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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형제들 -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을 넘나드는 근현대 형제 열전
정종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2월
평점 :
2021년 12월 한국 사회는 코로나라는 최악의 팬데믹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한번도 경험한 바 없는 재앙에 벌써 2년 동안 발이 묶여 경제 활동은 물론 생계마저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로 몰리고 있다. 우리 나라만 겪는 일은 아니라지만 매일 수천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수십 명씩 사망자가 생기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라 할 정도로 악전고투하는 사람들에게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소통도 어렵다보니 불평등과 차별, 혐오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공동체 의식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 발전의 가장 장애요소라는 불평등과 차별이 생겨났고 심지어는 혐오의 시대라 할 만큼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거침없이 폭력을 가하고 있다. 이 책 『특별한 형제들』은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경각심을 주고 우리 나라와 국민들의 상생 발전을 위해 공동체의 지속을 기원하는 저자 정종현의 의식적 도전이다. 저자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형제애(자매애)'와 연대를 통해 개방적인 관용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만이 우리 사회가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집필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 근현대사의 특별한 13쌍의 형제 이야기를 선택해 그들의 삶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 공동체의 발전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진심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저자가 우리 근현대사에서 찾아낸 13쌍의 형제들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결속을 표상하는 '형제애'를 근본적으로 다시 성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형제가 아님을 「책을 펴내며」에서 밝혀 집필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2019년 『제국대학의 조센징』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 1,000여 명의 기록을 책으로 펴낸 바 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을 마무리할 무렵 한 학술회의에서 만난 김근배 교수가 김일성종합대학 창설을 주도한 제국대학 출신 정두현의 자서전과 이력서를 제공해주어 그 책을 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책을 끝낸 후 정두현의 동생 정광현도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됨으로써 이번 책 『특별한 형제들』을 2년여 동안 자료조사와 발로 뛴 취재를 통해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두현 형제가 남북한 분단으로 겪었을 고통과 수고도 눈에 보일 듯 생생한 기록을 더해 이번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출간 후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저자는 당시 강렬하게 자신을 사로잡았던 조선인 유학생들의 극적인 삶을 잊을 수 없었다. 역사란 사건과 제도를 통해 이해되기도 하지만 다양한 동기와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삶’을 통해 볼 때 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와 서울대학교 교수, 검찰총장과 남로당원, 공산당 부역자와 〈애국가〉 작곡가. 이처럼 함께 나고 자랐지만 서로 다른 삶의 굴곡을 보이는 형제들에서부터 식민지 해방과 혁명 전선에 함께 뛰어든 혁명가 형제ㆍ남매들, 민족과 제국의 경계에 선 식민지 조선의 기업인 형제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처단 대상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매국노와 밀정 형제 그리고 피가 아닌 신념으로 뜨거운 연대를 보여준 의형제들까지, 이 책은 13쌍의 형제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또 친일과 항일, 좌와 우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고귀함과 치열함, 비루함과 욕망 등 인간의 복합적인 면면을 살핌으로써 역사 인물에 대한 단선적인 평가와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동시에 ‘형제애’와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차별과 배제, 혐오와 불평등이 심화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
저자는 묻는다.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으면, 일본어로 작품을 쓰면, 창씨개명을 하면 친일파인가? 인간의 삶이, 역사가 이처럼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거라면 역사 해석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식민지 민족의 현실에 괴로워했던 청년 시인 윤동주는 일본식으로 창씨를 했다. 일반 민중은 현실적 불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한 경우가 많다. 반면 ‘서유견문’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유길준의 아들 유만겸은 본관을 활용한 창씨마저도 하지 않고 ‘유’라는 성을 고수했다.
하지만 일제하에서 그가 맡았던 직함들을 보면 성씨 고수가 민족의식의 발로와는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인다. 식민지기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은 158명. 조선귀족 대부분은 특권을 누리며 호의호식하고 대를 이어 영화를 누렸지만, 남작 민태곤과 같이 독립운동의 가시밭길을 택한 사람도 있다.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일본어로 쓰면 친일문학이라는 통념이 작동하지만 임순득의 작품 〈계절의 노래〉, 〈이름 짓기〉 등을 세심하게 읽다 보면 식민지 말기 일본어로 된 한국문학을 다시금 사유할 필요를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따르면 간단치 않은 인물 이해는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의 형, 안익조의 삶에서도 보인다. 그는 식민지기 컬럼비아레코드사 문예부장에서 만주국군 군의로, 다시 컬럼비아악극단과 조선연예기업사 대표, 후생의원 개업의로 생업을 바꾸다가, 해방 후 ‘공산당 부역’ 군인으로 삶을 마감한다. 만주국군 근무 이력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게 했고, 한국전쟁 직전에 가짜 헌병과 정보원들의 횡포를 금지하고자 한 양식 있는 조처는 친북의 전형처럼 여겨져 총살의 이유가 되었다. 이는 친일과 친북의 낙인찍기를 통해 복잡한 인간의 삶과 다양한 사상 스펙트럼을 단순화하고 폭력적으로 단죄하는 한 예일 것이다.
"안익조ㆍ안익태 형제의 삶과 죽음은 ‘친일’과 ‘친북’, ‘애국’과 ‘부역’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과 ‘친북’의 문제는 진보/보수라는 진영 갈등으로 전이된 측면이 있다. ‘반민특위’의 해체로 상징되는 좌절된 ‘친일’ 청산 문제는 이승만·박정희 등 보수 세력의 구심점을 공격하기 위해 진보 진영이 중요 국면마다 재점화하는 이슈가 되었다. 진보 진영에 친일 세력의 후신으로 지목된 보수적 정치 세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반대 세력을 향해 냉전 시기에 횡행하던 ‘친북(종북)’이란 낙인을 찍으려고 시도한다."(p.67)
이 책에서는 20세기 한반도의 격랑 속에서 분단과 냉전, 전쟁을 겪으며 서로의 존재를 애써 지워야 했던 북의 정두현과 남의 정광현, 검찰총장과 남로당원으로 대립했던 이인과 이철, 인민군에 협조한 부역자로 총살된 안익조와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은 애국자 안익태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적대하거나 외면한 한국 근현대의 상처를 살핀다.
‘친일파’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없는 유만겸과 유억겸, 김성수와 김연수 형제의 삶이 가진 복잡성을 생각해 보고, 조선귀족 민태곤과 민태윤 형제를 통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이는 모두 친일파라는 선입견을 다시 곱씹어 본다. 거꾸로 ‘빨갱이’라는 낙인 속에서 그 혁명가적 삶이 부정되거나 잊힌 김형선·김명시·김형윤, 김사국·김사민 그리고 오기만·오기영·오기옥 형제를 통해 기억의 영역에서 가해지는 폭력을 돌아본다. ‘형제’로 호명되는 인간, 국민, 시민의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던 이들의 역사도 살핀다. 임택재와 임순득 남매를 통해 평등을 지향한 사회주의조차 피하지 못했던 젠더적 위계를 성찰하고, 한반도에만 한정된 공동체 감각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디아스포라 심연수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들에게도 손을 내민다.
나아가 참된 삶을 살고자 고향의 육친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소련으로 망명한 북한 유학생들인 ‘8진(眞)의 형제들’ 이야기를 통해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일제시대 대표적인 매국노와 밀정인 선우순과 선우갑 형제를 통해 이데올로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에 대해 묻는다.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전형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발굴하여 소개함으로써 ‘형제’의 입체적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근현대사를 새롭게 볼 단초를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극심한 진영 논리, 심화된 불평등과 혐오의 시대를 건널 지혜를 이 ‘특별한’ 형제들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길 기대한다.
"입만 열면 국민을 내세우면서 민중의 돈을 편취하고 있는 오늘날 저 광장의 가짜 목회자들, 절박한 생존의 벼랑 끝에서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소송으로 월급과 재산을 가압류하여 자살로 내몰았던 법기술자들 등등. 이들이 버젓하게 활보하는 지금-여기의 현실은 과연 선우순·선우갑 형제의 악행을 오래전 일로 치부하고 끝낼 일일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국민을 내세우며 사실은 공동체를 해치는 그들이야말로 ‘우리 안의 밀정’이 아닌가.(p.218)
저자 : 정종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식민지 후반기 한국 문학에 나타난 동양론 연구」로 200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아시아 비교문학, 지성사, 독서문화사, 냉전문화연구 등 20세기 한국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2010년부터 1년간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 연수를 한 후,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연구교수와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HK교수를 거쳐 현재는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문학』(창비, 2011), 『제국의 기억과 전유-1940년대 한국문학의 연속과 비연속』(어문학사, 2012)이 있고, 공저로 『신라의 발견』(동국대출판부, 2009),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동국대출판부, 2009), 『문학과 과학』(소명출판, 2013), 『검열의 제국』(푸른역사, 2016), 『미국과 아시아』(아연출판부, 2018), 『대한민국 독서사』(서해문집, 2018) 등이 있으며, 공역서로 『고향이라는 이야기』(동국대출판부, 2007), 『제국대학-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장치』(산처럼, 2017)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