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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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일상으로 바뀐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독자의 책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책 읽기 결과이지만 이 책이 인간의 '혼자 있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팬데믹 상황에서의 사색이며 역사 기록 훑어보기란 점에서 독자의 판단도 책의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집단 생활을 함으로써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뤄낸다.

처음 집단 생활을 시작한 것은 가족과 친척 단위였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생물들 중 인간도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의 안전을 위한 방법이었지만 차츰 집단과 협력이 삶을 지속하는 데 엄청난 시너지를 갖고 풍요와 발전을 가져다 주는 요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후 집단 공동 생활을 하면서 진화를 거듭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가장 큰 힘은 혼자의 힘보다는 집단으로 함께 있을 때 훨씬 좋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이는 '혼자 있기'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은 물론 먹을 것을 확보하는 데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혼자 있는 것은 불안과 공포를 더욱 가중시켰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인간이 집단 생활을 한 후 뛰어난 지능으로 놀라운 발전을 이루지만 '혼자 있기'는 여전히 어색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공포감으로 다가오게 되고, 이에 따라 공동 생활을 저해하는 사람은 인간 집단에 의해 혼자 있게 되는 처벌을 주었을 것이란 생각으로 발전한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집단 생활은 많은 제약이 있기 마련이어서 오래 되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뛰어난 지능을 발전시키는 데도 방해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도 생겨나기 마련일 터다. 이들이 택하는 것은 고독이다. '고독'과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를 혼동해 쓰지 않고 엄격히 구별해 쓴다.

흔히 말하는 깊은 생각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고독이고 원하지 않지만 비자발적으로 홀로 있게 된 경우는 '외로움'으로 표현한다. 언어적으로 구별이 되지만 인간이 혼자 있는 데서 느껴지는 감정이란 것은 다르지 않다. 특히 근대 르네상스를 거치고 학문도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위대한 발명이나 문명은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낸 인간은 홀로 있는 것도 그리 큰 불안을 느끼지 않고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세상이 있다고 생명에 위협을 받거나 신체적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이 성숙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역사를 연구한 저자 데이비드 빈센트가 약 400년 동안의 혼자 있기를 최초로 다룬 대중서로,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여행을 권하는 책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왔고, 사랑했는지를 따라가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내가 연결되며 흔치 않은 위로를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이젠 혼자 있고 싶을 땐 누구나 혼자 지낼 수 있지만 아직 감정적으로 외로움이나 불안감을 떨쳐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대중 속의 고독'을 선택하는 게 낫지 일반적으로 늘 함께 웃고 우는 공동 생활을 더 바란다. 일부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영감을 잘 얻고 생각도 깊이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요즘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일상이 혼자 있기의 연속이지만 쉽지 않다. 함께 웃고 울며 살아가는 인간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혼자 있기란 인간으로서 해결하지 못한 숙제 같다.

 


 

이 책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눈부신 범위의 문학과 자료를 아우르며 변화하는 혼자의 역사를 세세히 따라간다. 무인도에 고립됐던 로빈슨 크루소는 속편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자신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진정한 혼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의 여유를 갖는 일 또는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 된 시간을 즐겁게 마주하는 법은 현재까지도 우리의 관심사이다.

그 방편으로 독서, 우표 수집, 자수, 애완동물의 유행부터 단독 세계일주라는 극한의 은둔까지 각종 여가활동이 탄생하고 취미로 자리 잡는 과정이 펼쳐진다. 대표적으로 ‘걷기’가 그 시작이 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님, 전 비참한 혼자가 아닌가요?”라고 슬프도록 외친 괴물이 새봄의 자연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듯이, 자연 속에서 산책하기는 여전히 낭만적 은둔의 핵심을 이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에겐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가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외로움과 고독을 잘 구분하여 홀로인 시간을 건강하게 보낼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을 준다. 역사, 사회경제, 심리, 종교, 문화를 종횡무진하는 모험을 함께하며 풍성한 교양과 귀한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코로나 팬데믹이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재택근무, 방역 수칙 등의 전 세계가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시행하면서 백신, 치료제 개발 등으로 숨통이 트이지만 아직은 엄연히 팬데믹 상황의 지속이다. 서로 접촉하지 않는 비대면으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소통과 교류를 위해 틈을 뚫고 수시로 밖으로 돌아다닌다. 사람과의 접촉이 그립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혼자 있는 상황을 못 견뎌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을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해본다. 팬데믹을 자기 내면과 마주할 흔치 않은 기회로 활용하자는 수많은 구호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또 소통 부재에서 오는 정신적 우울감, 심할 때 공포감을 치유하기 위해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지혜가 총동원되어도 말끔하게 불안과 공포를 없애기에는 역부족인 듯한 느낌도 든다.

아직 최악의 순간에 이르지 않아서일까. 혼자 있기가 그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옛 사람들은 어땠을까. 2000년도 더 된 고질병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 책의 표현대로라면,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 사이에 인간의 갈등의 역사는 그만큼 길다고 한다. 그런 생각에 따라 혼자 있는 막막한 시간을 견뎌내거나 선용하기 위해,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사람들이 어떤 것들에 매달렸는지를 광범위하게 저자는 추적했다. 18세기 이후 영국의 시와 산문, ‘대중관찰 조사’ 같은 사회학 보고서, 출판문화 등을 훑은 사회문화사 성격이다.

 


 

이 책은 이 같은 '혼자 있기'의 역사를 짚어가며 고독의 다양한 형태들-산책, 등산, 낚시, 바다항해, 뜨개질, 책 읽기, 수도원과 수녀원의 삶, 교도소 독방 등 -에 투영된 삶의 조화로운 가치로서 은둔, 은거, 고독의 변화를 탐사한다. 도시와 노동의 답답함에서 풀려나와 시냇물 거품을 바라보며 들판 목초지를 한가로이 거니는 산책 속의 고독을 노래하는 1820년 자작시 <고독>의 시인 존 클레어의 '군중의 회오리에서 달아나는 달콤함'이라는 고독의 이상성으로 글을 연다. 이를 시작으로 당대 걷기의 유행과 도보 여행, 등반 여행에 이르는 혼자 있기의 갈망의 형태에 스며든 삶의 철학들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의 산보에서 다가오는 평화로운 고독의 울림을 노래하는 워즈워스의 시 <서곡>에서부터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자유의 충족과 열린 마음을 가져오는 도보 철학에 이르기까지 고독한 산책자는 공동체와 하는 삶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은밀함이 주는 고독의 절대 요구성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당대에 이러한 혼자 있기에 대한 찬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뚜렷한 목적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부랑자 단속법이란 것이 만들어지면서 산책이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당대의 귀족과 고위 관료들에게 평민들의 혼자 걷기는 유약하고 이기적이며 불온한 행동으로 보였기에, "단독 도보는 단체보다 윤리적으로 훨씬 아래다."라며 단체 행동, 공동의 추구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고독을 즐기기 위한 산책마저 금지 당하던 인간 역사의 추레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결국 코로나 팬데믹은 지나갈 것이며 인류는 살아 남을 것이다.

 


 

서장에서는 ‘고독에 관한 세기의 고전’이 된 책 『고독에 관하여』 이야기를 소개한다. 사색적으로 보이고 싶은 18세기 당대 젊은이들이 품에 껴안고 다닌 이 책은 어떻게 행복한 혼자가 될 것인가에 관해 지금도 유효할 만큼의 엄청난 통찰을 보여준다. 1장에서는 ‘산책’의 역사가 펼쳐진다. 존 클레어, 윌리엄 워즈워스를 포함해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이 산보의 기쁨을 노래한다. 도보 거리나 속도를 치열하게 경쟁한 신사들을 비롯해 런던 골목골목을 활달히 걸으며 인파 속의 고독을 즐긴 찰스 디킨스 이야기, 귀부인들과 노동자 계층의 서로 다른 산책 생활 등을 엿본다. 2장에서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여가활동’의 탄생을 다룬다. “이 게임은 생각을 멈추고 종일 시달린 업무를 밤에 떠올리지 않게 해준다”는 기록처럼, 빅토리아시대 독신 여성들이 1인용 카드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최강의 권위자가 되어 안내서를 출판하기에 이른 일부터 낭만과 괴기가 섞인 고딕소설이 유행하여 책 읽기가 위험천만한 오락으로 여겨진 에피소드 등이 펼쳐진다. 3장에서는 매혹의 대상인 수도원과 공포의 대상인 감옥의 뿌리가 된 ‘독방’을 이야기한다. 18세기 독자를 휩쓴 소설 『수도사』나 금서로 지정된 『수녀』, 독방에 감금된 수감자가 신과의 대화를 시도한 감옥의 역사는 은둔이 지닌 어둠과 낭만의 양면성을 들춘다.

4장에서는 지금의 각종 ‘취미’ 산업들이 자리 잡는 과정이 펼쳐진다. 도보와 독서, 수집, 흡연 등 어떻게 사회경제적 특권층의 여가활동은 전 계층의 오락이 되었을까? 2022년 한국에서 ‘TV를 배경으로 켜두고 안 본다’고 대답한 조사결과와 1980년대 영국의 조사결과가 일치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5장에서는 ‘회복’하는 은둔으로서 행해지는 자연 탐험, 홀로 먼 대양을 항해하기, 최근의 마음챙김 열풍이 지닌 역사적 맥락을 살핀다. 6장에서는 고독과 구분되는 ‘외로움’을 이해하게 돕는다. 찰스 디킨스가 스크루지 영감을 “독거한다”고 묘사할 때만 해도 외로움이란 말은 탄생하지 않았지만, 19세기 ‘멜랑콜리’라는 신조어와 20세기 최고의 영어소설로 꼽히는 『노스트로모』 이야기 등을 통해 외로움이 현대사회의 병으로 오해받는 이유를 밝히고 정작 간과되고 있는 불평등 구조와의 연관성을 짚는다. 7장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몇백 년의 역사에 걸쳐 디지털시대 우리의 혼자 있는 시간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돌아본다.

 


 

저자 : 데이비드 빈센트(David Vincent)

 

근대 서양 역사에 관한 석학으로 영국 왕립 역사 학회와 왕립 예술 학회의 회원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킬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강의, 사회사 교수 및 부총장을 역임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및 케임브리지 대학교 예술,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 센터의 방문연구원으로 초빙됐으며 현재 영국 오픈 대학교의 사회사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계급과 문화, 비밀, 사생활, 정치 등에 관한 폭넓은 주제를 연구해온 그는 저서 《낭만적 은둔의 역사》에 18세기부터 현재까지 혼자라는 매일의 일상에 관한 흥미진진한 역사를 최초로 조명하여 ‘숙련된 역사가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역자 : 공경희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1987년 시드니 셀던의 《시간의 모래밭》을 시작으로 35년 동안 300여 권이 넘는 책을 번역했다. 현재도 소설, 비소설, 아동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책들을 번역하며 활동 중인 명실상부한 영미 번역의 대가다. 대표 역서로 《비밀의 화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파이 이야기》, 《우리는 사랑일까》, 《마시멜로 이야기》, 《타샤의 정원, 《엔조》 등이 있으며, 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를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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