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언덕 -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
장혜영 지음 / 예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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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언덕』. 제목만으로 본다면 연극에 어울릴 듯한 분위기다. 첫눈에 반한 두 청춘 남녀가 있다. 서다요와 한태주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처럼 전개된다. 다요는 효도에 묶여 (부친의 부도회사를 회생시키기 위한)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고, 한태주는 사랑에 묶여 그녀(다요)의 효심을 존중해 다른 여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절망한 다요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그것을 목격한 한태주의 친구는 자신을 강간한 계부와 화해하는 조건으로 협력업체 선정 허락을 받아낸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한다. 욕망과 도덕이 타협한 결과물이다. 간략한 줄거리처럼 주제도 간결하다.

저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경계선'으로 말한다.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이 욕망만 추구한다면 동물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이면서도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도덕으로 욕망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나 불교 등 위대한 종교에서는 인간의 탐욕은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본다. 철저히 제어하고 다스려야 하는 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가르침을 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은 욕망과 도덕의 전쟁선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무너져 내리는 연속이다. 개인의 내면에 살고 있는 동물과 인간의 대결이며 그것의 현실투영이 인생이다. 이 소설 『유리언덕』은 도덕의 중력에도 도피 대신 연대를 통해 욕망을 이루어나가는 인물의 몸부림을 핍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수직적 선-악 갈등구도를 플롯의 수술대에 눕혀 권선징악의 구식 척추를 제거하고 수평적 갈등구도를 생성시키는 『유리언덕』의 긴장감과 흡인력 있게 펼쳐지는 서사에 빠져보자.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소개한다. 미리 내용을 알고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은 영화나 소설은 두세 번을 읽어도 늘 새로운 것이 있다. 감동도 더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것들을 '명작' 혹은 '명화'라고 한다. 이 소설도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춘 것으로 독자는 판단한다. 물론 문학적 기술 능력이나 구성, 문장력, 어휘 등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비평가들의 몫이다. 독자는 독자 입장에서 판단할 따름이다. 스토리가 우수하고 유기적 구성 조건을 갖추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이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대학에서 문학 강사 노릇을 하는 한태주는 대학원생 서다요를 처음 본 순간 그녀의 출중한 미모에 반한다. 다요 역시 한태주의 풍채에 연정을 느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요는 이미 약혼한 남자가 있다. 박스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 회사가 부도나자 (협력업체로 선정되어 회사를 회생하기 위해) 자폐증환자인 백이사의 아들 백민호와 다요는 정략결혼을 약정한다. 뜨거워지는 애욕의 감정은 여러 가지 구실로 두 사람의 만남을 유혹하고 그것을 목격한 다요의 부친은 딸을 가택에 연금한다. 효녀인 다요는 회사를 구하려는 부친의 설득 앞에서는 효심에 기울고 선남인 태주 앞에서는 사랑에 혹하며 양자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도덕군자인 태주는 효도와 사랑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다요의 입장을 이해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포기한다. 두 선남선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옆에서 목도하는 친구 윤하늘과 다요의 사촌동생 혜진이 자진하여 도와주지만 두 사람은 욕망과 도덕의 마찰 속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흔들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나 백이사의 음모술수에 말려들어 민호에게 순결을 잃을 뻔했던 다요는 가출하여 (부친을 떠나) 태주한테로 돌아와 태주와 함께 해외로 도주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해외 도주 계획을 뒤늦게 알게 된 부친이 실신하여 병원 응급실로 호송되자, 효녀인 다요는 여객기에 탑승하려다가 포기하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태주도 혜진이도 그녀의 절절한 효심을 가로막을 수 없다. 부친은 생명의 위험을 빌미로 딸에게 결혼식을 올릴 것을 강요한다. 아버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응낙한다. 한편 태주에게는 쪽지로 협력업체선정만 결정 나면 즉시 백민호와 이혼하고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혼례식 날 다요는 윤하늘이 신부 역할을 대신해 준 사이 호텔로 빠져나가 태주와 만나 그의 씨앗을 품는다.

지금까지 태주는 다요의 입장을 고려해 그것만은 자제했었다. 혼례식에서 다요는 극도의 슬픔을 견디지 못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된다. 그녀의 졸도 원인이 백민호네 집에서의 신랑 성폭력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조건으로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한편, 건강이 호전될 때까지 신랑과 각방을 쓰며 부부 사이를 분리시키기로 한다. 백이사는 아들이 결혼했다는 안도감에 협력업체 선정날짜를 앞당겨 박스회사와 계약을 체결해 준다. 그러자 다요는 윤하늘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즉각 이혼소송을 준비하며 태주한테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백이사네는 태주에게 정략결혼의 대가가 협력업체 선정이라는 물증을 제공함으로써 이혼을 감수하더라도 선정을 취소함으로써 다요 부친을 위협하려고 한다.

 


 

결국 이혼하려면 협력업체 계약이 취소되어 부친의 회사가 파산하게 되고, 협력업체를 유지하여 회사를 살리려면 이혼을 포기해야만 한다. 다요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그녀는 효녀이면서도 동시에 태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태주는 대학 1학년에 다니던 여름 방학 시골에 갔을 때 우연하게 인연을 맺었던 정애와 결혼함으로써 다요의 효심을 지켜 주고 협력업체 계약을 유지하기로 마음 먹는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을 선택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요는 무한한 실의에 빠져 극단의 선택을 시도하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는 다요의 처량한 모습을 본 윤하늘은 비장한 결심을 한다.

자신을 강간한 계부를 찾아가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고) 부도난 친구 부친의 회사를 협력업체로 받아줄 것을 간청한다. 태주와 다요를 도와주기 위해 구역질이 나는 ‘아빠’라는 호칭까지 입 밖으로 뱉어낸다. 결국 태주와 다요는 욕망과 도덕의 깊은 계곡에서 모진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야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유리언덕’을 넘으며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법적 부부가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동반되었다. 하늘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정애는 대학기숙사로 들어간다.

 


 

스토리와 사건의 연계성, 등장인물의 성격, 치밀한 구성 등 명작 요건에 별로 빠지지 않는다. 독자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저자의 심리 표현이나 배경 묘사 등도 탁월하다. 자칫 세속적 요소만을 강조하거나 거기에 빠지는 독자는 저자의 구성의 탁월함을 놓친다면 TV 드라마 그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배경과 세상 사람들의 심리가 변했음을 간과하고 이 소설을 썼다면(만일 톨스토이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많은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버리고 싶지 않다. 치밀한 심리 묘사나 배경 표현은 연극 무대를 생각해도 좋을 만큼 맛깔나다. 독자가 연극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 이유다.

 

저자 : 장혜영

 

소설가이자 인문·교양·세계사작가이다. 단편소설 〈하이네와 앵앵〉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림자들의 전쟁〉, 〈화엄사의 종소리〉 외 다수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꽃은 왜 아름다운가』 외 여러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신춘문예 장편소설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학술서를 출간했다. 그 중 『술 예술의 혼』은 ‘2013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지금은 새로운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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