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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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우리 사회에서 잘 쓰지 않은 용어가 '간통'과 '불륜' 등 법과 윤리적 차원에서 금기시했던 남녀간 문제다. 둘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지만 간통은 법에서 사용하던 단어고 불륜은 사회적으로 하는 말로서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간통죄'가 지난 2015년 폐지됨으로써 이 용어들도 점차 사라지는 말이 돼가는 것 같다. 물론 법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간통이나 불륜 행위에 대해 완전히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민사 문제라든지 보상을 받는 제도는 남아 있다. 이미 혼인 관계는 무너진 대신 금전적 보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법은 사회적 현실이 달라질 경우 이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큰 혼란을 겪지 않고 법 제도로 안착되는 듯한 느낌이다. 간통죄가 폐지 논란에 휩싸인 것은 혼인 외 상대와의 간음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여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출발한 법이라고 한다. 함께 없어진 '혼인 빙자 간음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고 서로 상대적인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대체법(금전 보상)으로 처벌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귀책 사유를 가진 편에서는 재산 분배나 위자료 등에서 일방적인 책임을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 『웨하스 의자』는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2001년 소설이다.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두 사람(중년의 독신 여성과 딸이 있는 유부남)의 사랑을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간명하고 명징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화가이자 스카프, 우산 디자이너인 여자의 일상은 고요하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애인을 기다리고 가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며, 동생의 연애에 귀 기울인다. 얼핏 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가 지속되지만, 애인의 사랑 안에서만 숨 쉴 수 있는 여자는 자신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모의 보호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를 지탱할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여자의 내면. 그녀가 어른이기를 주장하고, 이 사랑을 벗어나려 할 때 그녀에게는 죽음과도 같은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선택한 사랑의 마지막 모습은 어떤 것일까. 조그맣고 예쁘지만,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웨하스 의자’와 같은 절망 속에서, 그 절망조차 문제 삼지 않고 자신을 긍정하는 강함. ‘사랑’ 혹은 ‘절망’ 그 사이에서 지극히 고독함을 고백하고 있는 이 소설은, 읽고 나면 한없이 쓸쓸하지만, 또 따스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번역가 김난주의 꼼꼼한 번역도 더 다듬어졌다. 표지는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이오의 작품이라고 한다.

 


 

'웨하스 의자'는 은유적 상징을 갖고 있다. 저자는 소설 안에서 그 은유의 뜻을 내보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그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앞에 있지만-그리고 당연히 의자지만-절대 앉을 수 없다."

웨하스 의자는 말 그대로 과자 '웨하스'와 '의자'의 합성어이다. 과자로 만든 의자는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 과자로 만든 의자니까 보기에는 예쁘고 갖고 싶고 달콤한 향이 느껴질지 몰라도 절대로 앉을 수는 없다. 의자란 본질적 속성에 충실하지 못하다. 그리고 곧 부서지고 부식되고 마는 웨하스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시간이란 것에 귀속된다. 끝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 제목이 암시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 근본적인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며, 그 문제로 인해 언젠가는 끝을 맞게 되는 상황이 오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초판 편집자는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얘기하면서 현실의 본질적인 고독과 결핍, 그리고 소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대해 빼놓을 수 없다. 대표작 『냉정과 열정 사이』로 에쿠니 가오리는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수성을 흔들어놓으며 독자들에게 어필되었지만, 같은 ‘사랑’이라는 소재임에도 호모 남편과 알코올 중독자 아내, 그리고 남편의 애인이라는 상식 너머에 있는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반짝반짝 빛나는』이나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기묘한 우정을 키운 리카와 하나코가 등장하는 『낙하하는 저녁』 같은 작품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웨하스 의자』에서도 에쿠니 가오리는 사회적 표면으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상황, 사람들이 미처 모른 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살며시 표면으로 드러내 보이며 그 본질에 대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동생이 대학원생과 헤어졌다고 한다. (…중략…)

대학원생에게 4년이나 사귄 여자가 있단다.

‘그게 이유야?’ (…중략…) 동생은 분개하고 있다. (…중략…)

4년을 사귀었다면, 아마도 그는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네가 그 남자를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그 남자가 너를 좋아하는 감정은 어떻게 되는데?’

‘몰라, 다 끝났어.’ 동생이 말한다.

‘나는 언니하고 달라. 그런 거 꼬치꼬치 안 따져.’ (p.96~97)

 


 

이 작품 발표 당시와 지금과는 20년이 넘는 시간의 차이가 있다. 당시에도 지금도 이 작품은 흔히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부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 가정을 가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문학의 사회학적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본다. 물론, 저자는 그들의 관계가 지극히 합리적이라거나 행복한

결말이 기다린다는 식의 청사진을 내놓지 않는다. 단지, 어쩔 수 없이 사랑한 사람이 ‘부인이 있는 남자’였을 뿐인 한 여자가 있고, 그녀의 사랑과 주변에 대해 고운 시선으로 바라봐줄 뿐이다. 고통과 슬픔이 예정돼 있다 해도 소중하게 다가온 사랑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맞이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한 개인으로써 누구나가 지켜야 할 법이 있고,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도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을 위해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며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관계는 어찌보면, 결국 소외된 사랑의 한 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개정판을 내며 편집자는 약간의 수정을 가했음을 이처럼 소개한다.

 

"17년 전 처음 소개된 에쿠니 가오리의 『웨하스 의자』가 세월의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해석과 함께 리커버 개정판으로 조금 더 꼼꼼하게 다듬어졌다. 역자의 더욱 세밀하고 예민한 언어로 새롭게 탄생한 『웨하스 의자』를 소개한다."

 


 

또한 주인공은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래 전 아빠가 가르쳐 준 대로 죽는 건 슬픈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담담하고 담백한 힘에서 주인공의 사랑은 더욱 선명해지고 강인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주인공이 사랑과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다정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웨하스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을 수는 없지만,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 홍차 한 잔에 각설탕과 웨하스를 곁들여 달콤함을 음미하는 순간을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사랑을 왜 하게 되는가. 그것은 사람간의 관계에서 자유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장 취약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상태. 어쩌면 이것은 ‘자유’라는 것으로도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세계를 짓는다는 게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서 지속가능한, 혹은 뭔가 강한 유대에서 오는 편안함. 아무리 난리를 쳐도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독자는 아무 이해 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다는 생각에서 서서히 균열이 옴을 느낀다. 세월 탓인가, 사회 탓인가... 재미 있게 읽은 이 소설의 독자로서 이런 문제를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남 탓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저자 :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3),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 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 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역자 : 김난주

역자 김난주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 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오쓰마 여자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좌안 1·2』, 『낙하하는 저녁』, 『소란한 보통날』, 『홀리 가든』, 『부드러운 양상추』, 『반짝 반짝 빛나는』, 『수박 향기』, 『제비꽃 설탕 절임』, 『등 뒤의 기억』,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겐지 이야기』, 『모래의 여자』, 『별을 담은 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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