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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경성의 음악공간을 산책하다
신혜승.김은영.이수정 지음 / 우리에뜰 / 2021년 11월
평점 :
대한민국의 20세기를 논할 때마다 우리의 태도는 암울했다.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의 무력 침략으로 20세기를 열자마자 강제 병합을 당한 후 36년의 식민지 생활을 감내했고, 해방된 후 5년만에 우리 민족 최대의 위기인 한국전쟁을 겪었다. 무려 3년에 걸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일어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기까지 50년도 안 돼 이룬 성과여서 세계 모든 나라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뼈를 깎는 아픔만큼의 피와 땀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21세기를 맞았다.
이 기간에 우리는 돈만 벌고 민주화 투쟁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세계가 대한민국을 놀라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 또 하나의 축은 문화 역량이다. 그 어려운 나라에서 문화 민족이라는 자부심의 토양은 결국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이른바 'K-컬처'가 21세기 접어들며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주기도 했다. 이젠 세계 10대 경제대국, 민주주의의 나라 대한민국, K-컬처의 민족이라는 대명사가 훈장처럼 가슴에 달려 있다. 다른 분야도 사실 어려웠지만 문화 분야는 서구화된 세계의 흐름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갖고 세계 문화를 선도해 갈 위치에 오르기까지에는 우리가 역사 속에 묻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문화에 대한 강력한 욕구는 한민족 5,000년 동안 우리 민족 가슴속에 이어져 왔고, 그 빛은 어쩌면 일제 강점기에서의 우리 지식인들의 피땀이 배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 『100년 전 경성의 음악공간을 산책하다』는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음악인들의 고뇌와 우리 문화에 대한 계승 의식 등을 짚어보는 저자들의 의지가 빚어낸 산물이다. 신혜승 김은영 이수정 등 3명의 공동저자는 각각 1920년대 이후 우리 음악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자료를 수집해 만들어낸 역사 자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정도로 온 힘을 기울여 빚어낸 문화역사서로의 가치도 높다. 저자들은 문화산업의 성장에 비해 학계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시도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고 이 책의 집필에 의견을 모았다.
일제 강점기 시대 당시 우리 문화의 중심 공간인 서울(경성)에서의 음악의 발전과 서구 음악의 유입 등을 생생하게 재현해 냄으로써 우리의 K-컬처가 우연히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준다. 원래 문화는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그 빛이 더 짙어진다고 한다. 일체감을 형성하기에 좋기 때문이리라. 세계에서 한국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국내의 연구자들도 학문적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음악 분야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시도한 첫 결과이다. 그동안 각자의 연구공간에서 주로 문헌을 갖고 씨름하던 세 명의 연구자들이 100년 전 서울의 음악문화를 ‘음악회’ 풍경을 통해 소개한다.
저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100년 전 서울은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과 신문물이 충돌하며 성장했다. 신문물의 자극은 과거의 전통을 낙후되고 촌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게 했고 식민지에 의해 그동안의 가치관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가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음악회라는 신문물을 통해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운드를 경험한 청중들은 차츰 매료되어 갔다. 서양음악의 도입은 전통음악의 변화를 요구했다. 과거 특정 청중에게만 연주된 음악은 유성기로 라디오방송국으로 그 대상을 확대시켜 나갔고 여류 명창이라는 새로운 연주자 그룹이 생기면서 여성은 이 시기의 흥행을 보증하는 새로운 계층으로 서게 된다.
이 시기는 우리의 3.1독립만세 운동을 기점으로 일제가 이른바 식민지 정책을 '문화 정책'으로 변화시키는 큰 계기가 된다. 즉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어가는 계기가 3.1독립만세 운동이다. 저자들은 이 시대 서울을 세 지역으로 나뉘어 설명한다. 하나가 청계천 아래의 '남존'이다. 또 하나는 청계천 위의 '북촌', 마지막 하나는 '궁궐'의 궁중음악이다. 먼저 저자 신혜승은 모던의 중심부 남촌의 음악공간을 산책한다. 1920년대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이 거닐었던 도심을 따라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각종 음악공연들을 소개한다. 첫 우리말 라디오방송 중계가 경성공회당에서 있었고, 이때 최고의 인기가수 강석연의 공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며 그 인기가 증폭되었다. 한국근대음악사의 역사적 사건은 경성공회당이라는 음악공간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번째 코스는 청계천 위의 북촌으로 조선인들에게 ‘운종가(雲從街)’로 불릴 정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종로 지역을 중심으로 저자 김은영이 음악산책을 시도한다. 한국 근대사에서 기독교는 종교적 영역을 넘어 가치관, 생활방식 등 문화적 영역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1903년에 창설된 YMCA는 나라의 주권이 외세에 의해 뒤바뀌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민족계몽운동을 통해 미래를 도모하고자 했다. 양악의 선구자로 구성된 ‘경성찬양회’,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흑인음악단의 공연, 작곡가 홍난파의 성장과 실험장이었던 YMCA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33년, 공회당이 지어진 지도 어언 13년이 흘렀다. 경성공회당에서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양한 양상의 공연과 집회가 열렸을 뿐 아니라 민간 무선실험방송이 실시된 이후 1933년 4월에는 우리말 방송도 시작되었다. 이어 6월 2일에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음악회가 개최된다. 이날 밤 경성공회당에서는 국제적 수준만큼 여기에서 성장한 조선인 피아니스트 박경호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으며 여기에서 쇼팽의 폴로네즈가 울려퍼지게 된다."(p.39)
세 번째 코스는 경성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궁궐과 궁중음악의 변화과정을 음악회를 통해 저자 이수정이 소개한다. 조선시대까지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장악원은 식민지 시기 동안 이왕직아악부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이 시기에 박람회, 야앵 등 대중을 동원하여 제국의 위엄을 홍보하려 했던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체가 바로 이왕직아악부이다. 과거 조선의 왕과 궁궐의 행사에 적합하도록 훈련받았던 음악인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음악활동을 해야 하는 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왕직아악부가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연주한 구체적 내용을 보며 봉건사회의 전통이 근대화와 문명화의 이름으로 뒤바뀌고 왜곡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우리 궁궐의 격을 낯추고 심지어는 공원으로 격하시키는 등 악랄한 왜곡을 하기도 한다.
"창경궁의 상황은 더욱 심하다. 1907년부터 경내의 전각 대부분이 헐리고 훼손된 것은 다른 궁궐들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제는 이곳에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지어 대중공원으로 변모시켰고, 공공시설과 놀이시설이 들어서고, 호랑이, 낙타, 하마, 공작 같은 동물과 이국적인 식물이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왕실 소유 재산에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을 심고, '창경원'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궁궐이 '짐승 우리'로 전락함을 통탄하기도 했으나, 창경원 꽃놀이가 유명해지자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p.202)
저자들은 특히 당시 음악 부문의 친일과 반일 인사들의 행적과 마지막을 일부 다루기도 하며 당시 시대 상황과 이들의 행적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로지 음악에 기여한 부분만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자료로서의 역할엔 다소 미흡할 수 있지만 음악에 관한 것을 위주로 그들의 행위 등을 기술하는 객관적 평가를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지만 가급적 중립적 입장에서 기술하려 했다는 점에서 더 알고자 하는 독자들의 개인 탐구에 맡기고, 그들의 행적과 음약 기여도에만 관해 썼다. 그것이 대부분 당시 신문의 평가나 보도에 의존하게 된 원인인 듯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채동선과 홍난파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채동선은 시인 정지용의 시에 곡을 써 발표하는 등 대단한 활약을 했으나 1940년대 접어들어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등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일체의 외부활동을 중단한 채 농사꾼으로 변신한다. 해방후 고려음악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나 아쉽게도 1953년 부산 피난시절 급성복막염으로 53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에 비해 홍난파는 음악에 몰두하고 음악에만 전념하려 했지만 일제의 회유에 사상 전향서를 쓰고 전향한 후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 조선문예회,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음악협회와 같은 단체에 가입하여 친일가요를 작곡하고 "지나사변과 음악"과 같은 친일적 논조의 글을 남겼다. 1937년 이후 난파의 음악활동은 그를 음악계의 대표적 친일 인사로 분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저자 : 신혜승
이화여자대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18세기 영국의 기악음악에 대한 연구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음악과 역사는 물론, 음악과 공간, 음악과 정치, 음악과 젠더와의 관계를 음악학적인 입장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 음악학 분야에 관심의 폭과 깊이를 넓혀가고 있다. 현재 연세대 · 이화여대 · 서강대 · 한성대 · 건국대 · 세종대에서 음악사 및 음악문화콘텐츠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뮤직스토리텔링 연구소 대표로 저술, 창작,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 : 김은영
대학 때 노래운동과 민족음악론에 흥미를 느껴 중앙대에서 국악이론을 공부하고 동아대학교에서 전통음악의 근대성 연구로 음악문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음악, 전통음악, 대중음악으로 분리된 음악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연구를 지향하며 연구자들의 연대를 통해 음악학 연구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중이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면서 냉전기 한국음악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 : 이수정
중앙대학교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 관한 연구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근대 한국음악계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있으며, 저술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