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 중국사 도감 - 지도로 읽는다
오카모토 다카시 지음, 유성운 옮김 / 이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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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세계 역사를 배운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다. 서양사 부분만 대학 1학년 교양 선택과목으로 한 한기 들었던 게 전부다. 이후로는 세계 역사를 누구에게서든 배우지 못했다. 역사 전공의 학생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그 정도를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사적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천차만별이다. 역사를 잘 아는 그들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역사 서적이나 영상물에서 배운 지식일 터다. 생계나 일상이 역사와는 무관한 독자 역시 책 몇 권, 영상 몇 편 읽고봤을 뿐이다.

독자가 한 가지 유독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극이었다. 독자의 한국사 지식의 상당 부분은 사극을 통해 얻은 지식임을 고백한다. 물론 관심이 많은 부분에 대한 드라마는 관련 사건이나 실록이 나오는 부분을 책을 통해 추가 독서를 해본 정도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대부분은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나라 모든 사극에 꼭 끼는 곳이 중국이고 중국 사람들이다. 대륙으로 가는 유일한 육로를 국경으로 두고 있는 탓에 교류도 많았고 전쟁도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극은 대부분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동양사를 다루고 기술하는 것은 중국 사마천을 바탕으로 그곳의 사건을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국 고대사의 경우 인용도 그렇지만 역사 기술의 원조라고 할 사마천의 관점이 가장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한 역사가라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책 『세계사 속 중국사 도감』은 저자가 일본 역사학자다. “실체로서의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서양사관에서 벗어나 중국 역사의 축적과 마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중국인의 발상이나 언동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서양의 입장과 그들의 역사관만 아는 것으로는 시각이 편향되어 세상을 오인할 수 있습니다.”는 저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의 사관(史觀)을 지지하고 싶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역사를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는 그의 사관을 폄하할 위치도 아니고, 또 비하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일본에 대한 사적 적개심이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침범하고 핍박하는 범위를 넘어서 지배한 당사국이니까. 그러고도 결코 사과 한 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그들의 죄악을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서양 중심의 세계사와 역사관을 줄곧 비판해온 일본의 저명한 중견 역사학자가 쓴 이 책에도 큰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은 속좁은 피지배국의 항변만으로 봐주지 않기 바란다. 이 책처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즉 정치적 군사적 이해 관계 없이 중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한다는 저자의 진실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길 바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세계에는 유럽과 다르게 발전해온 중국사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책을 출간한 이유도 서양의 세계관과 고정관념을 재검토하고 중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다는 말이 100% 저자의 진심일 것으로 믿기 바란다.

 


 

이 책은 ‘건조 지역과 습윤 지역이 인류의 삶을 양분했다’라는 대전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나라나 지역의 역사를 배울 때 무대 설정이라는 지정학적 관점과 시각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영위하게 만드는 자연조건이나 생태 환경이 생활 무대가 되고, 이것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는 전제조건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중국사와는 달리 왕조 중심의 정치적 인물이나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대신에 유라시아의 동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지정학, 문명론, 경제 문제 등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다루며 중국사의 흐름을 해설한다. 한랭화 등의 기후와 대규모 인구 이동, 해양술 등 기술적인 요인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유라시아의 양단인 유럽과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횡축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역사분석은 탁월하다. 예를 들면, 실크로드를 축으로 고대 황하문명이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기원전 3세기에 진나라의 통일과 로마제국의 통일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힌다. 또한 3세기에 발생한 기후 한랭화에 따라 중국에서는 유목민족의 남하로 한 왕조의 멸망 이후 수백 년 동안 혼란이 계속되었고, 유럽에서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나 유럽의 지도가 바뀌는 대변혁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중국사의 다원적 특성을 입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고대문명 발생 이후 반복된 중국 왕조의 흥망은 다양한 민족들이 유입되며 벌어진 중원의 통치권 다툼으로 분석한다. 중국민족이라는 한족이 통치한 왕조는 송과 명에 지나지 않고 수, 당, 원 모두 몽골계의 북방 유목민이 지배자였고, 청은 만주족이 지배한 왕조라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중국사의 변천은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왕조의 구성원과 통치체제, 경제의 구조, 문화, 무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중국 왕조가 언제나 극심한 분열과 혼란을 되풀이하는 것도 이러한 민족적 다원성과 역동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기후 온난화시기에 활발한 교역으로 인한 몽골제국의 구심력이 유라시아의 동서를 통합했다면, 이후 한랭화시기에는 흑사병까지 겹쳐 교역의 중단으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몽골제국은 멸망한다. 이후 중국의 지배자로 등장한 명은 몽골의 흔적을 지우고 ‘중화’의 회복을 외치지만 해금정책 등 폐쇄적인 강압통치로 내분을 초래해 결국 ‘외이’ 만주족의 청에 통치권을 넘긴다. 청은 다민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의 정치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하는 제국으로 발전하지만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서구 열강의 원심력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는다.

 


 

책에 따르면 쇄국 노선을 택한 명과 개방 노선을 택한 청을 대비하면서 현대 중국을 이끌어온 마오쩌둥과 등소평의 정책을 비교한다. 강압적이고 폐쇄적인 마오쩌둥이 명의 노선을 답습하느라 경제가 침체했다면,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등소평은 청의 노선으로 전환해 중국의 경제 발전을 주도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왕조의 변천에 따라 쇄국과 개방의 정책을 되풀이하는 것이 중국사의 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어떤 정치ㆍ경제 체제에서도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층 인민들이 부유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심해지는 빈부의 양극화와 동서 지역의 격차, 그리고 중앙권력과 하부구조의 괴리는 결국 정치와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중화민족의 통합과 공동부유를 외치는 시진핑의 중국이 통일성과 다원성, 그리고 쇄국과 개방 사이에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책은 중국사를 통해 중화문명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나침반과 같은 책이다. 이 책이 가장 돋보이는 점은 '기후'와 '환경'이 중국사에 끼친 영향을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어떤 역사를 공부하든 참고할 만한 사항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써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독자의 관점이 정답은 아니다. 그런 관점을 제시하는 데 이 책은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은 황하문명부터 현대 중국까지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 중의 하나인 중국에 대해 8개 장과 종장(終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황하문명과 중화의 탄생

2장 3세기 한랭화와 민족 대이동

3장 수ㆍ당의 통일과 중국의 원형

4장 당송 시대의 문화ㆍ경제 혁명

5장 몽골제국과 세계의 대변혁

6장 명의 쇄국정책과 경제ㆍ문화의 발전

7장 청의 지방 분권과 서양 열강의 침탈

8장 혁명의 20세기와 현대 중국의 과제

종장 세계사 속에서 배우는 중국사

 


 

저자 : 오카모토 다카시

1965년 교토 출생으로 고베대학교 학부와 교토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후 미야자키대학교 준교수를 거쳐 현재 교토부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중국 근대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로 중국 역사와 경제에 관한 많은 저술과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의 높은 평판과 주목을 받고 있다. 2000년 《중국 근대와 해관》으로 오히라 마시요리 기념상, 2005년 《속국과 자주의 사이》로 산토리 학예상, 2017년 《중국의 탄생》으로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는 《세계 속의 일·청·한 관계사》(2008년), 《근대 중국사》(2013년), 《교양으로서 중국사를 읽는 법》(2020년) 등이 있다.

 

역자 : 유성운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정치부-사회부를 거쳤다. 대학원까지 역사 공부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기자 생활 15년의 절반을 정치부에서만 보냈다.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마음을 바꾸어서 기후환경학을 공부했다. 정치부와 문화부를 거치며 〈중앙일보〉 지면과 온라인에 ‘유성운의 역사정치’, ‘역(歷)발상’, ‘역지사지’ 등 역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사림, 조선의 586》,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펴냈고, 《세계사 속 중국사 도감》, 《고지도로 보는 유토피아 상식도감》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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