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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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재 열전』은 조선시대 천재적 자질로 우리 역사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조선시대 인물 9명에 대한 탐구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천재'의 정의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 신정일은 프랑스 영화감독 장 콕토가 정의한 바 ‘불타는 서정의 순간’과 시인 생 종 페르스가 언급한 ‘순수한 벼락 같은 것’이란 인용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은유적 표현으로 비유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진정한 천재란 무엇인가?와 그들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탐색 연구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천재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천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되짚어 보여준다. 또한 도보여행가로도 유명한 저자답게 한국 역사 속 천재들의 진솔한 삶의 궤적을 실제로 따라가면서 새로운 시대의 천재상을 도출해내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기록으로 규명했다.

 


 

『닥터 사이언스』 사전에 따르면 천재는 과거의 유산이지만 전통 등으로 제시된 낡은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으며 당대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천재성의 징후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고 능력과 이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천재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다. 대표적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찰스 다윈, 이삭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을 들었다. 사전에는 ‘천재성은 사회의 나아갈 바를 밝혀주는 지적으로 높은 창조성을 보여주는 능력을 말한다.’ 천재는 과거의 유산이다. 하지만 전통 등으로 제시된 낡은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으며 당대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조선시대 천재라고 다를 바 없다. 서양의 개념으로 말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같은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는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서양의 천재라는 사람들과 달리 왜 우리 조선시대의 천재들은 대체로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이다. 그러나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기에 더 깊은 탐구의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역사 기록에 의해 밝혀진 조선시대의 삶은 대체로 불우했다. 가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가 선택한 조선 천재들은 김시습, 이율곡, 정철, 허난설헌, 정약용 등 9명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는 조선 초기 천재로 널리 알려진 김시습의 작품이다. 김시습은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혼자 글을 깨칠 정도로 자질이 남달랐다. ‘시습(時習)’이라는 이름도 옆집 사람이 ‘배우면 곧 익힌다’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다. 온 장안에 시습이라는 아이가 뛰어난 신동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세종이 그를 시험하고는 감탄하여 비단 50필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시습은 세살 때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한다.

어느 날, 김시습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시는 어떻게 짓습니까?" 할아버지가 "일곱 글자를 이어놓은 것을 시라고 한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일곱 자의 첫 자를 불러보십시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봄 춘(春) 자를 부르니, 곧 시를 짓기를 "봄비가 새 휘장 밖으로 내리니 기운이 열리도다"라고 하자,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탄복했다. 이는 일화를 기록한 데서 비롯되었다.

"김시습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일어난 해는 그의 나이 21세가 되던 1455년(단종 3년)이었다. 그때의 상황이 「행적」에 실려 있다. 서울에 다녀온 사람이 전하는 말 중에 세조가 단종에게 임금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김시습은 문을 굳게 닫고서 나오지 않은 지 3일 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버리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며 더러운 뒷간에 빠졌다가 도망하여 머리를 깎고 스스로를 설잠(雪岑)이라고 불렀다."

 


 

『조선 천재 열전』은 시대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여러 천재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피바람 부는 정쟁의 한가운데 있었던 정철, 제주도의 쓸쓸한 오막살이에서 추사체를 완성한 예술가 김정희, 유배 생활 가운데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 수많은 저술로 우리 역사에 커다란 획을 남긴 정약용까지, 여러 천재들의 삶은 대부분 평탄치 못했다. 어쩌면 고독한 가시밭길을 걷는 게 천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의 질곡에 휩쓸리는 가운데 절망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보시키려 노력한 인물이야말로 진정한 천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산초당으로 온 후 정약용은 비로소 마음 놓고 사색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본격적으로 연구와 저술에 몰두할 여건을 갖게 되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산책길과 귤동마을 앞 구강포 바다, 스스로 가꾼 초당의 조촐한 정원 속에서 유배객의 울분과 초조함을 달랠 수 있었다. 또한 유배 초기에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해남 연동리의 외가에서도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는데, 그 가운데 큰 도움은 윤선도에서 윤두서에 이르는 동안에 모아졌던 외가의 책을 가져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여류 시인 허난설헌도 탐구했다.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천품으로 유명한 허난설헌은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粱文)」이라는 글을 지어 여신동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상량문’이란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 의식을 위한 글인데, 그녀가 지은 상량문은 상상 속 신선 세계를 배경으로 여러 신선들의 생활을 묘사하고, 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광한전’이라는 궁궐을 짓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은 주옥같은 시들이 담긴 『난설헌집』은 조선을 넘어 중국에까지 알려져, 당시 낙양의 종이값을 올려놓았다고 할 만큼 극찬을 받았다.

 

"허난설헌은 동생 허균과 같이 이달에게 시를 배웠으며, 열다섯 살 때 안동김씨(安東金氏)였던 김성립과 결혼했다. 김성립은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관저작에 올랐다. 당시 양반가 대다수가 여자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시기에, 더더구나 시를 쓰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허난설헌의 시어머니는 지식인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갈등의 골이 깊었다. 또한 남편 김성립 역시 그런 아내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보다는 과거 공부를 핑계 삼아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저자는 또 천재 문장가로 이산해를 꼽고 있다. 『토정비결』을 지은 이지함은 조선의 천재 문장가로 이름 높은 조카 이산해가 태어났을 때 우는 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가 기특하고 영리하니 꼭 잘 보호하십시오, 우리 문화가 이로부터 다시 흥할 것입니다.” 또한 이산해는 다섯 살에 병풍에 직접 글을 썼는데, 운필하는 것이 귀신같아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신동으로 여겼다.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 이익 역시 『성호사설』 ‘신동’ 조에 김시습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로 이산해를 꼽았다. 을사조약 소식을 듣고 자결하여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널리 알려진 황현은 다섯 살에 혼자 집에 남았을 때, 숯으로 창과 벽에다 빈자리 하나 없이 글씨 같은 것을 가득 채워놓았다. 또한 백일장에 나갔을 때 필법이 너무나 뛰어나서 ‘광양의 황신동’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조선의 역사를 그물코처럼 촘촘히 기록한 『매천야록』을 남긴 조선의 마지막 천재였다.

 

"추사의 학문의 핵심은 실천에 있었다. 성리학적 공론을 배격하고 실질과 실용을 중시했기 때문에 진흥왕 순수비나 그 외의 사실에서 보듯 금석학이나 역사학도 실증을 통해 분석했다. 그는 시도(詩道)에 대해서도 당시의 고증학에서 그러했듯이 철저한 정도(正道)의 수련을 강조했다. 스승인 옹방강으로부터 소식과 두보에까지 폭넓게 이어지는 것을 시도의 올바른 이상으로 삼았다. 추사의 시상이 실사구시에 충실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추사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시선제가총론(詩選諸家總論)』을 보면 추사가 추구했던 시론을 여실히 볼 수 있다."

 


 

저자 : 신정일

 

문화사회학자.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하는 작가이자 도보여행가이기도 하다.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한국의 산 500여 곳을 오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옛길인 영남·관동·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했으며, 부산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걷고서 해파랑길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2005년에 시작된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대표를 맡고 있으며,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_우리 땅 걷기’에도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불러온 도보 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고, 1989년부터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에 참가했고, 동학농민 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옛길을 재발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과 산림청 국가산림문화자산 심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기업, 지자체 등에서 강연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연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11권)와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 시리즈(3권), 『꿈속에서라도 꼭 한 번 살고 싶은 곳』, 『천재 허균』,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답사기』,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공주, 부여』 등 70여 권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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