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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여자
리지 스튜어트 지음, 하얀콩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22년 1월
평점 :

독자는 '걷기'를 꽤 좋아한다. 특히 건강을 위해 걸을 때는 속보처럼 조금 빠르게 걷고, 생각하며 걷는 산책은 느릿느릿 걷는다. 이 책 『걷는 여자』의 저자인 리지 스튜어트는 여성 등장인물이 거리를 걷는 영화 속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자신이 걷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직접 거리를 걷는 것 또한 무척 좋아할 것이다. 영화 속 걷는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유로움을 더없이 느끼게 하기 때문이고, 직접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생각이나 상황에서 조금 떨어져 자유롭게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을 풀어 가며 사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독자의 경우 거리 특히 사람이나 차가 많은 거리를 별로 선호하지는 않는다. 혼자 골똘히 생각하고 걷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독자가 사는 곳이 대도시이기 때문에 무척 바쁘게 걷거나 속보로 걷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운동을 위해 걸을 때와 사색을 위해 걸을 때를 구별해 장소도 제한적이다.

이 책은 30대 초반의 저자가 런던의 여러 거리들을 걸으며 성찰하고 사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림 에세이다. 그의 생각과 고민들은 일상의 사소한 일부터 주거, 나이, 성별, 인종, 여성, 임신 등을 둘러싼 사회의 시선을 점검하며 자신만의 소신을 쌓아 가는 데까지 이른다. 저자는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여성이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질문과 문제를 풀어 나간다. 그러면서 영화 속 걷기와 현실 속 걷기에서 간극을 발견한다.
특히 “영화의 특징을 고통스러운 진실을 일부 생략한다는 점”인데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는 여성 등장인물이 밤길을 걷는 중에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지만 현실 속 여성들은 어느 정도 두려움을 안게 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영화 속 걷는 장면을 이상적으로 바라보면서 현실의 상황과 균형을 맞추며 현실 속 걷기의 모습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탄탄하게 다져 간다. 걷기는 운동을 겸해서 걷거나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깊이 있는 고민을 위해 걷거나 효용성은 뛰어난 것 같다.

이 책은 저자 스스로도 우려하던 '온전한 여성 되기'를 위한 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깊이 살펴보면 세상에 굳건하게 발을 딛고 변화를 꿈꾸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 어른이 되어 가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걷기는 외부 환경과 마주하는 외적 경험인 동시에 나를 돌아보고 느끼는 내적 경험이기도 하다. 독자의 걷기도 산책을 겸한 걷기일 때 많은 생각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을 많이 했다. 또 살아가며 선택을 해야 할 중요한 문제에 부딪칠 때 걷기는 자리에 앉거나 누워서 생각하는 것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을 함께하며 나와 내 주변의 고민과 문제의 답을 스스로 찾아보고 '홀로 걷기'의 즐거움을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하고 싶다. 이 책은 그림이 많은 책이다. 그림들도 저자 자신의 생각(고민, 경험, 성찰 등)을 정리해 일러스트레이트로 표현해 놓은 것이라 친근감이 들고 그림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반가운 책이다.

짧고 그림 위주의 책이지만 생각하고 소화하기에는 어떤 두꺼운 책 못지않게 오래 두고 읽어야 할 책이란 것을 한두 페이지만 보아도 금세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저자의 글이나 그림, 그 안에 드리운 생각이나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삶의 문제들이 많이 담겨 있다. 30대 초반의 의 여성이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철학적 사유의 방법도 알려주고 적잖은 영감도 선물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자신의 출생부터 자라고 살아온 도시 생활을 하는 30대의 현대 여성이 가질 만한 많은 문제들에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동해야 할 많은 내용을 이 책에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상의 사소한 일부터 주거, 나이, 성별, 인종, 여성, 임신 등에 관한 현실적 문제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철학적 사색도 충분히 하고 있어 삶의 방향성을 세운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삶을 위해 할 일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다. 친구, 가족은 물론 음악, 문학 등 예술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저자의 생각 그대로 쓰고 있어 독자가 당면한 문제나 닥쳐올 난제에 대한 일정한 방향성도 제시하고 있다.

도시에서의 걷기가 생각을 한 곳으로 모으는 데 어려움이 있음도 토로한다. "내가 명석해지기는 어려울 듯하다. 내 시선은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닌다. 디지털 화면을 게으르게 스크롤하면서 세상과 교감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반쯤 속인다. 세상의 빠른 속도를 좇는 것은 좋지만 사실 새로운 정보에 따라 행동을 취할 때에만 건설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새로운 정보를 좇는 내 모습이 쓸모없어 보이는 걸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때로는 불필요한 물건들로 여행 가방을 꾸역꾸역 채우는 모습과 같은 듯해 걱정스럽기도 하다."(본문 중에서) 또 직장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생각도 거침없이 담는다. "나는 공개적인 논쟁을 꺼린다. (중략) 나는 우리가 한 집단 또는 다른 집단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거나 무엇이 절대적이고, 올바른 행동인지를 말할 때 절반으로 나뉜 각각의 입장만을 따르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우리 편과 그들 편으로 나뉘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편에 대한 공격성과 혐오를 드러내고 그들을 각성하게 하기보다 탓하기만 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 「부록」에서 저자는 영화, 글쓰기, 음악에 대한 사색의 결과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놓는다. 독자들을 위한 저자의 배려에 새삼 공감하면서 읽어보면 이 책을 모두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저자의 직장 생활과 도시 생활을 걷기를 통해 사유한 결과이리라. 이 가운데 세 번째 '음악'에 대한 부분만 따로 적어본다.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건축에 대해 춤을 추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은 머리를 벽에 반복해서 부딪치며 두통이 낫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게다가 벽에는 압정이 잔뜩 꽂혀 있다). 자기 응시와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생산적이지 못하다. 갈수록 '나는 완전히 미치지 않고 내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만약 정말 우리가 미쳐야만 변화를 꾀할 수 있다면? 반대, 분열, 반란에 패배한 세대는 놀라울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반대, 분열, 반란은 강력한 백인 남성들이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불해야 할 작은 대가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의 일부분은 명확한 진술을 할 수 없는 나 스스로의 무능함으로 마비되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확실히 소리를 지르고 있다고 느낀다. 마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나 자신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 걷기는 이제 행진일 것이다."

"난 도시를 걷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 속 장면을 좋아한다. 특히 198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걷는 장면(〈제2의 연인Heartburn〉의 메릴 스트립이나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의 메릴 스트립,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의 메릴 스트립, 〈결혼 소동Crossing Delancey〉의 에이미 어빙, 〈프랭키와 쟈니Frankie & Johnny〉의 미셸 파이퍼, 〈베이비 붐Baby Boom〉의 다이안 키튼 같은)을 좋아한다."
저자 : 리지 스튜어트(LIZZY STEWART)
런던에서 거주하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글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 두 권을 펴냈고, 수많은 만화와 잡지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에든버러 예술대학과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 강의를 했고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가르치고 있다.
역자 : 하얀콩
글을 쓰고 외국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책을 만들며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