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 - 내가 사랑한 밈들
코지마 히데오 지음, 부윤아 옮김 / 컴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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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창조하는 능력, 창의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지능에 창의력이 유전자로 존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데 왜 누구는 창의력이 높고, 다른 누구는 그에 미치지 못할까는 다음 문제이다. 다만 상상력을 더하고 자신이 스스로 더 갈고 닦음에 따라 창조적인 재능은 더 향상되거나 위축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코지마 히데오는 중간 과정에서 '유대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고독하지만 연결되어 있다. 그런 감각이 어린 시절부터 외로웠던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책이 지금까지 나에게 선사해 주었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이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다."

- p.9 「시작하며 - MEME이 이어 주는 것」

 

두산백과에 따르면 밈(MEME, 문화적 유전 정보)의 전달 형태는 유전자가 정자나 난자를 통해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전달되는 것과 같이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전달된다. 이러한 전달과정에서 각각의 밈들은 변이 또는 결합ㆍ배척 등을 통해 내부 구조를 변형시키면서 진화한다. 따라서 음악이나 사상, 패션, 도자기나 건축양식, 언어, 종교 등 거의 모든 문화현상들은 밈의 범위 안에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선행 혹은 악행이 여러 명에게 전달되어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밈의 한 예에 속한다.

 


 

이 책 『코지마 히데오의 창작하는 유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밈(MEME)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밈은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비유전적 문화요소 또는 문화의 전달단위를 말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 처음 소개된 용어이다. 문화의 전달에도 유전자처럼 복제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ㆍ양식ㆍ유형ㆍ요소가 밈이다. 모든 문화현상들이 밈의 범위 안에 들어가며 한 사람의 선행 혹은 악행이 여러 명에게 전달되어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밈의 한 예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문화의 전달은 유전자(gene)의 전달처럼 진화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언어ㆍ옷ㆍ관습ㆍ의식ㆍ건축 등과 같은 문화요소의 진화는 유전자의 진화방식과는 다르다. 문화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복제되는 것과 같은 복제기능이 있어야 한다. 즉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는 것과 같이 문화의 전달에도 문화의 복제 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 곧 중간 숙주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ㆍ양식ㆍ유형ㆍ요소가 바로 밈이다. 즉,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사람의 문화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밈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에도 올라 있는데, '모방 등 비유전적 방법으로 전달된다고 생각되는 문화의 요소'로 정의되어 있다. 도킨스는 '진(gene)'처럼 복제기능을 하는 이러한 문화요소를 함축하는 한 음절의 용어를 그리스어(語) '미메메(mimeme)'에서 찾아내 여기서 밈을 만들어냈다. '미메메'에는 '모방'의 뜻이 들어 있다.

 


 

이 책은 세계적인 게임 제작자 코지마 히데오가 게임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영향과 영감을 받은 44편의 책과 영화들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는 『별의 계승자』,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 같은 걸작 SF 소설이나 영화는 물론, 애거서 크리스티, 스티븐 킹의 미스터리 소설, Joy Division의 록 음악 등 자신을 게임 제작자로 만들어 준 수많은 창작의 원천들에 대한 저자의 감상과 함께 이 이야기들이 오늘날까지 밈으로 이어져 온 이유 등을 섬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게임 크리에이터의 인생과 작품, 세계관과 개인적인 내밀한 고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코지마 히데오는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와 〈데스 스트랜딩〉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일본의 유명한 음악가이자 작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호시노 겐과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유독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저자는 주변에 있던 책과 영화를 보면서 우울한 감정을 극복하고 세상과 이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행위를 통해 인생을 이끌어 줄 수많은 어른과 스승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책과 영화 속에 담긴 이야기를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느꼈으며, 이를 통해 책과 영화가 문화를 계승하며 유대 관계를 맺어주는 일종의 밈(MEME, 문화적 유전 정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MEME을 만나기 위해 매일 서점에서 새로운 책과 인연을 맺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있어 책을 선택하는 일상적인 행위는 현실에 참여하기 위한 지식과 뛰어난 지혜를 얻는 체험인 동시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저자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모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담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책과 영화를 고르는 감식안을 기르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열광했던 책과 영화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가 동경했던 우주의 비밀과 세상의 미스터리를 밝히려는 노력들이 담긴 것이 많다. 그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가 완벽한 창작물로 손꼽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같은 걸작 SF 영화를 중년의 팬들과 함께 보면서 묘한 감동의 순간을 맛보기도 하고, 《택시 드라이버》의 고독한 아웃사이더 ‘트래비스’에게 공감하거나, 《울트라 세븐》의 여주인공 히시미 유리코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우주전함 야마토》가 전한 꿈과 ‘로망’을 떠올리다 이른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던 슬픈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모든 개인적인 문화적 경험들은 결국 코지마 히데오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고, 이것들이 내면에서 화학작용을 일으켜 자신만의 작품을 창작하는 원천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각자가 갖고 있는 이야기들을 어떤 시간에 어떤 상황에서 ‘읽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 어떤 것을 모방하고 확장할지도 개인에게 달려 있으며, 모방하고 계승하고 확장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MEME이 탄생한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데스 스트랜딩〉을 준비하던 시절, 아이슬란드 여행 중에 우연히 들은 록 밴드의 음악을 티저 트레일러에 사용했던 것을 ME와 ME가 연결되어 새로운 MEME을 창조한 순간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사례를 통해 어제까지의 경험에서 얻은 확신으로 새로운 유대를 맺는 일에 성실하게 임하면 놀랄 만한 창작 에너지가 발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역사로부터 배우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만으로는 불완전했던 능력을 MEME이 전하는 문화적 경험을 통해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갈고닦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를 계속하면서 지독한 고독에 시달리거나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고민할 때가 많았던 저자는 그럴 때마다 자신처럼 MEME을 창조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 노력의 결과물을 보면서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사는 누군가가 창조해 낸 엄청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계속 힘을 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람과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이야기에 담긴 MEME의 힘을 믿으며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그런 행위가 사람들을 연결하고 세계와 시대를 연결해 갈 것을 믿기에, 그 MEME이 ‘창작하는 유전자’가 되어 아무도 체험하지 못한 세계를 보여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인연으로 만난 저자와 독자들도 앞으로 새로운 MEME을 창조해 낼 것이라 기대한다. 이는 또 다른 새로운 유대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메탈 기어 솔리드〉라는 장수 게임 시리즈는 내년(2012년)이면 무려 25주년을 맞는다. 나는 미디어를 향해 ‘이것이 내가 만드는 마지막 메탈 기어입니다’라고 매번 선언해왔다. 이 말의 의미는 서두에서 루헤인이 한 말과 거의 비슷하다.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작가에게도 끝이 있다. 그리고 작가는 끝을 맞이하기 전에 이야기를 끝맺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왜 같은 시리즈를 이어 가는 것일까? 그 답이 ‘켄지&제나로 시리즈’에 있다. 팬이 열렬히 원하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끝내고 싶은 마음 한편에 팬들로부터 등을 돌리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 p.26, 「제1장. 내가 사랑한 MEME들 - 팬이 열렬하게 바라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중에서

 


 

저자 : 코지마 히데오

1963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세계적인 게임 크리에이터로 코지마 프로덕션의 대표이다. 게임 업계에서 영화와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87년에 첫 감독을 맡은 작품 〈메탈 기어〉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시리즈로 만들어지면서 스텔스 게임(STEALTH GAME)이라는 장르를 확립했다. 2001년 미국 「뉴스위크(NEWSWEEK)」지의 ‘미래를 연 10인’에 선정됐다. 2004년에 미국 G4TECH TV가 주최하는 시상식 ‘지포리아(G-PHORIA)’에서 특별 공로상(LEGEND AWARD)을, 2009년에는 ‘게임 개발자 선정 어워드(GAME DEVELOPERS CHOICE AWARDS)’에서 평생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2015년에 독립하여 코지마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2016년에는 비디오 게임 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D.I.C.E. SUMMIT 2016’에서 명예의 전당상(HALL OF FAME), 캐나다 게임 저널리스트 제프 카일 리가 주최하는 북미권 최대 게임 시상식 ‘더 게임 어워드 (THE GAME AWARD)’에서 인더스트리 아이콘 어워드(INDUSTRY ICON AWARD)를 수상했다. 2017년에는 ‘브라질 게임쇼(BRAZIL GAME SHOW)’에서 평생 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9년 대망의 신작 게임 〈데스 스트랜딩(DEATH STRANDING)〉을 발표했다. 저서로 『내 몸의 70%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내가 사랑한 MEME들 :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이야기』 등이 있다.

 

역자 : 부윤아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책장을 구경하기를 좋아하다가 다른 나라의 좋은 책을 찾아내 국내에 소개하는 번역가가 되었다. 한 분야를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두고 싶어 대학에서 경제 무역학을 전공하고, 20대에는 공연기획 일을 했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늘 재미있고 새로운 책을 탐색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지극히 작은 농장 일기』, 『에도 명탐정 사건 기록부』, 『만년필 교과서』, 『365일 소박한 레시피와 일상』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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