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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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즉 자신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막연한 생각 이외엔 진심으로 걱정하고 고민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독자 역시 그렇다. 죽을 때 남 손가락질 받지 않고 슬퍼해줄 사람이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정도로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을 뿐이다. 즉 살아 있기 위해 죽음을 생각해봤지만 정말 죽음을 앞두고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은 어쩌면 살아 있음의 확인일 터. 더 깊게 생각해볼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저 삶의 끝일 뿐이지,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로 가는 통과의례라는 생각도 해본 적은 없다. 아마 평생 비종교인으로 살았고, 지금도 종교에 의존할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음은 그저 삶의 끝일 뿐일까? 죽은 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슬픔으로밖에 채울 수 없는 것일까?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죽음이 불쑥 우리 집 문턱을 넘었을 때, 그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이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은 이 죽음의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사색을 해본 적이 없는 독자가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죽음 곁에서 애도자들과 함께해 온 랍비 오르빌뢰르가 이 책의 저자다. 그는 오랜 경험과 철학자로서의 사색으로, 우리 일상의 지각을 넘어선 경험들을 글에 녹여낸다. 그가 사색하고 경험한 '죽음'은 일상적인 삶의 끝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홀로코스트와 테러, 국가적 슬픔으로 명명되곤 하는 죽음들, 혹은 그보다는 조금 개인적인, 어린 동생이나 둘도 없는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저자는 죽음이 야기하는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눈물을 대면한다. 그리고 좀처럼 둔감해질 수 없는 그 비극이 우리의 삶에 어떤 씨앗을 뿌리는지 함께 지켜보자고 말한다.

하나같이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죽음에 관한 열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아닌, 여러 갈래로 나뉘어 면면히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 무한한 삶이 주는 감동과 위로를 만나게 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당연하듯 누려온 일상의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손실은 생명 그 자체였다. 팬데믹은 거대한 상실의 시간이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죽음은 늘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종착지로,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죽음에 대한 각종 은유와 설화는 삶의 정반대편에 있는 죽음의 성격을 확실히 해준다. 그렇다면 죽음은 그저 삶의 끝일 뿐일까? 죽은 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슬픔으로밖에 채울 수 없는 것일까?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 죽음이 불쑥 우리 집 문턱을 넘는 순간, 그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할 수 있을까?



2015년 이슬람 원리주의에 희생당한 「샤를리 에브도」의 정신과 의사 엘자 카야, 그와 생전에 ‘죽음’과 ‘공포’를 주제로 서신을 교환했던 의사 마르크, 아우슈비츠에서 함께 살아남아 생의 마지막까지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시몬 베유와 마르셀린 로리당, 자식에게조차 자신의 삶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 끝내 침묵 속에 눈을 감은 홀로코스트 생존자 사라, 늘 같이 놀던 동생 이사악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그를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어린 형, 병마에 시달리며 예전과 같은 ‘나’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 친구 아리안과 그 끝을 예감하면서도 친구 곁을 지킨 오르빌뢰르 본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유대인들이 무덤 위에 올려놓는 조약돌처럼, 우리 안에 작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죽은 이들이 변치 않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며, 그 자리의 의미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책무라는 의식이다. 오르빌뢰르는 고인의 영혼을 유대의 기도문인 카디시로 위로하고, 애도자들의 슬픔과 한탄 섞인 고백을 추모의 말로 번역하는 가운데 이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포개어진 이야기들이 죽음보다 더 긴 ‘삶’이라는 실에 매달려 깊은 유대감 속에 전달되고, 저마다의 상실의 기억이 사려 깊은 손길의 위로를 받는다.



히브리어로 유령은 ‘루아흐 레파임rouaH’ refa?m’, 문자 그대로 ‘늘어진 영혼’을 의미한다. 유대 전통에서는 죽은 자들의 채비를 매듭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죽은 이가 입은 수의의 가장자리를 꿰맨다. 헐거운 수의를 꿰맴으로써 올 풀린 영혼을 수선하는 것이다. 반면 바늘땀이 부족해 세상에 붙들린 유령은 풀려버린 올 때문에, 자신의 해진 이야기의 흔적 때문에 되돌아온다. 오르빌뢰르는 그렇게 돌아온 유령의 목소리를 삶을 위한 언어로 되돌려준다. 고인의 삶에서 얽힌 부분은 풀고, 흩어진 조각들은 그러모아 하나의 피륙을 만든다. 종교의 언어와 인간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풍부한 인용과 고백, 은유가 흘러넘치는 가운데, 일생 교차하다 엉킨 실들이 새로운 태피스트리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이다. 그 비극은 늘 생경하여, 우리는 그것을 표현할 말을 찾는 데 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르빌뢰르는 더듬거리며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위한 노랫말을 찾는다. 그리하여 복수와 앙갚음의 신이라는 형상에 매달려 저지른 테러 앞에서 “당신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니 그 율법을 해석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신에게 당당하게 주장했던 현자를 떠올리고, 일생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온 이의 장례식에서 여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인물로 신에게 보낸 ‘스콧젤’의 설화를 들려준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질투심에 오빠의 장난감 조각을 집어삼킨 어린 오르빌뢰르가 그로 인해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흐느끼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다가와 어린 손녀를 다독인다. 할아버지는 그녀 앞에서 남은 장난감 조각을 크게 베어 물고, 삼킨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 자라는 인사는 건네고는 방을 나간다. 설령 죽음을 피할 수는 없더라도, 그 죽음 앞에 홀로 남겨지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우리를 편히 잠들게 한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 누구도 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풍요로운 이야기를 남긴다. 그렇게 얽힌 매듭은 풀리고, 헐거운 천 조각은 단단히 기워진다. 오르빌뢰르의 이야기는 자신이 태어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난 삼촌의 무덤 앞에서 끝을 맺는다.

누군가에 의해 한 차례 파헤쳐진 그 무덤 앞에서 오르빌뢰르는 죽은 이들의 입까지 틀어막으려는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목격하지만, 동시에 그 죽음의 장소에서조차도 지속되는 삶의 증거를 발견한다. 그리고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것은 강하고 튼튼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약하고 일시적이며 빈틈이 있는 것들”, 말하자면 “지나간 존재의 입김”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로 묘지가 ‘베트 아하임Beit haH’ayim’,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집’으로 불리는 것처럼, 죽음은 그 안에 이처럼 삶을 위한 역설과 아이러니를 잔뜩 품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죽음 앞에서 “레하임!(삶을 위하여!)”을 외치며 생生을 찬미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미도르 레도르(대대손손)’ 이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이야기 역시 우리의 뒤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위안이다. 필멸하는 운명은 어느 순간 우리 삶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다. 오르빌뢰르는 두렵더라도 그 구멍에서 눈을 돌리지 말자고, 서툴더라도 그것을 애써 메워보자고, 그렇게 마침내 죽음과 함께 삶을 노래하자고, 간곡하고 다정한 말을 건넨다. 「예루살렘 포스트The Jerusalem Post」 지가 선정한 2021년 영향력 있는 50인의 유대인 중 한 명인 델핀 오르빌뢰르는 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이다.

오르빌뢰르는 이스라엘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에, 뉴욕에서 랍비가 되는 과정을 밟았다. 랍비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녀인 그녀는 우리 일상의 지각을 넘어선 경험들을 글에 녹여낸다. 홀로코스트와 테러, 국가적 슬픔으로 명명되곤 하는 죽음들, 혹은 그보다는 조금 개인적인, 어린 동생이나 둘도 없는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곁에서, 저자는 죽음이 야기하는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눈물을 대면한다. 그리고 좀처럼 둔감해질 수 없는 그 비극이 우리의 삶에 어떤 씨앗을 뿌리는지 함께 지켜보자고 말한다. 하나같이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죽음에 관한 열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아닌, 여러 갈래로 나뉘어 면면히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 무한한 삶이 주는 감동과 위로를 만나게 된다.



저자 : 델핀 오르빌뢰르

1974년생. 랍비이자 철학자, 작가이다. 1992년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암살 사건을 계기로 근본주의로 기우는 종교에 깊은 의문을 품고 프랑스로 돌아와 언론인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후 탈무드를 연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 맨해튼의 히브리 유니온 칼리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랍비가 되었다. 오르빌뢰르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돕는다는 점에서 의학과 저널리즘, 유대교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심할 수 없는 교리를 가장 강력하게 의심하는 것이 랍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라 믿는 오르빌뢰르는 보수적인 종교 공동체 안에 진보와 자유주의의 바람을 일으키며 그녀 세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자유주의 유대인 운동에서 발행하는 잡지 「테누아TENOU'A」의 편집장이며, 파리에서 유대인 회당을 이끌고 있다. 랍비로서 자신의 역할을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이야기꾼으로 정의하며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저서로 『이브의 옷을 입고EN TENUE D'EVE』(2013), 『반유대주의에 대한 성찰REFLEXIONS SUR LA QUESTION ANTISEMITE』(2019),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COMPRENDRE LE MONDE』(2020) 등이 있다.


역자 : 김두리

출판사에서 해외문학 편집자로 일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해피 데이스』 『여성 권리 선언』 『다윈의 기원 비글호 여행』 『낙서가 예술이 되는 50가지 상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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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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