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
박시은 지음 / 아이콤마(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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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언제나 '기분 좋음'이다. 이 좋은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얼핏 생각하면 본능일 것 같다. 인간이 '사랑'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아마 지금까지 존속해오지 못하고 멸종했을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사랑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가져야 할 측은지심을 뛰어넘고 약한 자에게 느끼는 연민도 훌쩍 넘어선 인간 본성이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 그 사랑의 기억을 들춰보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기억이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지나간 첫사랑이나 옛사랑에서 느끼는 절절함과 순수함이 그래서 아름답다. 어린 시절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 있다. 그것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애틋하고 기억하고 싶은 사랑의 감정이다. 우정도 사랑의 한 표현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육체적 욕심이 전혀 관여하지 않기에 어쩌면 인간이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인류의 첫 서사시 〈길가메시〉도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독자는 〈길가메시〉를 처음 읽을 때 당황하기도 했지만 읽어나갈수록 당연한 것이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우정도 사랑의 한 방법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지만 늘상 마음 한구석에 늘 함께하며 언제나 독자에게 빛이 되어주는 존재는 '친구'였다. 이해 관계가 없고 순수했던 시절이라 더욱 애틋한 정이 더했고, 주는 것 이상 늘 받는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순수한 사랑이다. 그 친구와 독자의 관계는 세상의 표현대로 '친구'이지만 밑바탕에는 '사랑' 이상의 감정일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사연과 사정이 있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논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앞서 “그럼에도, 친구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바로 친구다. 피를 섞진 않았지만 어쩌면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람이면서 스스럼없이 속마음을 내비쳐도 부끄러울 게 없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다. '따뜻함'이라는 속성을 가진 신예 작가 박시은이 이해타산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스스로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게 어느 날 우연히 나타난 존재이면서, 수십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공유해온 ‘벗(friend)’에 관한 에세이를 선보였다.



그 시절 사랑했던 친구들과 장소들,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그곳에 유난히 빛나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 『빛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는 그 시절 사랑했던 친구와 장소를 하나둘 소환한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묶인 꽃다발을 선물 받듯, 친구들과 얽힌 우정과 사랑의 연대기들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그래도 조금씩 성장해 왔구나’를 느끼게 된다. 친구란 그렇게 나의 곁에서 우연히 함께 자리 잡아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아 주는, 빛의 속성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마음과 달리 상처받기 쉬운 세상이다. 학교생활 또는 직장 생활에서 겪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 등등 모든 관계에서 비롯된 트러블은 사람을 금세 지치게 하고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한다. 저자 박시은은 책을 통해 온갖 상처에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한줄기 맑은 빛을 선물한다. 나를 알아주는 친구,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 만나면 그저 이유 없이 좋은 친구는 그 존재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된다. 에세이이면서 마치 성장소설처럼 읽힌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보물 상자를 뒤지다 우연히 발견한 추억의 옛 물건을 보고 기쁨에 젖어들 듯 그 속에서 ‘힐링’이라는 작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마음 안에 숨어들어 간 순수를 다시 꺼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발견된 순수를 독자들도 가장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어린 시절 친구라고 마냥 좋았던 기억만 있지는 않다. 다소 의견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아무 일도 아닌 일로 다툰 기억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이 묻혀 있는 것은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안 문제만은 유독 감추어왔던 독자의 친구도, 독자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털어놓은 적도 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독자에게 “너도 나처럼 아픈 부분이 있을 거야, 언제든 얘기해, 내가 들어줄게"라는 말에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그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도 사랑이라는 감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 역시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괜찮아…….” 마냥 장밋빛 같을 것만 같던 시절에도 나름 진지하게 아프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무작정 가출했건만 한나절 만에 집에 돌아올 때도 그랬고, 반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던 때도 그랬다고 한다.




과거의 고민은 시간이 지나도 늘 그대로이듯, 직장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로 힘든 상황은 똑같이 반복되나 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친구란 무엇인지에 대해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부터 되짚어 본다. 힘들었던 시절 유일하게 손을 잡아주었던 친구. 한 때의 놀잇거리로 위험한 일을 부추기던 아이들에게는 없었던, 나를 걱정해주는 진심 어린 '눈빛'을 기억해내는 그 시절 저자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그곳에서 우리를 밝게 비추던 햇살은 유난히 맑게 '빛났다'고도 했다.

남녀 성별 차이는 있지만 '친구'에 대한 감정은 같은가 보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의 마지막 한 글자를 눈에 담을 때까지 온기가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우리는 언제부터 친구였을까?’와 두 번째 에피소드 ‘너와 함께 있으면 그냥 이유 없이 좋아’에서는 꼬꼬마 시절과 친구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여중생 시절의 어느 날부터 추억해 간다. 우리가 만나게 된 건 그냥 우연이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이 있을까? 친구란 어쩌면 우연히 한날 한자리에서 만나 나와 함께 자라가는 씨앗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저자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도 같다.



저자는 세 번째 에피소드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에서는 대학생이 되어 서로의 진로를 고민하며 점점 각자의 세계 속에 편입되기 시작할 무렵, 우리가 고민했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들과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날들을 떠올려본다. 네 번째 에피소드 ‘우리, 잘 살고 있는 거겠지?’에서는 이제 갓 사회생활이라는 망망대해에 뛰어들어 겪었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상들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호의와는 다르게 타인을 무시하기 일쑤고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서는 데 익숙한 ‘어둠’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사회에서는 가질 수 없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주고받은 시절은 유난히 빛나기 마련이다.

물론 숨이 턱턱 막히는 사회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이유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를 이해해주고 배려해 주는 친절한 사회 친구도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시금 친구의 존재를 떠올려 본다. ‘그래, 이해타산으로 만나게 된 사이이긴 하지만 직장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어!’라고 저자는 소심하게 외쳐본다. 마지막 에피소드 ‘나의 고백들, 반가운 너의 목소리’는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저자의 쑥스럽지만 정겨운 고백들이 이어진다. 나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너라면 어땠을까? 너도 이런 기분 든 적 있니? 저자의 짧은 에피소드 속에 스며들고 있는 와중에 '띵동'하며 문득 날아든 오래 잊고 지낸 친구의 반가운 문자 메시지처럼, 그렇게 친구는 함께 있지 않아도 늘 나의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만으로 반가운 이가 아닐까? 저자의 친구에 대한 경험은 초겨울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의 모습이 조금은 변할지라도 ‘소중함’이란 건 변치 않는다. 추억 속에,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기 마련이니까. 그때의 기억을 품고 미소를 지으며 또 소중한 장소를 만들어간다.”(p.49 「장미 동굴」 중에서)

“함께 있기만 해도 힘이 되는 사람.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게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받았던 힘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p.128 「첫 라디오 방송」 중에서)

저자 : 박시은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고 일어일문학과를 부전공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넌 작가가 되겠구나”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 오디오 드라마 각색 작가, 속기사, 에디터로도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사는 게 꿈이다. 누군가 몰래 간식을 주면 행복해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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