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네시스, 돌아보다 - 시간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
이기락 지음 / 오엘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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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위대한 종교의 역할은 인간 삶의 풍요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위대한 종교란 크리스트교, 불교 등 오랜 기간 인류 삶에 선한 영향을 미쳐온 종교를 말한다. 인간이 왜 성인(聖人, 예수와 석가모니)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말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면 삶은 행복해지고 결과적으로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다. 수천 년 동안 지속돼온 이들 종교들은 인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지속되고 발전해왔다. 결국 성인들은 인류의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들 종교가 침해될 우려가 있는 행위를 통제하고 발전시켜온 것으로 본다.

다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종교 분쟁이나 서로간의 반목은 현대의 위대한 종교들의 해결 과제다. 우리나라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근간으로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국민의 기본 자유를 보장한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서로 반목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아서 각자의 종교가 지속되고 선한 영향력으로 이에 보답하고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들 종교는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이다. 이슬람교의 경우 우리나라에는 신자가 그리 많지 않아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을 정도로 교세를 펼치지 못했을 뿐이지 배척하지는 않는다.

 


 

이 책 『아남네시스, 돌아보다』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처장 및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저자가 《경향잡지》 편집인으로서 매달 썼던 권두언을 중심으로 책을 펴냈다. 지나고 나면 모든 시대가 격동의 시기였다고 말을 하는데, 저자가 편집인으로서 글을 쓰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임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던 때였고, 우리나라 정치 상황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실정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국민들만이 아니라 자연환경마저 고통을 겪던 시기에 한국천주교회는 복음 정신에 따라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왔다.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권두언에서 저자는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호소하고 탄원한다. 특히 여러 차례의 선거를 대하는 자세와 조언은 오늘도 필요한 목소리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가 만나는 선거 정국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끝났지만 해결해야 할 난제는 이제부터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이토록 ‘힐링’의 절실함을 체감하는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치유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이 시기에 곰곰이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틱낫한은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책에서 이렇게 충고합니다. “온 마음으로 걸으며 발밑에 대지를 느낄 때, 친구와 조촐하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차와 우정에 대해 깊이 느낄 때, 그때 우리는 스스로 치유 받는다. 그리고 그 치유를 세상 전체로까지 확대시킬 수가 있다. 과거에 받은 고통이 클수록 우리는 더욱 강력한 치료사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받은 고통으로부터 통찰력을 얻어 친구들과 세상 전체를 도울 수 있다.”(p.63~64)

- 「마음으로 느낄 때 스스로 치유 받는다」 중에서

 


 

이 책의 목소리는 사제의 글이지만 세상과 사람을 향한 목소리다. 가톨릭신자들에게는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세상을 읽도록 이끌고, 비종교인들에게는 넌지시 교회의 목소리를 건넨다. 그날의 권두언들은 또다시 독자들을 초대한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라고, 사랑하자고, 잘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을 지자고! 저자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을 빌려 촉구한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Dilige et fac quod vis)!” 이 책을 펴낸 이유이자 성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앞서 언급한 《경향잡지》는 1906년 창간된 이후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잡지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정기 간행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잡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기관지 역할을 한다. 저자는 주교회의 사무처장으로서 당연직으로 맡게 됐던 《경향잡지》 편집인 역할이 큰 자긍심과 보람을 느낀 일이었다고 돌아본다. 책에서 다시 돌아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방문은 새삼 반갑다. 당시 교황은 ‘윤지충(바오로)과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거행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문제에 대해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며 관심과 연대를 촉구하기도 했다는 대목은 종교와 종교인이 우리 삶의 정의와 올바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우리나라 근현대 정치는 다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참담하기까지 할 정도로 '욕됨'의 세월이었다. 고스란히 한국 근현대사와 같이해온 이 잡지의 권두언을 다시 읽어보면 당시의 우리의 정치 상황과 당대의 정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온 우리 국민들의 인고의 세월을 되돌아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감동적이고, 새삼 사회 정의를 위한 시대정신을 갖고 살아야 하는 데 마음을 다잡게 된다. 강을 파헤쳐 자연환경마저 신음하던 4대강 사업,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세월호 침몰,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원자력발전 문제부터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같은 정치적 현안들, 그리스도인의 자세와 사회적 책무, 갈등 해소를 위한 제안과 통일 문제, 그리고 개인의 삶의 태도와 성찰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책 같다.

권두언이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글은 종종 마음을 두드린다. 사제인 저자는 세상일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기보다는 좀 더 영원한, 공동체적인 고민과 해법을 찾도록 손을 내민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사람들과 세상이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제의 기원이 담담하다. 지나고 보면 다시 아쉽고 그리운 시간들, 저자는 돌아보기를 통해 오늘을 충실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마음과 실천, 아쉬움과 다짐 등이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차분한 마음이 들 정도로 올곧은 삶에 대해 경건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어느 종교도 갖지 않은 독자 입장에서 종교 언어인 '아남네시스'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책에 따르면 그리스말 ‘아남네시스(anamnesis)’는 ‘기억, 추억, 회상, 회고’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더 뚜렷하게 생각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나간 날의 ‘권두언’을 모아 책으로 묶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근본적인 삶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되살린다. 양상만 다를 뿐 시대 상황은 반복된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의 일상사와 세상에 전개되는 모든 사건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과 역사하심을 기억하며 ‘시대의 징표’를 잘 읽고 식별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찾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고 저자는 썼다. 제대로 돌아보는 일은 오늘과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기억은 현재의 발판이자 미래를 향한 탄탄한 토대다. 저자의 말에 공감하고 그의 글을 자세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인간 개인의 삶, 함께 사는 공동체의 삶, 또 종교인으로의 삶,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삶 등 많은 것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독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저자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도 든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라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 자비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이루어집니다. 그 희망을 교회는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p.91)

- 「사람 중심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중에서

 


 

권두언을 모아 놓은 책인 데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정치 사회 상황에 관련 없이 이 책은 종교 에세이 형식이다. 저자의 글에 한 줄기로 흐르는 뜻은 '사랑'이다. 사랑의 종교인답다. 권두언을 모아 놓은 그의 글은 마지막 부분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나가면서」에 뚜렷이 남는다. "그리스도인의 태생적 의무는 함께 사는 것이다. 민주사회의 시민 역시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위해 상대를 존중하며 공존해야 한다. ‘시간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Tempus fugit, Amor manet).’라는 옛 로마의 묘비명을 부제로 삼은 것처럼 저자는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결국 해법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우리 앞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다. 특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고, 자연파괴로 인한 생태계와 기후변화는 더 암울한 상황이다.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벌어지는 무력충돌과 빈부 격차 등으로 인한 소요와 난민 사태 등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끊임없는 문제들이 쌓인다. 그럼에도 어느 시대든 ‘사랑’만이 남는다. 가정이나 사회, 정치나 종교, 인종과 이념에서 비롯되는 차별과 갈등 등 세상의 모든 것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결국 사랑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아무리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인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p.261)

 

저자 : 이기락

 

1980년 서울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보좌신부 및 군종신부 사목을 했고 로마에서 공부한 다음, 1991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대학교에서 예언서 중심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압구정동과 월계동 성당주임, 가톨릭교리신학원 원장을 지냈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처장·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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