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 - 어제와 오늘, 그리고 꽤 괜찮을 것 같은 내일
오성은 지음 / 오도스(odos) / 2021년 12월
평점 :

인간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태에 머물기를 원한다. 누구나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기도 한다. 그것이 지금의 상태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태라고 판단해서다. 이때 변화를 추구하는 소수가 급격한 변화를 원한다면, 즉 폭력과 무력 등의 수단을 동원하면 전쟁이 된다. 그러나 그 소수가 평화와 서로간의 협력을 통해 변화를 꾀한다면 인간의 삶에 발전을 가져다준 변화가 실행될 수 있다. 그 변화가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빨라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수의 협력자를 얻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때문에 변화는 빨리 진행되고 그 속도를 빨리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퇴보하고 저항하다가 마침내 도태된다. 이것은 독자의 생각이지만 이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는 독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세상에는 슬픈 것이 가득하다. 그러나 속도를 멈춘 모든 것은 슬프면서 또한 아름답다. 그러므로 제목으로 삼은 모호한 슬픔 뒤에 각주처럼 달린 일상의 문장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시면 좋겠다. 우리의 일상이 일상으로 이어지는 순간의 웅숭깊음을 사람을 가까이하기 힘든 이 시기에 사진과 문장으로 매만지려 해보았다. 나는 본래 슬픔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슬픔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그대의 슬픔도 잘 씻길 수 있도록 속도를 잠시 버려둔 채 오래 들여다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 『속도를 가진 것들은 슬프다』의 저자 오성은이 화두로 들고 나온 '속도'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속도보다 엄청나게 빠르다. 미처 속도를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변화에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삶의 뒷전으로 밀리는 것들이 많다. 뒷전으로 밀려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의 직업이라든지, 아날로그 문화도 포함되지만 그것보다는 그 속에 녹아 있는 인간의 가장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게 빠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현대의 우리는 속도 속에 살고 있다. 지구의 속도와 계절의 속도와 노화의 속도, 게다가 온통 우리의 몸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욕망의 속도까지 더해져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간다.
어린 시절에는 잘 느끼지 못하던 시간의 흐름이 나이가 들수록 빨라지기 시작한다. 저자는 그래서 슬퍼한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흰머리가 하루하루 늘어가는 게 보일 때, 주름이 깊어질 때, 통증이 쉬 낫지 않을 때, 행복했던 추억만 자꾸 떠오를 때 우리는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다. 이것은 디지털 문화로부터 느껴지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에 관한 변화다. 저자의 느낌은 속도가 우리를 자꾸만 시간의 끝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슬프다고 한다.

그렇다면 멈출 수는 없는가? 혹은 반대 방향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앞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해도 잠시 과거로, 이전의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저자가 몰라서 되묻는 것은 아닐 터, 안타까움과 아쉬움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알랭 드 보통은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보고 생각하는 것이지 속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속도를 잠시 멈추고 진정으로 귀중한 것을 보고 생각할 때 우리는 속도를 잠시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 카메라 렌즈 넘어, 뷰파인더 너머로 사물의 속도를 붙잡을 수 있다. 우리를 자꾸만 밀어붙이는 슬픈 속도의 압박을 잠시 멈춰보자.
그리고 멈춰진 속도 속에서 슬프지만, 또 아름다운 진정으로 귀중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속도 속에 있다 보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들조차 제대로 생각하거나 돌아볼 시간이 없다. 사진은 그 태연한 일상을 영원한 일상으로 남기는 것이다. 자칫 아무 의미 없거나 혹은 나만의 기준으로 보고 넘겼을 많은 것들을 머무르게 한다. 그때 조금 더 지혜로웠어야 한다고, 그때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야 한다고, 혹은 다시 저 기쁜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가 마주한 사진들은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멈추었다면 이제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속도 속에 있다 보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들조차 제대로 생각하거나 돌아볼 시간이 없다. 속도 속에서 어떤 순간이나 상황을 보는 것과 속도가 멈춘 상태에서 들여다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속에 있었지만, 서로가 보는 세상은 바라보는 지점에 따라 분명 서로 다르다. 너의 시선과 나의 시선, 너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달랐고 우리는 그것을 서로 나눌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상을 우리는 늘 하나의 세상이고 같은 세계라고 여기며 아무런 의심 없이 살아왔다. 이를 착각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이 착각 속에서 태연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좋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림자의 예술인 경우가 많다. 사진 속 밝게 드러난 빛은 화려함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 너머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삶의 쓸쓸한 단면을 보여주면서 말을 걸기도 한다. 일상의 본 모습을 드러내 주는 속도의 멈춤, 그리고 감추어진 속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자.

한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시간을 딱 한 번만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 올라온 적이 있다. 그때 속으로 후회하는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후에 그 내용이 책으로 나와 살펴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모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고, 나이가 어린 사람일수록 후회했던 때로 돌아가서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나이가 많을수록 과거에 어떤 후회가 있었든 그 시절이 찬란했다고 여기고, 나이가 어릴수록 후회했던 일만 눈에 밟혀 현재의 젊음이 찬란한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결국 행복했든 후회했든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의 삶은 그 순간이 가장 찬란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살아 있는 현재가 모두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스펙타클한 시대에 사진이라니, 뭔가 어색해 보이고 멈춘 듯한 시선 속에 어떤 쓸쓸함 같은 것이 느껴지지만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늘 번잡하고 바쁘고 휘황찬란한 시대에 속도를 멈추고 호젓한 쓸쓸함을 느끼는 것도 현재를 즐기는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책에 따르면 행복했든 후회했든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의 삶은 그 순간이 가장 찬란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살아 있는 현재가 모두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늘 번잡하고 바쁘고 휘황찬란한 시대에 속도를 멈추고 호젓한 쓸쓸함을 느끼는 것도 현재를 즐기는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KBS TV(부산)에서 ‘바다 에세이 포구’라는 프로그램과 라디오 ‘시시(詩詩)한 남자 오성은입니다’를 진행했던, 소설가 오성은의 사진 에세이는 출발이 아날로그 감정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날로그 감성을 책 잡을 일이 없다. 독자 역시 같은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저작 활동과 문예활동을 하는 다재다능한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뮤지션이라고 한다. 무심하게 스치듯이 누르는 셔터 한 번에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사진이 찍힌다. 찾고 싶은 어떤 흔적들이 사진을 통해 말을 걸어주는 듯하다. 먼지가 쌓인 선반을 더듬고, 오래된 궤짝을 열어보고, 텅 빈 장독대를 들여다보며 할머니의 모습을 찾아보려 했다는 그의 글처럼 우리는 모두 아름답지만 쓸쓸한 어떤 기억들이 있다. 속도에 묻혀 잊고 지냈던 우리만의 아름답고 쓸쓸한 순간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 소설가의 마음으로 담아낸 사진과 기록들을 읽다 보면 오늘 독자들의 마음에 숨겨진 추억이 아직 그곳에 있다고 일깨워줄 것이다.

일상을 찾겠다며 무작정 거리를 떠돈 건 조금 바보 같은 일이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는 건 여행에 가깝지, 일상은 그 반대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상을 잃어버리기 위해 거리를 떠돈다는 건 어떤가. 나의 일상을 내가 잘 모르는 거리에 슬며시 놓아두고 오는 것이다. - 「살며시 두고 온 일상」 중에서
셔터를 누른 순간 당신은 잠시 사라집니다. 제가 당신을 카메라의 작은 암실 속에 가두었기 때문입니다.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당신은 벌써 갑갑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다시 그 자리로 보내줄 마음이 없습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오성은
외항선 선원이었던 아버지께서 에스파냐령 라스팔마스에서 옥편을 펼쳐 들고 지어 편지로 써 보낸 이름입니다. 이름이 어머니에게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타고 도장밥을 먹고 멀미를 안고 파도에 휩쓸렸을까요. 이름이 제대로 와주어 참 다행입니다. EP 앨범 〈THIS IS MY〉, 단편영화 〈향기〉 〈응시〉를 만들었습니다. 쓴 책으로 여행 산문집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 『여행의 재료들』, 영화 소리 산문집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 앤솔러지 소설집 『미니어처 하우스』가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