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무원의 우울 - 오늘도 나는 상처받은 어린 나를 위로한다
정유라 지음 / 크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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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느 공무원의 우울』은 부모의 폭력 속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다 자라지 못한 채 커 버린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는 글이다. 나는 28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8년 차 공무원이다. '공무원'과 '우울증'과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지만 치료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또 현직 공무원으로서 치료 과정에 쓴 글이라 '공무원'을 제목에 붙였을 뿐이다.

이 책은 자서전적 에세이로서 책 속의 '나'는 저자이다. 저자는 오랜 우울의 시작을 찾아, 끝내기 위해 기억 조각 모음을 해 보기로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기억이 형성되기 훨씬 전부터 집에서는 늘 폭력이 난무했다고 한다. 아빠의 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엄마의 폭력은 나를 향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내 우울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슬프게도(?) 나는 부모에게 이렇게 당하고도 아직 그들을 외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로부터 현재까지 하나의 글로 읽어 보고 끝내고 싶었다고 한다. 뭔가 글을 쓰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면,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 주고 나면 마음이 나아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기억 조각들은 저자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나를 위로하고 치료에 도움을 줄까?

 


 

대개의 우울증 환자를 보면 어렸을 적 '폭력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저자는 우울증이 시작된 건 언제부터였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이유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져 엄마의 무르팍에 고개를 처박고 울었던 12살 때부터라고 짐작한다. 정말 그때부터였다면 28년 째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괜찮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터져 버렸다.

책에 따르면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는 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저자의 마음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 채 곪아 터졌고, 그 평온한 날들과 마음의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 시도를 했다. 하지만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뛰쳐나오게 만든 건 생존 본능이었을까 미련이었을까. 그제야 저자는 이 우울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는지 알고 싶어졌다. 왜 부모와의 절연보다 자살이 먼저였을까. 왜 부모와의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는 걸까. 그때부터 완전한 죽음을 위해, 오래된 우울의 시작을 찾아 끝내기 위해 기억 조각을 모아 맞추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기억을 하나씩 꺼내 보는 과정은 꽤 고생스러웠다고 저자는 말한다. 잊었던 기억들을 되살리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을 끄집어내고 기억을 헤집을수록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아 그 사실을 직시하게 되면 우울의 시작을 찾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울의 시작을 찾아 끝을 내면 과거의 자신을 놓아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자신이 엄마의 우울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엄마의 불행은 폭력적이고 변변치 않은 아빠를 만나 시작되었고, 자신과 남동생을 뜻대로 키워 남편의 부재를 채워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결국 엄마는 한번 시작된 불행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엄마는 잘못된 방식의 과도한 사랑으로 엄마의 뜻대로 커야 했고, 엄마의 뜻대로 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행위는 자식에게 불안과 우울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그걸 안다면 자식에게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지만.

 


 

저자는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겪었던 일화들을 기억 가능한 것들은 모두 꺼낸다. 부모의 영향으로 자신이 성장하면서 정신병자가 아닐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 하니 강렬한 트라우마가 있었을 것 같다는 것은 독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저자의 아픈 기억들 중에는 부모에게 사랑받은 기억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부모는 자식을 분명 사랑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고백했을 때도 부모는 가슴을 치며 자신들을 용서하라고 했다. 부모도 자식을 사랑했고 자식도 부모를 사랑했지만,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았다. 아빠는 자식이 원하는 사랑을 줄 능력이 없었고, 엄마의 사랑은 돈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방향마저도 아빠와 남동생이었다. 저자는 상처를 준 부모였지만 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썼다. 언젠가는 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닿지 않는 사랑을, 응답 없는 외사랑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상처받았던 어린 저자를 위로하고 우울의 시작을 찾아 끝내기 위해 써 내려간 이 글은 부모를 향한 외사랑을 끝내기 위한 글이 되었다.

 


 

기억 조각 모음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저자는 자해 충동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언제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다만 상처받은 어린 시절의 내가 현재의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그건 과거의 나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주문처럼 외우는 이 위로로 언젠가 정말 괜찮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아픈 기억들을 지닌 채 성장한 저자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상처를 극복하는지 가만히 저자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이 세상에 부모 때문에 불우한 어린 아이가 없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저자와 비슷한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글을 마치고 두어 달이 지났지만 저자는 아직도 자해 충동과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고 털어놓는다. 아직 치료 중이지,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거나 흐느껴 울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의 정신과적인 증상에 대해 끝없는 치유 노력은 매일 그가 원하는 그곳에 가까이 다가섬을 책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치열한 그의 노력은 희망처럼 '강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내 과거가 담긴 찢긴 일기장과 그 외 몇 권의 일기장은 안 보기로 결정했다. 그건 과거의 나라는 걸 받아들였다. 이제 현재의 나를 위해, 미래의 나를 위해 살아가 보기로 다짐했다. 언제 상처 받은 어린 내가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 또 언젠가 다시 자살 충동이 슬며시 올라올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옆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믿음직한 연인이 있다. 이제야 주변에 날 사랑해주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제 그들에게 내가 응답할 차례다. 꾸준히 심리 상담 치료와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사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때까지 버텨보려 한다. 점점 강해지는 나를 희망한다."(p.197)

 

저자 : 정유라

 

저는 하자 있는 인간입니다. 치유할 수 없는 하자죠.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깊은 흉터를 남깁니다. 흉터가 욱신거릴 때마다 저는 불안과 혼란에 빠집니다. 언젠가 아프지 않은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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