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2월 대한민국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재난이 닥쳤다. 우리가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에 걸쳐 선포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만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약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라고 하는 세계 대유행의 전염병 상태 이후 100년 만에 다시 벌어진 팬데믹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학자들과 방역 당국은 앞다퉈 방역 방침과 개인 방역 수칙을 내놓고 방역 활동을 시작했다. 나라간 국경 통제를 실시하고, 2명 이상이 함께 모이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세계적 팬데믹은 아니지만 사스, 에볼라 등 기존 감염병에 따른 방역 체계를 잘 갖춰옴에 따라 초기 대처에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다른 선진국들에서 하루 확진자가 20만명 이상씩 나오고, 사망자가 하루 1만명이 넘을 때도 우리는 확진자 수십 명, 사망자 한 자릿수를 기록할 만큼 방역 활동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른바 'K 방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적으로 팬데믹 상황에 잘 대처했다. 당연히 우리 국민들의 자발적 대처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터다. 경제 선진국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있도록 감염병 대책에 성공적이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한 성공적 대처였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팬데믹은 지속되자 거리두기 완화와 생계형 자영업자의 영업 제한 해제 요구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병 걸려 죽기 전에 굶어죽게 생겼다"는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이때만큼 화두에 오른 것도 이때다. 물론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재난지원금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먼저 시작한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료보험제도의 완전한 실시로 방역에도 큰 도움이 되었고, 국민들의 자발적이자 적극적인 방역 활동까지 더해져 코로나가 우리나라에선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을 가질 만할 무렵 바이러스 변이로 더 큰 유행성 감염병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부랴부랴 거리두기나 영업 제한 조치가 다시 취해짐으로써 재난지원금 문제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재난지원금엔 무지한 상태였다. 왜 국가가 그런 많은 돈을 개인에게 지급해야 되는지도 제대로 몰랐다. 한 번도 국가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아보지 못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얼떨떨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재난지원금 제도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나, 있다면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를 살펴보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조선시대에 웬 복지?라고 할 정도로 그때는 굶어죽는 일도 다반사였을 시대인데 무슨 재난지원금이냐 하는 것이 독자의 궁금증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 지식만으로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미를 나눠줬다는 제도가 있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복지'라고 할 만한 일들이 제도적으로 갗춰져 있을까엔 의문을 표시할 만큼 잘 모르고 있었다.

 


 

이 책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조선을 복지국가로서 규정하고 조선의 사례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책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책에 따르면 조선의 통치자는 안녕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백성들은 민소를 써내는 등 제한적이나마 정치에 참여하여 정책의 수혜를 입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백성을 구휼하려는 통치자의 의지는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는 목표로 축약된다고 쓰고 있어 감동도 배가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 즉 인(仁)이 자리하고 있었던 까닭이라고 분석한다. 조선의 설계자들은 빈곤층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인격적 완성을 이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복지 정책을 통해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고 인의 가치가 확장되는 이상 사회를 꿈꿨다. 그랬기에 빈곤자를 돕는 일을 결코 낭비로 여기지 않았다. 이 책은 독자의 조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소 완화시켜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왕권이고, 양반이라는 지식, 귀족 계급이 정치를 하는 시대에 일반 국민과 심지어 노비조차도 복지의 대상이었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물론 제도의 시행에 있어 미숙하거나 왜곡돼 많은 부작용들이 속출했지만 복지제도를 갖춘 국가라는 사실에는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사실 독자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조선은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창 시절 역사 교육을 통해 ‘탐관오리’ ‘삼정의 문란’과 같은 말을 숱하게 들었을뿐, 일반 백성을 위한 복지제도로 삶의 사각에서 이뤄지는 비참한 백성의 삶은 기록되지 않은 게 많기 때문이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보아온 조선 민중의 처절한 삶도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성공적 복지를 이루어냈다는 결과는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2015년쯤 유행하여 최근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신조어도 그러한 인상에 한몫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당당하게 ‘조선은 복지국가였다’고 주장한다.

그 정책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서 기능한 ‘환곡’, 재난 상황에 식량을 지급하는 ‘진휼’(우리가 책에서 배운 대로)로 대표된다. 이 책은 두 개의 장으로 나뉜다. 1장에서는 이 외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정책으로서 조선의 아동복지, 노인복지, 여성 복지, 장애인 복지, 노비 복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제목에서처럼 '시시콜콜' 복지가 더 관심이 간다. 큰 규모의 복지 제도는 이미 배워서 알고 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선의 통치자들이 안녕하지 못한 상태에 있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백성들은 민소(民訴)를 써내는 등 제한적이나마 정치에 참여하여 정책의 수혜를 입고자 노력하였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소극적인 듯하지만, 천재지변 및 전쟁으로 인한 기근에 너무나 자주 노출되었고 또 취약했던 조선 사회로서는 지극히 이상적인 목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랬기에 앞에서 구제해도 뒤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선은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이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저자는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 즉 인(仁)이 자리하고 있었던 까닭이라고 분석한다. 조선의 설계자들은 빈곤층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인격적 완성을 이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복지 정책을 통해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고 인(仁)의 가치가 확장되는 이상 사회를 꿈꿨다. 그랬기에 빈곤자를 돕는 일을 결코 낭비로 여기지 않았다. 이는 빈곤자들을 사회악으로 보고 노동으로 죗값을 치르게 한 영국의 〈구빈법〉과 극명히 대조된다.

또 가난한 사람 돕는 일을 국가의 마땅한 의무로 천명했다는 점에서는 〈바이마르 헌법〉에 앞선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지점에 조선 복지 정책의 핵심이 있다. 저자는 조선의 복지 제도나 시행에 대해 연구하며 중국이나 서양의 복지 제도 정착 과정에 대해서도 비교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복지 선진국이라는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도 나라의 국민을 위한 복지 제도는 우리가 앞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으로도 저자의 연구와 이 책은 높이 살 수 있다. 이는 제도의 유무가 아니라 제도의 적절한 시행, 재원의 충당 등이 모두 갗춰진 복지 제도의 정착에 도움을 주려는 저자의 의도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도를 잘 살필 수 있는 대목이 책 속에서 "조선의 복지 정책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 있었는가를 판단하고자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후속 조사가 미흡했고 정책 통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한 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러나 사람 사는 모습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주춧돌 삼아 통계의 빈자리를 역사의 현장을 직접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로 채워나간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와 선진국화를 짧은 기간 내에 이뤄낸 우리 국민의 성숙한 삶의 태도에 비춰 분명 제도를 제대로 실시하면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앞선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통치자와 관료 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양반들은 일기에 관료로서 살아가는 고충 등을 솔직하게 기록해두었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주의하지 않아 외면됐던 부분을 짚어내 오늘날 민생의 가려운 데를 제대로 긁어주는 정치인들에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쌀 한 석, 보리 한 석에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모두가 울고 웃는 모습…. 저자는 옛사람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료들을 활용해 당대 사회의 분위기가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오도록 했다. 더불어 사료를 적극적으로 윤색하여 현대적 시각으로 해석했는데, 그래서 수백 년 전 이야기임에도 생경하지 않게 느껴진다.

 


 

온갖 탈법 수단을 동원해 규제를 피하고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아전과 탐관오리의 행태는 21세기의 부정부패 현장을 방불케 한다. 자기 녹봉까지 털어가며 밤낮없이 일하는 지방관의 모습은 오늘날 새로운 정책이 집행될 때마다 업무 과중에 시달리는 현장직 공무원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전작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과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을 통해 조선 사람들 역시 사랑하고 잔소리하고 청탁하고 거짓말하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음을 이야기해왔다. 결국 사람 사는 모습은 다른 듯 비슷하기 마련이라는 삶의 이치는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역사를 제대로 살펴야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저자 : 박영서

 

1990년생. 충주의 작은 사찰에서 살고 있으며, 딴지일보에 한국사·문화재·불교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이 있습니다. 서른 살에 대학에 입학해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업보를 많이 쌓은 탓에 대학원으로 끌려갈 예정입니다. 오래된 것들을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즐기면서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아마도 순수하게 책만을 위해 글을 쓰는 마지막 세대가아닐까 싶지만, 기꺼이 걸어가려 합니다. 오래오래, 함께 걷고 싶습니다. 이메일: sangmo2004@naver.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