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람없이 산다 - 명함 한 장으로 설명되는 삶보다 구구절절한 삶을 살기로 했다
수수진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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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알람없이 산다』의 저자 수수진은 일러스트레이터다. 독자는 일러스트레이터 기본도 모르지만 지금 일러스트는 카툰과 전자 드로잉을 통틀어 가장 상용화가 많이 된 부문인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생활 전반에 일러스트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아이패드 일러스트까지 가세해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기본도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저자가 직업과 관련된 일러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느리게 사는 삶은 슬로우 푸드로부터 시작해 슬로우 라이프까지 광범위하게 우리 삶을 재편하고 있다. 잘 살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일하는 우리의 삶이었던 '빨리빨리' 문화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추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다. 사실 세계의 선진국은 200년이나 걸려 이룩한 산업화를 우리는 50년도 안 돼 이뤄냈다. 기적이라 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산업화를 이루고 경제적 부를 누릴 만큼 우리 나라는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섰다. 슬로우라이프도 지금은 수많은 책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저자 역시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아직은 우리의 대세 문화로까지 자리잡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슬로우 라이프의 한 방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이나 쓸 법한 '알람' 기능에 우리는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마치 기계처럼 사는 삶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일어나는 시간, 식사 시간, 약속 시간 등 시간규칙에 얽매이는 삶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대세다. 저자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은 자신의 삶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잘 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느리게 사는 삶이 대세가 될 때까지는 글로, 혹은 그림으로 여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눈 떠질 때 일어나 내가 원하는 대로 오롯이 살아가는 일은 작가에게는 어쩌면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휴가지에서 걸어두는 ‘방해 금지’ 팻말 혹은 불 꺼진 영화관에서 눌러보는 비행기 모드만큼이나 드문 장면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현실은 불쑥 찾아드는 온갖 요구와 사방에서 죄어오는 원치 않는 부담 속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침내 '나만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꾸려가게 된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속에 꾹꾹 눌러둔 작은 로망과 호기심을 훅 건드리며 다가온다.

 


 

책에 따르면 명함 한 장이면 자기소개가 되는 유명 기업에서 일하며 탄탄대로를 꿈꾸던 저자는 어느 날 뜻밖의 변곡점을 거쳐 창작자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커리어에 예기치 않은 단절이 찾아온 무렵 우연히 알게 된 독립출판을 통해 색다른 설렘으로 호흡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장 한 장 읽는 동안 독자들은 소소한 에피소드 속 닮은 고민을 떠올리기도 하고 다채로운 감정의 오르내림에 공감하면서 교감하게 된다.

‘삶’과 ‘사랑’, ‘일’에 관한 단상을 담은 에세이인 이 책은 때론 담담하게, 때론 깔깔 웃고, 또 함께 분노해주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와의 대화처럼 친근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웠다. 여기에 4만 2,000여 명의 팔로워가 애정하는 수수진만의 일러스트와 직접 쓰고 그린 컷 만화를 곳곳에 곁들여 더욱 매력적인 책으로 완성되었다.

 


 

“거창하게 꾸미지 않을 것이다. 버스 옆자리에서 본 듯한 흔한 단발머리 여자의 삶에도 그 나름의 뜻과 해학이 있다.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p.6)라는 작가의 말대로, 일상을 살며 빚어낸 한 편 한 편의 글들은 현학적인 수사나 화려한 치장보다 한결 내밀하게 와닿는다.

우유를 따르는 모습 같은 평범한 순간을 누구보다 비범하게 담아낸 얀 베르메르의 그림이 때로 더 큰 감동을 주듯이 삶에 대한 솔직한 묘사와 수수한 인생철학은 우리 시절의 한 면을 보여주는 거울이자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가 있다. 하루는 이런 결심을 하고 다른 날은 한 번쯤 상반된 바람을 품어 보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면에서, 또 낭만 일색으로 포장하지 않는 생활의 고백에서 우리 각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꾸밈없는 이 에세이는 외부의 잣대와 시선 때문에 스스로에게 미안할 선택을 하지 않을 용기, 그리고 내가 나여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진심을 그렇게 살포시 전해준다.

 


 

저자의 '느리게 살기' 철학은 코로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우리의 접촉과 소통을 차단해도 감정 교환이나 의사 교환은 얼마든지 가능한 소통 방법인 책으로 만들어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산업화의 상징인 금융사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에서 자랐다. 강남은 대한민국 금융 중심지답게 많은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이 몰려 있고, 각종 국영기업들도 한데 모여 있는 산업화 도시의 심장부이기도 하다.

그만큼 정신 없이 바쁜 지역이기도 하고, 땅값도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비싸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거기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이 저자에게는 오히려 강남을 속속들이 알게 된 이유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느리게 사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도시의 삶을 사랑하면서 여기에 아주 느린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 게 자신의 순진함이라고 믿는 데서도 드러난다. 그게 가장 치열한 나라 가장 치열한 지역에서 학창시절과 직장 등 살아오는 동안 이런 꿈을 꾸게 됐다고 말한다.

 


 

독립출판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면서도 저자가 에세이를 내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의 느리게 살기는 진정성을 얻는다. 자신의 말대로라면 삼류 드라마 같은 글을 쓰지만 여전히 에세이스트가 되고 싶고, 에세이스트로 살고 있다는 점은 그의 진정성을 뒷받침해준다. 「에필로그」에서 보여준 저자의 '책'에 대한 생각도 신뢰감을 더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양질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학위도 없고, 이름도 생소한 무명 작가의 에세이를 읽느니 누구나 들어본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 게 낫다. 하지만 책의 역할은 꼭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책이란 시간을 가장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도구 중 하나다.(p.245)

 

저자 : 수수진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프로젝트158 대표. 쓰고 그리는 사람, 1988년 서울 생, 2018년 독립출판을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에세이로는 『목 늘어난 티셔츠가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이유』, 『여행을 쉽니다』, 일러스트 아트북 『수수한 드로잉북』, 취미 실용서 『수수한 아이패드 드로잉』을 출간했다. 『수수한 아이패드 드로잉』은 귀여운 미니 일러스트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도 출간되었다.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 『알록달록 내 마음』의 삽화 작업에 참여하는 등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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