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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묻고 싶은 밤 - 누구나 한 번쯤 소설의 주인공
최새봄 지음, 김동욱 외 13명 그림 / 디페랑스 / 2021년 12월
평점 :
소설처럼 영화처럼 살고 싶어도, 소설과 영화 같은 삶은 없다. 모든 사람의 삶을 독자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독자의 삶에는 최소한 소설 같은 삶, 영화 같은 삶을 없었다. 또 독자의 주변에도 전해 들은 얘기에도 그런 삶은 없었다. 그런데 대중들은 왜 그런 삶과 사랑을 좋아할까. 소설이나 영화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모두 극적이고, 슬픈 내용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만남부터 끝까지 아름답고 즐거운 좋은 사랑은 없다. 소설이나 영화는 허구다. 물론 있을 법한 허구다. 사랑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진짜 우리의 삶과 사랑을 소설이나 영화로 다룬다면 독자나 관객은 외면하기 십상이다. 현실보다 더 슬프고 극적인 삶과 사랑을 원한다. 다수는 자신들이 해보지 않은 사랑을 영화나 소설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소설 속의 사랑처럼 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해서일까.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지 않으면서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이 책 『사랑이 뭘까, 묻고 싶은 밤』의 저자 최새봄은 의외로 간단한 답을 내놓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삶과 사랑을 통해 답을 발견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사랑하는 동안만큼은 우리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때론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고자 하는 노력을 덧대기도, 혹은 회상으로나마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잇대기도 하면서도.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사랑, 그 끝없는 이야기가 우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위로 띄워 놓은 부표 같은 의미일 것 같다는 의미에서다. 저자는 이제 책을 통해 말한다. 지나온 삶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인연이 비껴간 슬픈 기억들에조차 가끔씩은 뒤돌아선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해피엔딩이 아닐망정 한 편의 소설 같은 사랑을 했다는 위안 같은 것.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더 사랑했다는 사실이, 내가 더 약자였다는 사실이 억울하지도 않다. 내게 한 편의 소설로 남은 당신이라면, 내가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한 거니까라고.
번화한 거리의 곳곳에 울려 퍼지는 사랑 노래. 때론 잠시 상념으로 멈춰 서게 하는, 언제고 누군가에 대한 사연이었던 멜로디와 가사가 들려오는 순간, 스치는 모든 풍경들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되는 느낌을 가져본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독자도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유독 음악을 좋아하거나 사랑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져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감성과 사랑하는 느낌 사이에 미처 몰랐던 것이 불현듯 떠올라서이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내가 한 사랑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적어놓은 듯한 소설 속 어느 페이지에서 잠시 읽기를 멈추게 되는 소설들도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처럼, 지나간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48편의 편린을 실었다. 그리고 28점의 그림을 함께 실었다. 모두 삶과 사랑에 대한 글이다. 모두 소설 속의 사랑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가슴속에서 긴 여운을 남기며 잠들어 있는 한때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저자의 기억에 공감하는 여러 편의 소설을 마주할 수 있다. 소중한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사랑은 사람 없이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일상과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는 것이 삶이지만, 사랑이 곁에 있을 때 우린,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니까.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사랑하는 동안, 그리고 사랑이 저물어 가는 날들까지도.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랑도 멈출 수 없을 테니까.
사랑하기 전과 사랑한 후가 이토록 다른데, 왜 삶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이어질까.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랑을 다시 시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데도, 우리는 그저 하나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고 여기는 걸까.
우리의 영원한 난제, 사랑에 관하여, 타인들은 어떻게 욕망하고 그 욕망이 어떻게 좌절되며, 또한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는지가 궁금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 사랑에 대한 지침서가 있을까 하는 탐색, 혹은 선택과 결정을 유예시키며 즐기는 대리만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신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는 데에 사랑만큼 유효한 사건도 없다. 어디 가선 성격 좋다는 소리를 늘상 들어도, 내가 그토록 유치하고 속이 좁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닫게 하는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못났고, 너는 언제나 그토록 아름답다. 사랑은 언제나 나에게만 불리한 게임. 그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미 한 겹 쌓인 기억 위로 갈마드는 이런저런 감정. 나만 그런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 우린 얼마나 자기검열을 거듭하는가.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답으로써 무라카미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의 문학만큼 솔직한 경우도 없으니까.
연인과 함께 쌓아 가는 시간들. 그것이 어느 순간 빛이 바랜 유물이 되어 기억의 박물관에 저장될지, 시작의 설렘과 새로움의 매력이 소진된 뒤에도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단련되어 길들여질지, 결국 일상이 되어 삶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게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올라탄 자연스러운 흐름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언제나,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흥미로운, 연애의 행방.(p.196)
저자 : 최새봄
역사를 공부하고 은행에서 일한 뒤 2014년부터 [그림을 담는 그릇, 아틀리에 봄]을 운영 중이다. 중구난방 살아온 것 같지만, 한글을 깨친 다섯 살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만은 삼십 년째 매일 하고 있다. 장래희망은 ‘새로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사는 동안 60권의 책을 쓰는 것이 꿈이다. 그렇게 이번 생을 전부 글로 쓰겠다는 계획을 은근히 실행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