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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 지우개 - 지워지지 않을 오늘의 행복을 당신에게
이정현 지음 / 떠오름 / 2021년 10월
평점 :

이 책 『나쁜 기억 지우개』는 우리를 괴롭히는 '나쁜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특별한 나쁜 일은 아니지만 기억속에 감정적으로 불쾌감 등 부정적 감정과,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 등이다. 이런 일들이 기억속을 비집고 나와 지금의 나에게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일으키면 그것은 나쁜 기억일 뿐이다. 애써 생각해내고 싶지 않은 '지나간 일'이다. 누구나 일상 생활을 하면서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겪는다.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기억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
신(神)이 우리에게 준 많은 것들 가운데 '망각'이라는 것도 있다. '잊는 것'이다. 그러나 잊었으면 좋겠지만 늘 좋은 일보다 나쁜 기억이 잘 잊혀지지 않는다. 나쁜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기억속에는 나쁜 기억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없애는 방법은 없는 걸까.

저자 이정현은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음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요. 지난 기억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온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내는 것이에요. 동시에, 온전한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제에서 한 발짝 멀어지는 것도 좋아요.”라고 말한다. 저자의 얘기가 의학적으로 맞든 맞지 않든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안고 있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슬픈 기억 등 모든 기억을 머릿속에 지니고 살아간다. 마치 묵혀있던 물건들이 되살아나듯,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중 나쁜 기억은 우리 마음속에 상처를 남겨 그때의 기억이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를, 금방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그때의 기억으로 마음의 상처가 더 선명해질 때도 있다. 상처받은 마음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삶 속에 그 상처로 인한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결국, 삶에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스스로가 안고 살아야 한다. 인간의 숙명이다.

저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에세이스트다. 이 책도 '기억'에 대해 얘기하지만 삶, 사람, 사랑을 대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중심으로 기억에 관한 단상들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지나간 나쁜 기억들은, 오늘의 내가 행복에 닿기 위한 가장 확실한 힌트가 되어준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저마다의 상실과 실패에 버거운 기억을 지닌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준다. 시간이 지나면 ‘나쁜 기억’도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누구나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은 묵직한 감동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구성된 이 책에는 계절마다 남아있는 저자의 기억들이 담겨 있다. 계절감에 들러붙은 사랑, 관계, 이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따스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라는 건, 그것이 슬프거나 즐겁거나 항상 애달프다. 그 애달픔이 우리의 마음을 돋아주고 소생시켜 준다. 온 마음으로 키워온 식물에 시든 잎을 잘라야 싱그러운 새잎을 볼 수 있고, 더불어 삶의 생기도 머금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간직된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돋아주고 새 삶을 피어나게 한다.

얼마 전 한 책에서 나쁜 기억을 없애는 방법의 하나를 읽은 적이 있다. 'EFT 기법(Emotional Freedom Techniques, 감정자유기법)'이라고 한다. 이 기법을 이용하면 지우개처럼 쓱쓱 지워진다고 한다. 이 기법은 주관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즉 원치 않는 감정과 기억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그 책에 따르면 이 기법을 사용하려면 먼저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어떤 고통을 주는 기억이 있다면 고통에 대한 지수를 측정하고 수용확언을 해야한다.
예를 들어 "나는 비록 어떤 문제에 대해 절망감 수치심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다. 그러면서 인체의 경혈을 연속적으로 두드리는 것이다. 눈썹부터 손날까지 혈자리를 두드려주면 된다. 이런 기법은 하나의 이론이며 각각 다른 감정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해 성공하는지는 확증되지 않았다. 실행 방법도 복잡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큰 유행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으로 안다.

이에 비해 저자의 방법은 우리에게 훨씬 설득력이 크다. 인문학적, 사색적 방법이다. 물론 의학적 요소가 들어가는 설명이지만 독자들의 마음에 쏘옥 들게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마음의 뼈’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래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만들고 가꾸다 보면 자신의 실체가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상대방의 다양한 기호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다 보면 가면만 있고, 실제 얼굴은 점점 더 작아지고 사라져 버려서 가면을 얼굴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뼈’는 속 빈 강정의 속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보여주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바로 자신의 가치이다.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부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부귀를, 어떤 사람은 봉사를, 어떤 사람은 가장 평범한 일상을, 어떤 사람을 권력을 추구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마음의 뼈’를 단단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시간이 흘러도 흐려지지 않는 지난 기억을 다루고 돌보는 방법이다.
“마음에도 뼈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첫 번째로 삼는 가치. (중략) 경험으로 인한 인식과 사고가 차츰 마음의 뼈를 만들고, 서서히 굳게 한다. 그곳에 무수한 가치의 근육이 붙어 뼈를 세우면, 그때 하나의 철학이 된다. (중략)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만들어진 ‘마음의 뼈’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함이다.”(p.20~21)

저자와 함께 책 속에서 사계절을 지나 촘촘히 생각이 접근했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덧 나쁜 일들을 기억해내는 것은 없어진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일상으로 생각을 바꿔나가다 보면 나쁜 기억이나 잔재들은 흔적도 없다. 저자의 책 읽기를 통해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읽어나간다면 어떤 방법보다 나쁜 기억은 쉽게 사라진다. 이 책이 가진 힘이다. 이 책을 쓴 에세이스트 '일상의 기록자' 이정현의 '글힘'이다.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도 다가올 일을 예측할 수도 없지만, 그 둘을 걱정하느라 지금을 망칠 수는 있다.
- 겨울, 「늘 잊게 되는 것」 중에서
당신에게도 당신의 걸음걸이가 있을 거다. 삶에 뒤처진다고 느껴질 때는 초조해하지 말고,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주변의 것에 짜 맞추느라 원래 내가 걷던 모습을 잃고 주저앉은 건 아닌지, 한번 뒤돌아보는 건 어떨까. 때로는 느린 게 더 빠를 때도 있다.
- 겨울, 「걸음걸이」 중에서
저자 : 이정현
사랑하는 것들에 마음을 다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는 사람. 잃지 않으려는 욕심보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서툴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 《함부로 설레는 마음》, 《달을 닮은 너에게》 등을 썼습니다. 메일링 서비스 〈일상 시선〉을 연재 중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