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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와 춤을 - 진정한 자유인과 함께한 그리스 여행기
홍윤오 지음 / 넥서스BOOKS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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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는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다른 사람과 달리 '조르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류 4대 문명 발상지이고 오늘날 서양 문화의 원류라고 학교에서 배웠음에도 왜 미코스 카잔자키스라는 어려운 이름의 현대 그리스 문인을 떠오르는 걸까. 오로지 그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독자에게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감명 깊었다.
이 책을 잠깐 소개하자면, 저자 자신의 화신인 ‘나’는 35세의 젊은 지식인으로서 육체의 쾌락을 경멸해 음식도 조금씩 몰래 먹듯 하는 책벌레 구도자이다. ‘나’는 갈탄광이 잘되면 모두 형제처럼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나누며, 함께 똑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는 공동체를 조직해보겠다는 이상적인 꿈도 꿨다. 이성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먹물이자 세상에 뛰어들어 행동하기보다는 글을 통해 세상을 보는 책벌레 ‘나’가 대지의 어머니 가이아에게서 미처 탯줄을 자르지 못한 듯한, 길들여지지 않은 위대한 영혼 조르바를 만나고 큰 변화를 겪는다. 관념은 던져버리고 직접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원시 사냥꾼 같은 직감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창의성, 망설이고 고뇌하기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따라 주저 없이 행동하고, 죽음과 불행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서는 조르바의 모습에서 나는 영적 스승의 영혼을 느낀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 조르바는 자신을 믿어주는 ‘나’에게 영적 아버지를 대하듯 솔직하고 ‘나’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한다. 그래서 조르바는 둘의 이별 후에도 계속 ‘나’를 생각하고, 최후의 순간 그의 소중한 산투리를 ‘나’에게 남겨 자신을 오래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대소설의 정형으로 각인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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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그리스에 관한 독자의 상식을 오롯이 담은 것 같은 이 책은 독자에게 현대 서양 문명을 다시 재해석하는 기회가 됐으면 상당한 진전을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에 대한 맹목적 사랑보다는 철학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세상을 선인들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려고 애쓰는 곳이란 생각의 전환도 할 수 있었다. 독자가 인식을 바꾼 그리스를 가장 잘 알 수 있게 해준 작가가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카잔자키스다. 그는 니체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니체 철학에 경도되었다고 한다.
인명사전에 따르면 니코스 카잔자키스(Nikos Kazantzakis, 1883년 2월 18일 ~ 1957년 10월 26일)는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ㆍ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겼다. 그런 그가 학교에 가본 적도 없는,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먹고살아온 예순 다섯의 노동자에게서 니체의 ‘빼어난 인간’(bermensch, 보통 ‘초인’으로 번역됨)을 본다.
얼핏 보기에 조르바의 삶은 내키는 대로 사는 방종한 모습으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조르바의 지향은 분명했다. 관습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낙타처럼 수동적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사자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판단 아래 치열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빼어난 인간’과 같이 산 것이다. 그에게는 ‘니체’나 ‘빼어난 인간’과 같은 사상도, 단어도 필요 없다. 그저 그에게 ‘인간’이란 그런 존재, 곧 ‘자유인’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방금 고용한 사장에게도 일은 노예처럼 하겠으나, 산투리는 자신이 원할 때만 치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런 그에게는 하느님도 악마도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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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조르바와 춤을』은 위와 같은 이유로 독자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독자가 유럽 여행을 가서 잠시 있었던 그리스에 대한 갈망과 관심도 많이 풀어주는 이 책은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를 따라가며 그들의 생각과 학문에 접근하기 위해 그리스를 여행했고, 이 책을 썼다. 저자 홍윤오는 이 책의 부제를 「진정한 자유인과 함께한 그리스 여행기」로 붙였지만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와 함께한 영혼의 산책'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 책은 “나는 왜 사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와 같은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서 시작한다.
독서와 사색만으로 시원한 답을 구할 수 없어 홀로 떠난 그리스 여행에서 필자는 조르바와 춤을 추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교감하며 인생이 참된 의미를 깨닫는다. 신화의 세계를 돌아보며 필자가 경험한 ‘자유’와 ‘인간의 숙명’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라면 단연 눈부신 하양과 파랑으로 가득찬 산토리니의 전경이 아닐까. 우리 나라 광고(CF)에도 자주 등장하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검푸른 에게해, 인간을 몽환적 기분에 젖어들게 하는 해 질 녘 하니아의 베네치아 항구, 절벽 위 하늘에 얹힌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그리고 델포이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대표적인 유적지까지. 저자는 코로나로 자유를 박탈당한 채 묶여 지내는 독자들에게 직접 찍고 그린 사진과 색연필화, 수채화를 담아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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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그리스 여행의 목적과 과정, 그리고 깨달았던 많은 부분을 언급한다. "누구든 평탄한 삶은 없겠지만 나 역시 갑자기 기자를 그만둔 이후 삶이 순탄치 못했다. 좋게 말하면 다채로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고달팠다. 딸린 식구도 있는데 제대로 자리를 못 잡아 늘 불안했다. 오죽하면 책에서도 그런 나 자신의 처지를 ‘간헐적 직업인인지 간헐적 실업자인지 모르겠다’라고 언급했겠나. 그럴 때마다 힘든 나를 구원해준 것은 여행이었다. 여행은 나를 치유와 깨달음의 세계로 이끄는 또 하나의 인생이다.
이번 그리스 여행은 조르바가 동행해 주어 좋았다. 물론 상상이다. 하지만 조르바라는 캐릭터 자체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이다. 상상 속 인물과 동행한다는 상상이 크게 황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일종의 변명이다. 덕분에 조르바를,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들이 있었지만 그리스 신화를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신화와 전설, 종교와 역사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그 현장을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 감동을, 느낌을 공감하고 싶은 생각 또한 인지상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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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묻고 답한다. "왜 기록을 남기려 하지? 이른바 시쳇말로 ‘안물안궁’ 때문이었다.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거든?” 첫 문장을 쓸 때부터 사람들이 이 질문을 던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부터 책을 쓰려고 한 의도는 아니었고 기록만 하려다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아무한테도 강요하거나 권유할 이유도, 자신도 없다. 다만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생각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책을 통해서나마 그와 감응(感應)하고 싶었다. 내가 조르바와 동행하면서 느꼈던 그 희열과 깨달음의 일단이나마 나누고 싶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스 문명이 그랬듯 저자 역시 가진 동ㆍ서양 지식 모두를 동원해 여행하고 이 책을 썼다. 저자의 그리스 여행의 결론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자유’와 ‘인간의 숙명’인 것으로 읽힌다. 핵심 결론이 딱히 무엇이라고 스스로 단정할 수 없는 건 저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를 것이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여행하면서 아무리 자유를 찾아봐도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새도 하늘에 갇혀 있다고 했다. 자유를 찾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기자직을 접고 나선 결과는 비참했다. 어떤 면에서는 만용이고 방종이었다. 딸린 식구까지 있는 가장이 말이다. 백수에게는 알아주는 이도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삼국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꾸만 수호지 등장인물이 돼가고 있었다. 양산박처럼 몸을 의탁할 곳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자의 여행이 간단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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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음 말은 독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여행에 대한 깊은 깨달음도 준다. "나의 40대 10년이 도깨비 같은 삶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자유를 찾아 나선 길이 결국 도깨비 삶으로 이어지다니. 그러나 그 또한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귀중한 경험이었다. 일부러 하려면 도저히 갈 수 없었던 길, 그 길을 다녀왔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유식한 말로 한 소식(消息) 한 셈이다. 덤으로 얻은 게 인간의 숙명에 대한 성찰이다. 생로병사, 희로애락이 무슨 얻고 말고 할 일인가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이치를 삶의 체험을 통해 진실로 체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터이다. 하물며 상상 속 인물과 동행하며 신화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더없이 뿌듯한 일임에랴. 저자의 마지막 당부에 조금 집중해보면 독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모쪼록 이 책과 인연을 갖게 되는 분들이 다만 몇 대목만이라도 나와 공감하고 감응하면 좋겠다. 책을 읽는 동안 여행에 동행한다는 느낌까지 공유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미증유 역병의 시대에, 그래서 3년째 자유를 박탈당한 채 묶여 지내는 지금 책으로나마 마음껏 여행하면서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만끽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자직을 직업으로 가졌던 저자의 그림 실력 만만찮아 보인다. 사진보다 훨씬 여행 분위기를 잘 알릴 수 있는 그림 또한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높인다. 몇 번이고 읽어도 다시 읽고 싶은 이 책, 오랜만에 보관하고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 기쁨 또한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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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매 순간, 매 세월이 모두 의미 있고, 남는 게 있고, 생산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때로는 허송세월도 삶을 되돌아보고 관조하는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멈추고 내려놓는 시간이 어쩌면 더욱 값진 경험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물며 지금 나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여행을 하고 있지 않은가. 조르바를 만나고 신탁을 받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아닌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동틀 무렵처럼 느껴졌다. 날은 점점 흐려졌고 멀리 산 위로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수도원 순례를 마치고 다시 남쪽을 향하는 자동차 사이드미러에 칼람바카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점점 작아지며 사라지고 있었다.(p.141)
저자 : 홍윤오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십수 년간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아프간 전쟁 개전 초기 한국인 최초이자 단신으로 아프간 현지에 들어가 동행 외국 기자들의 피살 등을 경험한 뒤 자유로운 새 삶을 살겠다며 기자직을 접었다. 이후 성찰의 세월을 보내며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기업 및 공공기관 임원, 국회홍보기획관 등을 거쳐 지금은 대한전문건설협회 산하 신문사 주간으로 있다. 나이 들어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행정학)를 받기도 했다. 여행과 등산, 음악과 그림을 즐기고 『아프간 블루스』, 『50년 여행 50일 인생』 두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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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