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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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은 저자가 사유를 통해 빚어낸 세상과 삶에 대한 에세이다. 이 글은 저자의 인생과 주변, 그리고 가치관이나 삶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정작 독자들에게 위로와 평온함을 주기 위해 썼지만 읽는 이들은 저자가 의도하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또 좀 더 신중하게 읽는다면 저자의 삶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들에 담겨 있는 저자의 진정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의문이 더해진다.

한 글자로 된 언어(낱말)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뭘까? 수많은 언어 중에 우리말로 된 한 음절의 말은 얼마나 되는지 파고 들어가면 언어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이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도 준다. 저자는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통안 깊은 사색의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사색의 내용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독자 개인의 사적인 이유이다. 사실 독자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어느 해 365개의 단어를 선정해 하루 한 단어씩 사색을 하기로 해본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이 계획이 무산됐다. 이유는 독자가 아는 언어(사색에 필요한)의 부족과 지식의 결핍 탓이었다. 그때 독자는 한 음절이든 두 음절이든 가리지 않고 삶에 꼭 필요한 가치관 정립을 위해 이런 시도를 했었다. 그때 주로 생각했던 단어들이 성실, 배려, 사랑 등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단어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농후한 서정성과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 무엇보다 빼어난 문장이 빛을 발하는 산문집이며 한 글자 제목의 총 69편의 글을 담았다고 밝힌다. 지역 신문인 경기신문에 ‘고향갑의 난독일기(難讀日記)’라는 타이틀로 연재 중인 글과 미발표 글을 가려 뽑았다고 전한다. 저자는 연극과 뮤지컬 시나리오를 주로 써 온 희곡작가이다. 그러나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휴머니스트의 냄새가 더욱 가득 담겨 있다는 느낌이다.

출판사 측은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에세이스트"임을 내세우지만 독자가 읽기에는 세상이나 주변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더 짙게 느껴진다. 이 책이 첫 산문집이라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문장을 구사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에세이의 참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 뿐,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혹적인 문장과 가슴의 밑바닥으로부터 스며오는 정서적 울림이 주목할 만하다는 출판사의 평가는 아무 거리낌없이 우리들에게 다가온다고 독자는 느낀다. 이번 책 출간이 대한민국이 내놓은 큰 작가의 출현을 예고하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한때 밑줄을 긋고 입으로 되뇌던 산문 읽기의 기쁨을 다시 누리게 한다. 가히 '산문 미학'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책 머리에」를 통해 다음과 같이 썼다. "헤아려보니 예순아홉 꼭지의 이야기입니다. 사건과 배경이 어떠하든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문장에 등장하는 주인이 나였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나라는 주어를 빌려 썼을 뿐, 흑백 원고지를 관통하는 빨간 외투의 소녀는 당신입니다. 내 글의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그대이고 귀하이고 연인이고 이웃이고 동료입니다. 아들이자 딸이고 아내이자 남편입니다. 내 글 속의 당신은, 밤새워 이력서를 쓰는 절박함이고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애틋함입니다."

이 글은 저자의 삶과 주변에 대한 인간애와 따뜻한 시선, 그리고 우리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시대를 아파하고 좋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함이 느껴진다. 깊은 사유로 사회의 옳지 못한 방향을 지적할 땐 예리하기 그지없다. 우리 사회를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의 결과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그의 이러한 고민은 지금까지 써온 글이나 삶의 이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보고도 본 것이 무언지 꿈결처럼 아득한 게 봄이다. 아득한 숨결 같은 봄이라서, 호흡기로 연명하는 환자의 맥박에 잡히고, 잠에 취한 노숙자의 굽은 등에 눌리고, 새벽을 열어내는 환경미화원의 빗자루에 쓸린다."

- 「봄」 중에서

 


 

책에 따르면 말이 소리와 다른 이유는 뜻을 지녔다. 태고의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위해 말에 뜻을 담아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가장 짧은 말로, 가깝고 요긴한 것들부터. 몸, 불, 숲, 길, 집, 밥, 땅과 같은 것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점에서 한 글자로 부르는 것만큼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며, ‘말’과 ‘글’이 소중한 까닭도 그래서일 것이다. 저자는 그 ‘한 글자’에 주목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라서 글도 저자의 일상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것들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집, 가족, 이웃, 일….

가깝게는 주변, 멀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자본주의의 거대한 담벼락에 가려지고 그늘진 자리에 자주 머문다. 그 시선에 슬픔을 어루만지는 물기와 온기가 담겨있다. 그늘 속에서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들, 삶을 꾸려가는 존재의 가여운 몸짓에 마음을 주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머리의 말미에 “그늘진 땅에 피어난 꽃, 그 꽃을 닮은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이 책에는 화려한 등장인물이 없다. 기운 어깨를 맞대고 있는 가족, 가난한 예술가이거나 노동자들, 말하자면 사회의 비주류이다. 그러나 사회의 비주류일지언정 인생의 비주류일 순 없어, 저자는 이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들은 삶에 있어, 2022년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삶의 주역들이다.

 


 

1장 글이 고이는 샘

2장 살아내는 이유

3장 그늘에 핀 꽃

4장 어두움 너머

 

저자 : 고향갑

 

대학을 중퇴하고 글을 쓰며 노동현장을 전전했다. 조선소와 그릇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노동야학에 참여하며 ‘삶의 시울 문학’에서 습작했다.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 설립되고 전남지회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19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다. 이후 오래도록 글 쓰는 일을 찾아 ‘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또 하나의 진실〉 〈아버지의 나라〉 〈무등산 타잔〉 〈최용신-다시 살아도〉 등의 연극과 뮤지컬,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왜, 나를 쐈지?〉, 전태일 50주기 특집 〈너는 나다〉 등의 다큐멘터리를 썼다. 공저로 『기본소득, 지금 세계는』이 있으며, 현재 경기신문에 연재 칼럼 〈고향갑의 난독일기〉와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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