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기로운 검사생활
뚝검 지음 / 처음북스 / 2022년 2월
평점 :

대한민국 검사의 권한은 막강하다. 법을 공부한 적도, 법에 가까이 가본 적도 없는 독자로서는 법에 대해서 잘 몰라서 하는 말인지 모르지만 검찰권으로 대변되는 검사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데 별다른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마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산업화(경제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데 검찰을 앞세워서 처벌했기 때문에 검찰의 권한이 강화된 것에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법적으로 문제되는 각종 범죄는 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사회에서 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뛰어난 두뇌를 가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조선시대 과거보다 어려운 시험이라는 사법시험(이전엔 고등고시) 제도로서 엄격히 구별해 선발하기 때문에 사회적 신분 보장은 물론 특수한 직책 보장도 법적으로 갖추고 있다.
물론 지금은 '로스쿨 제도'로 바뀌었으나 잘잘못은 독자도 모르고, 필요에 의해 변경했다고 믿는다. 검찰 권한의 약화를 위해 도입한 장치인지 독자는 잘 모른다는 뜻이다. 또 사실 여기서 그 문제는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검찰' 하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독자가 꺼낸 말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등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의무를 헌법으로 규정하듯이 검사 역시 헌법기관으로 규정돼 있다. 막강한 권력은 잘못 쓰면 그 피해는 많은 국민들에게 가기 때문에 헌법으로 규정해놓고 의무도 주어지는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막강한 권력은 기소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검찰에게 수사권에 기소독점권마저 주었기 때문에 경찰은 검찰의 하부 조직인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진정 검찰을 권력기관으로 규정하는 또다른 이유는 이른바 '정치 검사' 때문이다. 권력의 맛을 알았는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더 큰 권력으로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검사가 정치에 관여하고 중립적이지 못할 때 벌어지는 폐해는 우리가 1987년 이전까지 당해온 각종 불합리한 정치 검사의 권력에 의해 자행된 것들에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권력 편에서 피의자를 처벌하고 하지 않는다며 '권력의 시녀'란 명예롭지 못한 별칭도 얻은 바 있다. 헌법기관으로 독립된 활동을 보장하고 있으면 거기에 따라 독립적이고 정치 중립적인 본분에 입각해 처벌해야 한다. 이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헌법을 위배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같은 기관에 있어도 맡은 보직에 따라 권한의 크기는 달라진다. 즉 검찰 내에서도 어디 검사이냐, 어느 부서이냐에 따라 권력의 크고 작음이 발생한다. 다루는 임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지방청 검사라고 해도 서울지검이냐 다른 지방 검사냐에 따라 검찰직 승진에 차이가 난다. 심지어는 서울지방검찰정 검사는 승진의 '0순위'라고 불리우는 때도 많았다. 어쩌면 지금도 내부적으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때 타 지방 검사들은 위화감도 있을 거고, 윗 사람을 잘 사귀어 두거나,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승진의 기회가 점점 멀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줄서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슬기로운 검사생활』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일하고 하고 있는 뚝검(정거장 검사)이 쓴 첫 책이다. 검사라는 직업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음모를 파헤치거나 거악 척결 등의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이 세상에서 억울한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주된 일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거창한 서사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 다만 모두가 단순하게 사건이라 부르는 일을 각 개인의 우주가 담긴 사연으로 읽어 가며 묵묵히 해결하는 검사의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서울 지검 검사라고 부서에 따른 일의 과다가 있을 것이고, 권력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 수사 검사는 너무 많은 일에 시달리면서도 승진의 기회는 적지 않을까 하는, 독자의 생각은 법, 검찰을 잘 모르는 독자만의 오판이기를 바란다. 여느 검사나 처음 시작할 때는 정의 구현과, 범죄자 처벌을 위해 하루 24시간을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뚝심 있는 검사가 되겠다며 스스로에게 뚝검이라는 별칭을 지었던 '검린이'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단순히 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만난다. 그 속에서 저자는 넘어지기도 하고 새롭게 깨우치며 조금 더 단단하고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러한 소소한 사연으로 성장해 가는 검사 이야기임은 물론 공소장에는 다 담지 못했던 마음이 그득하게 적혀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법을 수호하는 검사의 뒷이야기를 통해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할 수 있도록 쓰였다.

이 책의 저자인 뚝검은 2013년 바뀐(개선된) 로스쿨을 졸업하고 2016년 검사로 임명됐다. 사시(사법시험) 출신이 아니다. 검찰 내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차이가 있지 않을까 독자는 생각해본다. 검사나 변호사들이 언론에 노출된 직위로 승진할 때나 국회의원 입후보 또는 정부 고위 관료로 픽업될 경우 대부분 '사시 몇 기'가 꼭 따라다닌 것을 보았다. 아마 군대 기수처럼 자체 서열의 기준이 되나보다. 그렇게 저자는 검사로 5년을 살았다. 그 앞에 붙는 검사라는 직함이 무거워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술회한다. 검사로서 내리는 온갖 결정들의 질량이, 쌓여가는 경력의 제곱만큼씩 늘어나 가슴을 짓눌렸다고도 말한다.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눈 내리는 설원을 하염없이 걷다가 돌아보니, 걸어온 흔적일랑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심정. 쉼표가 필요했다."(p.4~5)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밝힌다. "이 글은 검사로서 보낸 시간들과, 그 시간들이 겹쳐 흘러나온 공허를 이겨 내고자 그간의 궤도에서 벗어나 지나간 시간들을 잡아보려는 일련의 기록이다. 빈손에 무엇이 잡힐지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알 수 없다. 이 글의 끝이 대책 없는 결정에 후회한다는 자조일 수도 있고, 별 소득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한탄일 수도 있으며 가슴속까지 단단히 채운 모습으로 허탈과 우울에 젖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일 수도 있다. 이제 나를 스친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려 한다. 그 끝을 나도 모르니 심장이 뛴다."(p.6)

저자가 책을 쓴 이유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는다. 다만 검사로서 일한 과정에서 얻어진 우리나라 검사들의 업무 과다, 또는 업무상 피로감으로 인한 '번아웃' 등의 이야기를 주로 늘어놓았기 때문에 말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여야겠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데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한다. 굳이 밝히지 않은 일을 의혹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가을, 우연히 마주한 글을 보며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거대한 음모와 맞서고 거악을 척결하며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이 열정으로 충만한 검사가 아니라 따듯함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검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글로 바라보게 되는 검사의 모습은 일반 회사원과 너무나 닮았기에 묘한 동질감까지 일으키게 만들었다. 우리는 단순히 언론에 노출이 되는 사건들에 대해서 쉽게 생각을 한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운이 좋지 않아 벌어진 일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사람의 일이기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누구 하나 억울함이 없으면 좋겠다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검사들이다. 그들이 지위와 위치만 생각하여 편견으로 쌓아 올린 일반화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 낼 수 있는 이야기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다소 감정이입된 문학적 표현들이 엿보인다. "검사생활 동안 함께 근무했던 모든 분들 그리고 저마다의 인생을 내보여 준 사건당사자들까지. 그들이 저에게 내어 준 시간들이 저를 가만히 뒤따르며 제 등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 이 글의 끝은, 행복이었습니다."(p.299)

이 책의 1부에서는 뚝검의 검린이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로 사건을 통해 넘어지고 깨우치는 그의 성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우리가 쉽게 ‘검사라면 이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편견을 조금씩 무너트리는 에피소드가 곳곳에 있어, 검사들의 뒷이야기를 몰래 관람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2부에서는 저자를 찾아온 수많은 사연들이 등장한다. 합의금의 일부를 쥐여 주었지만 또다시 범죄의 발을 들인 중고나라 사기 이야기, 동물법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던 수봉이(가명) 이야기, 우리의 테두리 밖에 사람이라 아쉽게 세상을 떠난 외국인 근로자의 이야기, 무고로 시작하여 세 사람의 인생이 비극으로 치닫게 된 이야기 등. 저자에게 찾아온 사연들을 만나며 함께 가슴 아파하고 올바른 법을 구현하기 위한 고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3부에서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그것을 조심스럽게 밝혀내는 검사의 모습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거짓으로 누명을 쓰려 했던 이야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이야기, 마약에서 DNA를 발견하자는 기지를 발휘했던 이야기 등. 거짓에 반기를 들고 억울한 사람 편에 서서 싸우는 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4부에서는 이상적인 검사의 모습을 추구하려는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뚝검을 스쳐 간 변사 이야기,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안인득 사건, 여성 스토킹 사건을 주거침입죄로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뻔뻔하다 못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무고죄로 고소한 손님의 이야기 등. ‘단순 검사’가 아닌 ‘슬기로운 검사’로 단단해지는 과정의 이야기를 적었다.
저자 : 뚝검(검사 정거장)
2013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3년간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16년 검사로 임관했다. 부산서부지청과 진주지청을 거쳐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일하고 있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초록이 푸른 여름이 왔는데도 겨울만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트랙을 벗어나기로 했다. 봄이 오길 기다리며 천천히 걷는 동안, 법복을 입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우주와 서사를 마주하며 잠겼던 생각과 느꼈던 마음을 책으로 엮어 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