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용 식탁 - 빈속을 채우 듯 글로 서로를 달래는 곳
유부현.고경현.고지은 지음 / 지금이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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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제목 같은 이 책 『삼인용 식탁』은 에세이다. 어머니와 아들과 딸 3명이 한가족인 사람들이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지만 사실 아버지가 일찍 타계해 4인용이었던 식탁이 3인용으로 바뀌었고, 식탁이 밥 먹는 용도보다 글을 쓰고 가족끼리 글에 대해 토론도 하는 그런 식탁이다.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가족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어머니가 70대이고 아들 딸은 각각 40대이다. 어른도 한참 어른들이 왜 독립하지 않고 한가족으로 살고 있을까. 어른들이 왜 독립하지 않았을까는 개인사이니 중요하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왜 식탁이 글 쓰는 탁자로 변했을까가 궁금한 사항이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뭔가 사연이 있으니 제목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데 충분하다. 이런 궁금한 것은 책을 펼치면 금세 알 일이지만 속살을 보면 애틋한 정감이 살아나는 단란하고 삶에 치열한 노력이 돋보이는 가족이다. 그래서 이 제목도 더 한층 애정이 가고 가족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도 가능하다.



『삼인용 식탁』의 딸은 19년차 방송작가이다. 딸 입장에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힘들지만 어머니와 오빠를 생각하면 힘들다는 내색을 할 수도 없다. 각자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딸은 가족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인 ‘글’을 소개하고 함께 글을 써 토론하며 삶의 의욕을 되찾고 우울한 가족의 분위기도 웃음과 의욕이 넘치는 용기 가득한 가족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기록이다. 딸은 가장 먼저,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먼저 떠나시고 급격히 몸과 마음이 약해지신 엄마에게 ‘보조 작가’란 타이틀을 쥐어주고 다시 일어나게 했다. 그 다음은 코로나19로 일식집 운영에 큰 타격을 입어 좌절한 오빠에게 글로 울분을 토해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인용에서 삼인용으로 바뀌 식탁 위에서 세 가족은 속에만 쌓아두고 꺼내놓지 않았던 삶의 슬픔과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글로 풀어놓는다. 글 앞에서 혼자 울고 웃다가 서로의 글을 주고 받으며 ‘그래도 괜찮아. 앞으로 더 괜찮아질 거야’라고 토닥여주며 조용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빈속을 채우듯 글로 같이 살지만 때론 가장 멀게 느껴지는 가족을 달래는 일상을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권한다.



이 책의 주필 격인 딸은 노련하고 탁월한 방송작가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양희은·서경석의 여성시대’ 라디오 작가로 활동했고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서 하루에 프로그램 세 개의 원고를 쓰고 있다. 딸 고지은은 어느 날,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몸져누워 있는 엄마에게 ‘보조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해드렸다. 방송 대본의 소재를 찾는 일에서부터 문장을 완성하는 법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알려드리고, 그녀가 글쓰기 소재를 가져올 때마다 고료를 드렸다고 한다. ‘글’이라는 트레이너 덕분에 그녀는 단단해진 마음 근육으로 몸무게도 늘리고 다시 살아갈 힘을 냈다.

속 깊은 친구인 ‘글’의 다음 타깃은 서울에서 일식집을 운영 중인 오빠였다. ‘코로나19’라는 강력한 태풍을 맞아 빈 가게를 지키며 한숨만 늘어가던 오빠에게 서서히 글과 친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가 속에 있는 울분을 다 토해내고 가볍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던 자영업을 정리하고 현재 제주도로 이주해서,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며 리모델링 인테리어 일을 배우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한 방송 작가가 한집에 사는 가족에게 ‘온 가족 작가 되기 프로젝트’를 제안한 결과, 탄생한 책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된 책이기도 하다. 함께 먹은 밥그릇 수가 많고, 한 공간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은 각자 쓴 글을 피드백하며 얼마나 서로에 대해 모르고 살았는지 깨닫는다. 사인용이었던 식탁이 삼인용이 되고 집안의 대소사를 겪으며 속마음 감추기의 달인이 된 서로에게 마음을 들키는 일이 얼마나 시원한지도 알게 된다. 책을 집필하는 동안, 빈속이 채워지듯 삶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한 가족들은 아직까지 서로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혼자 혹은 따로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서점도 한 번 가보지 못하고 글 한 번 써 본 적 없이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던 넘버 2 오빠는 이렇게 고백한다. “누가 읽기를 바라는 글이 아닌, 멍든 사과처럼 곪아 터진 나를 위해 쓰는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그만큼 시퍼렇기만 했던 마음의 멍이 옅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자꾸만 쓰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장 가까운 타인인 가족과 식탁에 도란도란 모여 글을 쓰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 작가 가족처럼 온 가족이 모여 글을 쓰면 가슴 깊숙이 묻은 상처가 낫고 식구끼리 절로 화목해질 듯 하다”라고 말한 가수 양희은의 추천사가 예사롭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온 가족 작가 되기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자는 어쩌면 20년차 자영업자 넘버 2 오빠일지도 모른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그는 습관적으로 마시던 소주 대신 커피를 마시며 장사가 잘 될 줄 알고 사둔 3년치 예약노트 뒷면에 빼곡히 글을 채우며 중년의 고단함을 달래고, 먹고 사는 것에 대한 회의를 글 속에 풀어놓으며 팬데믹 시대에 걸맞는 방구석 글쓰기 여행을 즐긴다. 글이라는 숲길을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걸어갈 생각을 품고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조용한 희망’을 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방송 작가 동생은 글의 힘을 더 믿게 된다. 명랑해진 엄마의 웃음소리, 초밥을 짓듯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오빠의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넘버 3 딸은 바쁜 프리랜서 생활을 바다처럼 물 흐르듯 때론 나무처럼 꿋꿋하게 해나간다.

책은 여느 글쓰기 책들과 달리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공동 집필하면서 한번쯤은 가만히 서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진하게 전한다. 각 쳅터 끝에는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각자 가지고 있던 추억과 상처를 공유한다. 혼자가 된 엄마, 비혼 남매는 글이 주는 위로 덕분에 이제야 비로소 조용히 흘려 왔던 눈물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글을 쓰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각자의 꿈을 이야기한다. 자식들을 믿고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는 지혜로운 노인, 인생의 맛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푸드 칼럼니스트, 물질하는 글쟁이를 꿈꾸며 삼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 점심, 저녁 때론 브런치와 함께 글을 먹는 세 식구의 ‘행복한 글쓰기 시간’ 속으로 들어가며 저절로 미소를 띈다.



“어머니, 잠시 잊고 있었는데 한때는 제 꿈이 돈가스집 사장이 되는 거였어요. 글을 쓰면서 추억을 들추는 작업을 하다 보니 잊고 있던 꿈도 생각나고 돈가스를 자게 썰어서 입에 넣어 주시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다시 7살 아이로 잠시 돌아간 듯 싶습니다. 추억을 들추는 건 다소 낯간지럽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참 맛있는 시간이네요. 오늘 저녁은 아무래도 어머니, 지은이랑 같이 맛있는 돈가스를 먹어야겠습니다.”

- 「돈가스집 사장이 되고 싶었지요」 중에서

“방송작가로 20년 가까이 매일 글을 써왔지만 나는 이제야 ‘글’이란 친구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봅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사실을 전달하고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감성을 전하는 목적이 있는 글이 아닌,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해주고, 가만히 이야기를 나누게 해주고 때론 새하얀 종이 앞에서 훌쩍이는 우리를 보듬어주기도 하는 좋은 친구.”

- 「글에게 비는 마음」 중에서

“저희 가족의 글을 먼저 읽은 S언니로부터 “식탁에 내 의자도 하나 끼워넣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 힘이 됐습니다. 엄마로서, 자녀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풀어놓은 이야기가 공감을 얻는 것 같아서 우리만의 이야기가 되기보다는 되도록 많은 가정의 식탁에 당신들의 녹록지 않았을 삶이 가만히 풀어지길 바라봅니다. 우리가 글을 통해 받았던 치유와 위로와 새로운 소통이 주는 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런 바람으로, 여기, 당신의 의자를 남겨 놓습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유부현(넘버 1)

교육자 집안 출신으로 아이들이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IMF 이후 아이들을 졸업시키기 위해 자영업 세계에 뛰어 들었고, 최근까지 식당 운영을 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70대에 은퇴를 하게 됐다. ‘리어카와 비행기는 있어도 버스는 없었다’는 회고를 할 정도로 중간이 없는 삶, 인생의 희비 곡선이 컸다. 현재는 어느 덧 40대가 된 아들, 딸과 함께 쓴 첫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고 딸이 부여한 ‘보조작가’ 타이틀에 힘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저자 : 고경현(넘버 2)

서울 종로구에서 일식집을 운영하였고,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20년간 운영해 오던 식당을 정리, 자영업자의 길을 내려놓고 2021년 6월 제주로 이주했다. 서울토박이로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구옥과 폐가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인테리어 일을 배우는 중이다. 책 작업을 하며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자 : 고지은(넘버 3)

19년차 라디오 방송작가다.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양희은ㆍ서경석의 여성시대’를 거쳐 현재는 CBS, 국악방송, KBS에서 구성작가로 활동 중이다. 「여성가족부」 주최 “제22회 양성평등 미디어상” 최우수상, 「여성조선」, 「신협」 공동주최 “내 인생의 어부바, 에세이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물질하는 글쟁이, 깃털 같은 삶을 꿈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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