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만든 집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박영란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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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나로 만든 집』은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어린애 같은 어른들과 모두의 질서를 아우르는 어른 같은 아이의 이야기다. 저자는 외롭고 가난한 인물들을 보듬는 『한밤의 편의점』, 조금 이상한 각자가 모여 우리가 되는 『게스트하우스』 등 특별한 공간으로 이미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박영란 작가다. 그가 이번에는 ‘이층집’의 문을 열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내는 『나로 만든 집』은 낡은 이층집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에 집주인이 된 아이가 겪는 위기와 고난, 성장을 담은 작품이다.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작가 특유의 문체를 통해, 점점 고조되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자신만의 질서를 지켜 나가려 애쓰는 한 아이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이 이층집은 5월이면 꽃향기를 뿜어내는 라일락이 정원 한쪽에 군락을 이루고, 할머니의 계획에 따라 퍼즐 조각처럼 자잘하게 구역이 나뉜 텃밭이 자리하고, 자라나는 경주의 꿈이 되어 준 형광 별이 작은방 천장에 붙어 있는 집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경주의 질서가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집이 이제는 오롯이 경주의 소유가 되었다. 열일곱 살에 주인이 된 경주는 이제 자신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경주는 나이는 어리지만 건장하고 뼈대가 굵어서 만만해 보이지 않는 외모가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이 있다. 어른들과 대화할 때 나오는 말투는 딱딱하기 그지없다. “집은 안 팝니다.” 그해 여름, 경주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이다. 꼭 필요한 말과 행동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보호자였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산으로 받은 집을 경주가 홀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집을 팔아 버리려는 어른들 사이에서, 경주는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이층집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 자란 경주는 두 분마저 돌아가시자 이층집에 홀로 남는다. 그러나 삼촌을 필두로 가족들은 집을 팔아 한몫 챙기려는 속셈을 품고 경주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설득과 회유, 협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는 경주는 끝까지 자신의 집을 지킬 수 있을까? 이 소설이 긴장감을 갖고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되어 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을 손녀에게 물려준 것은 어린 손녀에 대한 마지막 보호 버팀목이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면서 어느새 가해자로 돌변해버린 인물,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줄곧 돈을 내놓으라며 생떼를 썼던 사람, ‘삼촌’으로부터 경주를 보호하기 위해 집을 유산으로 경주에게 남겼다. 어린애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무섭도록 끈질긴 삼촌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삼촌의 운명과 경주의 운명을 떼어놓는 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목적이었다.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분명히 알릴 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집과 함께 경주에게 남겼다. 경주는 절대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당당하게 홀로 서기 시작한다.

 


 

아직 할머니의 죽음을 견디기에도 힘든 경주에게 삼촌은 집을 팔자고 강요하고 윽박지르며 졸라대기도 한다. 그런 삼촌에게 경주는 때로 실망하고, 때로 절망하며, 때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을 어리숙한 아이로 여기며 무조건 우기기보다는 이성적인 태도로 설득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인생이 녹아 있는 유언을 삼촌이 함부로 평가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기도 한다.

집을 팔기 위해 애쓰는 어른들은 경주를 포함한 아이들에게 ‘어린 게 뭘 아느냐’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면에 숨은 어른들의 사정을 살펴보고, 이해하려 애쓴다. 각각의 질서가 충돌하는 한복판에서, 아이들은 눈물과 두려움을 삼키며 세상의 질서를 배우는 동시에 자신만의 질서를 쌓아 나간다.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어린 소녀에게 초점을 맞춘 데다 어른들의 얄팍한 돈 욕심에 대해 경종을 울리려는 저자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어 독자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너 몇 살이야?”

삼촌이 갑자기 나이를 들먹거렸다. 무슨 의도로 꺼낸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물려받은 유산은 지킬 줄 아는 나이입니다.”(p.48)

 

그러고 보니 스스로가 너무 어른처럼 느껴졌다. 내가 둘인 것만 같았다. 어른인 나와 미성년자인 나, 그 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어른이 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선택한 쪽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했다.(p.171)

 

저자 : 박영란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고, 영문학을 공부했다. 장편 『서울역』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을 받았다. 소설집 『라구나 이야기 외전』, 장편소설 『쉿, 고요히』(『나의 고독한 두리안나무』 개정판), 『영우한테 잘해 줘』, 『서울역』, 『못된 정신의 확산』, 『편의점 가는 기분』, 『게스트하우스 Q』, 『다정한 마음으로』, 『가짜 인간』, 동화 『옥상정원의 비밀』 등을 펴냈다. 마음이 쓰이는 곳에 내 소설 역시 머물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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