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마흔의 온도
이다루 지음 / 북랩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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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라는 나이는 인생에 꽤 많은 경험과 충고를 담고 있다. 지구상의 한 생명체로서 40년을 살았다면 적잖게 산 것이다. 그리고도 남은 삶의 시간도 그만큼 남아 있다. 그래서 마흔이라는 나이는 앞으로 삶의 척도가 가능한 나이일지 모른다. 일찍이 공자는 유혹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이라 했고, 링컨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 나이'라고 정의했다. 그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적어도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모두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40년을 살아도 '삶'에 대해 제대로 알기엔 부족한 것 같다. 사회가 복잡해서일까, 아직 성숙하지 못해서일까. 서른의 나이에 방황하면 '그럴 수 있'어도 마흔의 나이에 방황한다면 '아직 삶에 대해 잘 모르는 미성숙자'일 뿐이다. 그렇게 인간의 나이 마흔은 삶의 변곡점을 가져올 수도,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재정립해도 좋을(?) 매우 애틋한 나이다. 한 시인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고 적었다. 서른이 그런 나이라면 마흔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겪는 마흔은 또 어떤가.

 


 

‘40대에는 누구나 사회의 성공을 위하여 발버둥 치며 달려가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가오는 노년을 위해 가장 왕성하게 뛰는 나이’라고 전경일은 ?마흔으로 산다는 것?에서 설파하고 있는데 저자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서른 살이 인생의 젊음에서 마침표를 찍는 나이였다면, 마흔 살은 인생에서 노화의 시작점‘이라고 읊조린다. 또 이 책 뒷 부분에 「부록」 ’마흔과 커피‘에서는 ‘마흔은 커피 중독과 어울리는 나이다. 쓰고 아프고 고된 시간을 넘어와 커피의 향과 맛에 취해도 좋을 나이. 그래서일까, 커피는 달고 인생도 달게만 느껴진다.’라고 인생의 나이 ‘마흔’에서 느낄 수 있는 솔직한 심정을 적었다.

이 책 『마흔의 온도』는 '피할 틈도 없이 찾아온 마흔이라는 나이'인 마흔 살을 맞는 네 명의 여성을 등장시켜 네 편의 소설로 질문에 답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살아 있는 한 마흔 살은 온다. 갑자기 눈앞에 닥친 마흔이라는 나이가 영 어색한 것은 젊은 시절 꿈꿔왔던 마흔 살 자신의 모습과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일 것이다. 책에 실린 소설 네 편에는 모두 마흔 살의 여성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믿었던 연인에게 약혼자가 있음을 알게 된 후 복수를 꿈꾸거나, 무신경한 남편과 종 부리듯 대하는 시부모에게 시달리기도 한다. 해리 장애로 인해 환상을 현실로 믿기도 하며, 남편의 가출 후 억척스레 두 딸을 키우기도 한다. 모두 마흔을 겪어내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이야기다. 관절은 예전 같지 않고 흰머리도 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마흔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네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마흔에 접어드는 여성들의 심리를 이야기함으로써 개인적으로 독자는 공감이 많지는 않았다.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독자가 남성이라 정반대의 입장이어서 그랬을 것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다만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서로 삶의 환경이 다른 탓이지 적대적 감정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지나치게 마흔의 나이에 집착하고 대한민국 여성이라고 내세운 저자의 현재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느낌이 공감을 주는 곳은 글 속 여러 곳에서 발견한다.

저자는 네 편의 소설 모두 40을 맞이하는 여성을 등장시켜 "40대에는 ‘불필요한 앎’의 단계를 생략하고 본론에 들어간다"는 솔직 담백한 멘트를 통해 시원시원한 이야기 전개를 이끌어가고 있어 읽는 내내 독자들을 한층 더 소설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책 뒤에 부록으로 ‘마흔 살의 9가지 이야기’도 담아놓고 있다. 그 모두 40대가 겪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살이 얘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저자의 마음을 담아놓은 네 편의 마흔 살 여자 얘기를 간략 소개해 본다. 네 편의 작품이 모두 마흔 살의 한국 여성이 주인공인데 제목은 모두 영어로 돼 있다. 이 또한 저자의 의도적 장치인 것 같아 의미를 두고 싶다. 그만큼 우리 문화가 서양 특히 미국의 문화에 젖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Two Bathroom」 는 40대 여자인 ‘나’는 40대 직장인 성진을 만나게 되고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시간에 성진의 오피스텔에 가 40대의 연애는 불필요한 ‘앎’의 단계를 생략한다며 서로는 곧바로 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결혼을 전제로 사랑도 몇 차례 나누는 사이가 되고... 벽에 뜻 모를 숫자 ‘50.1.11/26’이란 쓰여 있는 걸 보게 된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이브 날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라는 말을 듣고는 서로 다투고 헤어지게 된다. 얼마 후 성진의 계정에 새로운 사진 하나가 업로드되는데 그 해시태그를 통해 성진이 양다리 걸치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오피스텔을 구하던 중 마침 성진의 오피스텔이 나왔음을 알고 공인중개사와 함께 가 방을 살피던 중 전에 못 봤던 두 개의 목욕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오피스텔을 심하게 가격을 후려치고 안달이 나게 만들다 결국 매매를 결렬시키며 골탕을 먹이는 스토리다.

「How Are you」 결혼을 하고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 남편이 혁이와 수시로 다투는 40대 주부인 승아. 남편은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지 계속 짜증을 내고 수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가 되고... 시어머니 집에 가 반찬도 담그는 등 종 부리듯 대하는 시부모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잘 지내?’라는 보낸 이가 불분명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그러다 남편인 혁이가 자정이 지나도록 오지 않던 그 날 밤 메시지 답장을 보낸다. 고승아인 본인을 ‘꼬승아’라고 불렀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지쳐있던 심신에 활력이 솟기 시작한다는 얘기. 그 뒤 결론은 없다.

 


 

「Our Man」 2022년 1월 1일 AM 05:00 핸드폰 알람을 듣고 마흔이 되기에 부디 새해가 오지 말라 빌었는데 어김없이 찾아왔다며 한탄하는 솔로의 미지. 옛 애인 진우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그녀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유일한 대학 친구로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인 영주가 집을 사 초대하게 되는 데 친구 남편을 진우로 착각하는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직장 동료였던 윤숙으로부터 과거 늦은 시간에 함께 술을 잔뜩 먹고 나면 데리러 왔던 진우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가다가 진우가 발간한 ?봄의 사랑?과 ?여름의 사랑?, ?가을의 사랑? 그리고 지금 집필 중인 책은 ‘겨울의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윤숙의 남자 친구가 진우가 아닐까라는 해리 장애를 겪고 있기에 가능한 아리송한 환상과 착각의 얘기가 펼쳐진다.

「Tunnel House」 가상의 서울 가외산동 터널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허름한 ‘터널 하우스’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성희와 나 연지가 살면서 벌어지는 가슴 아린 얘기로 시작된다. 할머니가 죽고 곧이어 아버지는 가출을 하게 되자 먹고 살기 위해 엄마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마음을 의지하는 안 보살의 얘기를 듣고 집 나간 사람이 돌아온다는 말에 명태를 두들겨 패는 엄마... 나이 마흔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치킨집을 차리지만 그것도 한 달여 만에 망한다. 몇 년이 지나 아빠가 죽었다는 전갈이 오고... 결국 가족들은 뿔뿔이 헤어지게 되는 데 연지는 안 보살 집으로 엄마랑 동생은 외가로 가게 되는 가슴 아픈 얘기다.

 


 

마침 술기운을 빌어 솔직해지기로 했다.

“성진씨! 계속 이렇게 혼자 살 거야?”

“아니, 난 독신주의자는 아냐.”

“그럼 언제쯤 결혼하고 싶은데?”

“당장이라도 하고 싶지, 결혼.”

성진씨의 대답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당돌해지기로 했다.

“성진씨 마음이 내 마음이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나는 이런 단칸방도 좋아.”

그 순간 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할 때마다 눈꺼풀이 진동하곤 했다.(p.19)

 

저자 : 이다루

 

아나운서, 승무원, 기자, 쇼호스트, 리포터, 홈쇼핑 게스트, MC, 강사 등 17가지 직업을 거쳤다. 말과 글의 힘을 나누는 언어코치이며, 생각을 던지는 글을 쓰는 작가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전략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익숙한 낯섦을 이야기 하며 사는 게 곧 글이라 여긴다. 일상에서 만나는 당연하거나 혹은 익숙해서 말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한다. ‘말은 깊게, 글은 진하게’ 언어를 다루며 엮는 일을 날마다 하고 있다. 저서로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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