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문학을 잘 모르는 독자로서 감히 평가할 수 없지만, 지금의 문학계는 SF판타지가 대세인 것 같다. 기존 인간 감성과 상상력에 의한 문학 특히 소설에서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져 보인다. 인간의 감각과 현실을 초월한 신비, 환상, 우주 등이 문학의 주요 소재와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심리를 다루는 소설도 인간의 잔인함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날로그 세대여서 디지털의 주는 '신세계'를 깊숙이 경험하지 못한 탓인지 모르지만 이젠 소설 자체가 픽션(fiction, 허구)임을 바탕에 깔고 작가의 상상력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주 공상과학 소설들이 쏟아져나온다.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의 영역이 넓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현실 도피'의 한 방법으로 너무 현실과는 유리된 책들이 독자들의 인기를 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이 공상과학의 범위를 포함시키는 일인지 공상과학의 세계가 문학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J. K. 롤랑의 '해리포터'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소설 『소마』는 독자의 지적 수준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시간을 과거로 돌려 그려낸 한 편의 SF판타지다. 채사장 작가의 전작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등 인문학 책들은 마치 한 편의 긴 이야기처럼 읽힌다. 복잡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구조를 만들고 갈등을 입힌 후 주인공들을 내세웠다.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철학, 과학, 예술, 종교 등의 지식이 하나의 서사로 자연스럽게 기억되었다. 채사장이 처음 쓴 장편소설 『소마』는 먼 길을 가는 소마의 행적이 '오딧세이아'의 영웅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앞서 쌓아온 내공이 놀랍도록 능수능란하게 발휘된다. 그런 의미에서 채사장의 소설 『소마』는 전작들의 구조와 닮았다. 한 인간의 기나긴 삶의 여정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 아래, 인물들이 만나 갈등하고 풀어지고 다시 갈등하는 정반합 식 사건들이 숨 막히게 전개되고, 그 더 아래에는 깊은 인문학적 사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야기에 끌려가던 독자들은 무심코 다다른 소설의 끝에서 사뭇 놀라운 질문을 받고 먹먹해질 것이다.

 


 

작가 채사장은 오래도록 인간의 본질, 내면, 의식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무관심한 이 주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해온 결과가 그간의 책들이었다. 이제 작가는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일평생 추구해온 화두를 전달하려 한다. 그것이 '소마'라는 인물을 통해 이 책에서 생생하게 현현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열망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이 소설은 놀랍도록 시의적절하다. 소설 『소마』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한 소년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아버지는 마을을 향해 활을 쏘고 소년 소마에게 화살을 찾아오라 말한다. 영문을 모르지만 무작정 화살을 찾아 떠난 소마의 앞에는 신비한 만남과 죽음이, 망각과 소생이 기다리고 있다. 인류 역사의 주요 사상들이 깃든 공간적 배경 속에서 한 인간의 기막힌 여정이 시작된다. 이 여정 안에서 소마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가 모든 것을 하나씩 잃어간다. 과연 가장 마지막에 소마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이 질문 속에 놀라운 삶의 진실을 숨겨두었다.

"아버지는 밤새 신을 태웠다."로 시작하는 소설의 시작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성장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소마'가 주인공이다. 그는 도중에 그만 길을 잃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휩쓸리게 된다. 그곳의 한 귀부인의 눈에 띄어 그 손에 길러지게 된다. '한나'라는 이름의 이 젊은 귀족은 소마가 이교도이므로 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정을 줄 사람이 필요한 모양인지 자꾸만 소마의 안위에 신경을 쓴다. 어저면 불임 때문에 고민중이던 차에, 그 애를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외국에서 온 소마는 통 말을 하지 않고, 한나는 그런 소마에게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여인, 잘못된 신념과 정의로 살아가는 무리, 오해로 시작된 집착에 일생을 탕진하는 남자, 욕심에 죽음을 앞당기는 세력들, 생에 대한 복수로 괴물이 된 남자, 세상을 호령하고도 방치된 노인 등···. 소년 소마가 노인 소마가 되기까지 한 평생 만나는 인물들은 실로 다양하다. 그들의 욕망이 씨실과 날실로 장대하게 빚어내는 이야기의 기저에는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이 서슬 퍼렇게 깔려 있다. 그래서 독자들의 마음을 마구 뒤흔든다.

작가가 등장시키는 이 인물들은 얼핏 독특해 보이지만, 그들은 시대의 틀 안에서 마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역사적 캐릭터들이다. 이들이 시대에 종속된 채 오해, 시기, 집착 등 각자의 동기로 부딪히는 순간 주인공의 소마의 생은 한없이 요동친다. 삶의 터전이 황폐해져도, 기억을 상실해도, 사랑하는 이를 잃어도, 갇히고 쫓기고 버림받아도 소마는 끝내 다시 일어선다. 소마를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소마를 주저앉게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 누구보다 성공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몰랐던 주인공 소마는 버려두었던 우리 각자의 삶을 아프게 환기시킨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소년에서 노년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기까지의 숨 막히는 일생을 질주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알게 되는 삶의 진실을 펼쳐 보이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다 소거했을 때, 과연 그것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눈앞에 그려지고 손에 잡히는 것에만 욕망하는 현대 사회에 결여되어 있는 질문이 아프게 던져진다. 진짜 나란 무엇이냐고. 이 물음은 책을 덮은 당신의 가슴에 강렬하게 박힐 것이다. 그리고 영웅 소마는, 당신의 삶 안에서 아마도 아주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이 소설은 역사와 종교에 휘말리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환상적이고 장대한 서사시다. 고대, 중세, 근대를 상징하는 시간의 흐름과 동서양 문명이 융합되는 공간의 전개 속에서 한 인간이 고단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여정을 처연하게 펼쳐낸다. 때로는 연민하고, 때로는 부정하고, 때로는 울어주며 독자들은 깊은 슬픔과 삶의 진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p.20)

 


 

독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인문학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려 소설을 썼을까?를 파헤치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엔 그 대상이 신이라고 여겼다. '아버지는 밤새 신을 태웠다'로 소설 첫 문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추정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신이 독자가 짐작한 '기독교의 신'은 아니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꼬집고 있는 것은 바로 현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 '돈'인 것 같다. 이 소설에는 돈 말고도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나온다. 종교, 정치, 전쟁, 계급 같은 이 사회를 둘러싼 많은 요소들이다. 말하자면 소마의 이야기는 관념의 세게에서 일어선 영웅의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요소들은 사실 자본가들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가짜 주인공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돈. 즉 이 얘기를 아주 함축적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 "우매한 군중은 종교라는 관념에 빠져 마녀사냥이나 구경하러 다니지. 자본가 놈들은 그 종교를 위한 전쟁이라는 빌미로 사실 돈을 벌고 있는데 말이야."

작가 채사장의 소설 집필 의도를 알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과 기본적 지식이 필요하겠지만 한 번 읽은 느낌으로는 SF 판타지 형식을 빌어 '오딧세이아' 형식으로 기술한 잘 만들어진 현실 비판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인 작가가 아날로그 세대의 취향에도 잘 맞은 높은 문학적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저자 : 채사장

 

2014년 겨울에 출간한 첫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2015년 국내 저자 1위를 기록했다. 차기작으로 현실 인문학을 다룬 『시민의 교양』과 성장의 인문학을 다룬 『열한 계단』, 관계의 인문학을 다룬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까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20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책과 동명의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장기간 팟캐스트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정치 내용 판도의 팟캐스트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2015년 아이튠즈 팟캐스트 1위를 기록,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2억 건을 넘어서며, 방송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지적 대화를 목말라 하는 청취자들의 끝없는 지지를 받는 중이다.

성균관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학창시절 내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하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문학과 철학, 종교부터 서양미술과 현대물리학을 거쳐 역사, 사회, 경제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편력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들은 오늘 그가 책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적 대화를 통해 기쁨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넓고 얕은 지식의 공통분모로 대화하고자 이 책을 썼다. 모두가 자신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타인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 현재는 글쓰기와 강연 등을 통해 많은 사람과 만나며 삶과 분리되지 않은 인문학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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