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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는다 - 100일 동안 100억 원씩 챙긴 세 남자의 전설적인 이야기
이동재 지음 / 창해 / 2021년 12월
평점 :
요즘은 디지털 세상 한중심에 들어와 있다.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을 들은 지 수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AI(인공지능)이나 빅테이터, 자율주행 등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한 느낌이다. 코로나로 인한 공유경제와 플랫폼의 급속한 발전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많다. 아무튼 아날로그 세대인 독자로서는 무척 당황스럽고 아쉽기만 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2년이 다 돼가는데 집에서 있는 날이 회사에 나가는 날보다 많았던 것 같고, 앞으로 이런 일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한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손에 다시 잡아 적지 않은 책을 읽게 됐다는 것은 그나마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얻어낸 기쁨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는 소설만 수십 권(2년 동안)을 읽은 듯한데 대부분이 SF판타지였다. 쉽게 말해서 2000년 밀레니엄 전에 읽었던 아날로그 느낌의 소설이 쇠퇴하는 듯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예전엔 읽지 않던 판타지 문학도 한두 권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져 이제는 재미와 적잖은 문학적 상상력의 세계에 동화되는 것 같다. 반면에 이 소설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는다』는 아날로그 향취가 듬뿍 배어 있는 작품이라서 독자 개인적으로는 소설 읽기의 만족감을 양껏 맛본 작품 중 손꼽히는 책이다.
이 책은 100일 만에 100억 원씩을 손에 쥐게 되는 세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인간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꿈을 꾸는 능력이 남아 있는 한 인생은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니체처럼 살다가 장자(莊子)처럼 죽음을 맞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곁들였는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소설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책 머리에」에 남겼다. 저자는 "이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려면 100억원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누가 과연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작가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그런 꿈도 못 꾸냐?"
저자는 독자들에게도 떼돈을 버는 신나는 간접체험을 안겨주고도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소설은 니체처럼 불같이 살다가 장자처럼 바람같이 사라져간 한 사나이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이 100일 동안 100억 원씩의 목돈을 거머쥐는 이야기이다. 영화 조감독을 하다가 은퇴한 송진우는 무료한 생활을 면하기 위해 춤을 배우려고 댄스학원에 등록한다. 충무로 영화계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다가 감독이 되지 못하고 밀려난 인물이다.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기생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지만 영화감독의 꿈을 접지 못했다. 춤선생 박영준으로부터 부동산 사기극의 제안을 받고 영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부동산 사기극을 연출한다. 거기서 학원장이 박영준을 만나게 되는데 그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박영준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1980년대 해병대 북파부대인 망치부대에서 훈련을 받았고 제대했으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동산 시행사에 들어가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며 부동산 사기수법을 배웠다. 군대에서 육체의 극한에 이르는 체험을 했고, 경찰의 수배를 받아 깊은 산속에 숨어 지내며 불교와 장자를 공부하며 남다른 인생관을 가지게 된다. 거기서 불같이 살아왔지만 죽게 될 때는 바람같이 사라지겠다는 철학을 확립한다. 감옥 생할을 끝내고는 폭력 세계와 손을 떼고 춤을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다가 진우와 정식을 만나 부동산 사기 수법을 전수한다.
송진우는 영화연출 경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이 꾸미는 부동산 사기극의 연출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못한 진우는 이런 제의를 받아들이고, 이 사기극에 출연할 인물을 캐스팅하기 위해 거리를 쏘다닌다. 그러다가 강남의 교보문고에서 서정식을 만나게 된다. 이제 막 소설가의 길에 들어선 정식이 처음에는 영화의 주연을 맡는 것으로 알고 진우의 제안에 응했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사기극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작업에 동참한다.
당시에 서정식은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곧 죽을 사람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는 자포자기적인 심정에서 응하게 된 것이다. 서정식은 대학을 중퇴하고 변두리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지내며 어렵게 살아간다. 문예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에 들어섰지만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사기극의 주인공을 찾던 송진우의 눈에 띄어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조상으로부터 넓은 땅을 물려받은 부재지주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쓰고자 했던 흥미로운 인간상을 발견하고 그를 모델로 하는 장편소설을 쓰게 되는데 바로 춤선생 박영준이다.
서정식은 이 사기극을 기획한 박영준을 만나 그에게서 소설의 주인공이 될만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그를 모델로 장편소설을 쓰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러너스 하이 작전’이라고 명명한 부동산 사기극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이 작전에는 건설회사의 사장인 오영환이 개입하게 되는데, 그는 꼬리를 감추고 싶어 하는 불법자금을 끌어들여 거래를 성립시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윤명희는 박영준이 운영하는 댄스학원의 부원장으로 박영준과 내연관계로 부부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고 춤을 배우러 온 송진우와 애인 관계를 맺게 된다. 나중에서야 폐암에 걸려 죽어가는 영준이 의도적으로 진우와 인연을 맺도록 사주했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한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오직 박영준 한 사람만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올리비아 화이트(한국명 백리아) 는 미국 원어민 강사로 20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와 자수성가했다. 한국인과 결혼하고 귀화했으나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중 같은 학원에서 근무하던 서정식과 친해지고 서정식이 영화를 찍는다는 말에 속아 부동산 사기극에 본의 아니게 참여하게 된다. 오영환은 재벌급 건설회사의 사장이었지만 회사가 부도 직전에 이르게 되자 과거 부동산 시행사에서 알고 지내던 박영준과 부동산 사기극을 기획하고 지휘한다. 세종시 인근의 아파트 부지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불법 자금을 끌어들여 편취하려고 한다. 여기서 정식은 올리비아을 대동하고 나타나 미국에서 온 지주 행세를 하며 땅의 매매계약을 체결하려 한다.
6명의 캐릭터는 특별히 독특하지는 않고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오히려 평범한 인물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진실은 돈입니다. 우리는 그 유일한 진실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예요. 즉 우리의 몸짓은 이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예술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진우와 정식을 향해 영준이 던지는 메시지는 사기 범죄를 포장하기 위한 궤변이지만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 현실에 대한 반어로 풀이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이들의 사기 범죄 행각은 범법이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범죄라고 다른 분석을 내놓을 수 있다.
저자 : 이동재
이 책의 지은이 이동재(李東載)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해병대 중위로 전역했다. 오랜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한 뒤, 학원에서 논술을 강의했다. 장편소설로는 《시인과 원시인》《에덴을 향하여》《미셸을 기다리며》《내 영혼의 슬픈 사랑》을 집필했다. 저자는 오랜 교사 생활의 경험을 살려 학생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책을 기획 및 저술도 병행하고 있다. 학습 관련 저서로는 《논술 815》 《초공부법》 《주니어 논술》 《공부해야 하는 30가지 이유》 《공부 잘하는 30가지 방법》 《성적을 올리는 노트 정리법》 등이 있다. 현재는 교직에서 은퇴하고 다양한 분야의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