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느와르 인 도쿄
이종학 지음 / 파람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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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누아르(noir)'라는 단어가 나와 누아르에 대해 잠깐 백과사전의 지식을 빌려 쓴다. 누아르는 '검은'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 소개된 할리우드 영화들 중에서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B급 영화이자 어두운 분위기의 범죄ㆍ스릴러물들을 필름 누아르라고 불렀다. 1940~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범죄와 폭력을 다룬 영화들에 대해 프랑스의 '까이에 드 시네마'의 비평가들이 붙인 이름에서 시작된 필름 누아르는 음산한 톤과 어둡고 우울한 느낌의 영상이 특징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전후의 환멸감,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의 등장,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 독일 영화인들의 망명으로 인한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1941년),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1948년)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빅 슬립>(1946년), <포스 오브 이글>(1948년), <건 크레이지>(1950년), <그들은 밤에 산다>(1948년), <선셋 대로>(1950년) 등을 전후의 필름 누아르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는 프랑스 영화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현금에 손대지 마라>(1953),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7년), <지하실의 멜로디>(1963년) 등이 있으며, 살인청부업자ㆍ사립탐정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정하고 냉혹하게 범죄자들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1980년대 후반 범죄와 폭력세계를 다루며 국내에 큰 인기를 모았던 홍콩 영화를 가리켜 '홍콩 누아르'라 한다.(출처=두산백과)

 


 

이 책 제목에 나오는 또 다른 단어 '재즈'는 미국 흑인의 민속음악과 백인의 유럽음악의 결합으로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을 말한다. 재즈의 리듬ㆍ프레이징ㆍ사운드ㆍ블루스 하모니는 아프리카음악의 감각과 미국 흑인 특유의 음악감각에서 나온다. 재즈가 느와르가 쉽게 결합되는 것은 흑인들이 만들었고, 그들의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범죄의 냄새가 나는 느와르을 연상하게 하는 일부 재즈 폄훼자들의 모함이 아닐까 싶다. 재즈에서 사용되는 악기·멜로디·하모니는 유럽의 전통적인 수법이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모른 척한 것이다.

재즈의 특색으로는 오프 비트의 리듬에서 나온 스윙감(感), 임프로비제이션(즉흥연주)에 나타난 창조성과 활력, 연주자의 개성을 많이 살린 사운드와 프레이징의 3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이 유럽음악·클래식음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할 수는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흑인들의 B급 문화라는 점과 느와르를 연계시키는 것은 억지스럽다. 다만 재즈의 어원이 야비하고 외설스러운 뜻을 지닌 영국의 고어(古語) 재즈(jazz)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 19세기부터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사용한 성행위 등의 성적 의미와 열광이라든가 빠른 템포나 리듬을 뜻하는 속어 재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 드럼 연주자 찰스의 이름이 Charles → chas → Jass → Jazz로 전환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어원으로 따진다면 세속적인 느낌이 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재즈피아노 주자이며 작곡가인 제리 롤 모튼은 1902년 자기의 피아노 연주스타일을 재즈라 하고 재즈의 창시자로 자칭하기도 하였으나 모두 확실한 근거는 없다. 1917년에 녹음된 사상 최초의 재즈 레코드레이블에는 “…Jass Band”라고 인쇄되어 있으며 당시는 jazz가 아니라 jass 또는 jaz, jas 등이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특색을 지닌 흑인음악을 재즈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10년대에 들어서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래그타임음악 또는 래그라고 불렀다. 재즈는 여러 가지 차별이나 기성개념에 반항하면서 퍼레이드의 행진음악에서 댄스음악 그리고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대음악의 괄목할 만한 한 분야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새로운 내용ㆍ스타일이 창출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 『재즈 느와르 인 도쿄』는 재즈 칼럼니스트, 오디오 평론가로 유명한 작가 이종학의 추리소설이다. 배경은 일본 도쿄, 주인공은 남들만큼은 평범한 사고방식을 지닌 한국인으로, 직업은 일본 연구자다. 출장차 들른 도쿄에서 그는 우연히 바니걸 분장을 한 여성과 조우하게 된다. 한 여성에 대한 강렬한 영감에 이끌려 그녀를 따라간 곳에서는, 일본적 질서와 예의의 가면 안에 감춰진 암흑의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쇼윈도를 지나치고, 예쁜 가게가 나오면 슬쩍 둘러보고, 여기저기서 건네는 전단지를 받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걷다 보니, 확 분위기가 일변하는 지역이 나왔다. 환한 대낮인데도 뭔가 음습하고, 관능적인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여기저기서 전단을 돌렸고, ‘풍속’이니 ‘안마’니 하는 간판이 연달아 나타났다. 이 공간 자체에 갖가지 욕망이 얽혀 있었다. 아, 여기가 바로 가부키초구나, 느낌이 왔다.(p.37)

 


 

저자의 시선은 범죄를 둘러싼 등장인물의 복잡한 심리구조 못지않게 범죄가 일어나는 배경에도 충실히 머무른다. 일본 사회의 일탈과 환락, 음모와 배신이 그 어두운 그림자 안에서 춤추고 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고 나면, 그 모든 세계는 두꺼운 가면을 걸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변장한 채 거짓말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배경과 장면 표현이 구체적이고 뛰어나 독자들의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듯하다.

이 소설이 담아내는 것은 일본 사회의 이면에 감춰진 성적 일탈과 파괴적 충동, 음습한 범죄만이 아니다. 문학평론계에 따르면 동서양이 어우러진 일본의 유니크한 문화적 배경, 일본인들의 배타적인 관습과 특유의 행동 패턴, 그리고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정치적 뒷이야기들이 풍부하게 소설을 채운다. 또한 스토리라인을 따라 흐르는 재즈의 선율이 소설의 매혹을 고조시킨다.

 

어느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노곤해졌다. 잠시 구석에 있는 돌멩이 위에 앉아 배꼽 정도에 수면을 맞추고 쉬는 사이, 돌연 안개를 뚫고 좌우 양편에서 여자가 한 명씩 나타났다.(p.265)

 


 

제목에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들어가 있지만 그렇다고 재즈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음모나 양심 불량과 미성숙하고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추구하는 잘못된 정치인들의 뒷모습을 어둡게 그리기 위한 저자의 장치가 아닐까도 추측케 한다. 추리소설 독자라면 그 디테일, 스타일, 일본 범죄물의 감각으로 다가오는 긴장과 전율, 반전의 롤러코스터를 만끽할 수 있는 신작 미스터리다. '사회파 미스터리' 문법과 문제의식을 공유한 이 추리극의 배경 또한 일본이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까지 일본인들은 아니며 대부분 평범해 보이는 한국인들이 등장하지만, 그 명과 암, 본심과 외양, 모범적인 꾸밈과 몽환적인 이면의 교차는 실로 일본적이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은 무던하게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본 연구자로, 우연히 출장차 일본에 왔다가 암흑세계와 연이 닿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계기로 그는 한발 한발 일본이라는 사회의 불편한 내면, 또는 불온한 진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확실히 둘의 연주 스타일이 달랐다. 힘을 바탕으로 쩌렁쩌렁 공간을 올리는 흑인의 트럼펫도 짜릿했지만, 다소 느슨한 듯하면서, 노련하게 받아치는 일본인의 태너 색스도 내공이 만만치 않았다. 덩치라든가 파워만 놓고 보면 일본인은 흑인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상황. 하지만 막상 배틀이 시작되자, 그 대조적인 스타일이 오히려 묘한 앙상블을 엮어내고 있었다.(p.210)

 


 

사회파 미스터리의 미덕이라고 할 '세상에 대한 솔직함', 그리고 때로 로컬하면서도 결국은 보편성이 드러나는 인간사회의 세부적 디테일들을 잘 살린 소설이라는 것이 출판계의 중론이다. 작중의 지역이나 정경 표현은 그곳에 정통한 가이드의 설명을 직접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작중에서 다채롭게 연결되는 한일관계의 박학다식한 정보들은, 등장인물들이 대학교수 역할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 일본인들의 어떤 변태성, 성적 집착에 대한 오랜 역사와 성애에 대한 그들 나름의 독창성도 흥미롭다. 작가의 장기인, 사운드를 글로 옮기는 기교도 작품 안에 독특한 분위기를 잡아준다.

“재즈니까요. 재즈 연주자에겐 재즈가 전부예요. 살인이나 강도 빼곤 다 할 용의가 있다고요.”

작중 인물인 재즈 아티스트는 관례적 틀 안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재즈의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어쩌면 그렇게 주어진 틀 안에서 어렵게 여지를 추구해 보는 것이 지금 젊은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의 정서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적 일탈을 테마로 한 이 추리소설의 미덕도 그것과 맞닿아 있다. 유토리, 사토리 세대, 이지메, 초식남, 히키코모리의 등장 등, 일본은 우리 사회보다 십 년쯤 더 앞서 그 특유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는 사회적 배타성과 그로 인한 국가적 동맥경화에 따른 문제들을 겪어 왔다. 국민소득이나 경제 규모, 학문적 성과, 과거의 문화적 영광 같은 외피들로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가리는 듯했지만, 그 이중성에 가려진 내면들은 언젠가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범죄와 충동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디테일은, 일본의 가만히 그리고 천천히 침묵하는 침몰을 반복할지도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의외의 시사점을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 「세계엔 다시 눈길도 주지 말라는 거예요.”

“….”

“세상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것을 넘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죠. 쇼코가 그렇게 된 거예요.”(p.313)

 

저자 : 이종학

 

작가, 재즈 및 오디오 평론가.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추리소설로 《긴 이별의 미소》, 《블루 시크리트》, 《죽은 여인이 보낸 키스》, 영화 시나리오로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제5의 사나이〉를 남겼다. 논픽션 작품으로는 수필 《이종학의 술과 장미의 나날〉, 재즈 비평서 《재즈 속으로》, 《나는 재즈가 좋다》, 《재즈 투데이》, 《불멸의 재즈 명반 102선》, 《길모퉁이 재즈 카페》, 근간 예정인 오디오 서적 《JBL 스토리》, 《매킨토시 스토리》, 《탄노이 스토리》 등이 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영화진흥공사 주최 영화소재 공모 당선작 〈처녀의 섬〉, 영화진흥공사 주최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먼 기다림의 소네트〉, 스포츠 서울 주최 신춘문예 추리 부문 당선작 〈쇼팽의 손〉, 그리고 청룡 영화상 각본상 수상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있다. 현재 《하이파이 클럽》, 《풀 레인지》, 《스테레오 사운드》, 《월간 오디오》 등에 오디오 평론을 연재 중이며,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이종학의 지식창고 KNOWLEDGE CARGO》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NLOVE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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