아스의 조카 피티아스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기원전 335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독자적인 교육기관 리케이온을 세웠고, 이것이 소요학파(逍遙學派)의 기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대부분은 이 기간에 쓰였다.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나서 아테네에 반마케도니아 정서가 강해지자 불경죄로 고발당한다. 이에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나, 그다음 해 62세의 나이로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위인이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지성과 관심 분야의 폭 그리고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가 다룬 분야는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아주 넓었다. 대표 저서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포함, 『수사학』, 『시학』, 『형이상학』, 『정치학』, 『자연학』, 『범주론』, 『명제론』 등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선악보다 훨씬 폭이 넓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여기서 “좋은 것”은 본성에 부합하는 것을 가리키며, 저자는 인간에게 가장 좋고 즐거우며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귀납적으로 추적해나간다.

 

역자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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