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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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캑터스』는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치와 경제 문제 등에도 저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다. 한 개인과 사회의 화해를 다룬다. 주인공 수잔은 마흔 다섯 살의 건강한 여성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외적으로도 어느 정도 매력이 있고 경제력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나 주변 사람들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 갇혀 세상과 불화하고 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빠진 사람이다.

마흔다섯 살 정도 된 사람이라면 이미 삶의 절반을 겪어본 시간들을 통해 자신만의 고집과 삶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와의 불화의 원인이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발달해도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그녀의 삶의 방식이 '외곬수'인 원인은 이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 융통성 없고 원칙주의자처럼 차갑고 건조해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꼭 닫고 사는 것으로 그려진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삶일지 몰라도 우리의 눈으로는 좀 '별난' 독불장군의 삶이다.



『캑터스』는 저자 사라 헤이우드의 데뷔 소설이라고 한다. 출간 즉시 15만 부 판매, 15개국에 판권 계약된 화제의 소설이다. 거기에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운영하는 독서 클럽인 ‘헬로 선샤인’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다.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화도 결정된 상태라고 한다. HBO의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로 에미상, 골든글로브, 비평가협회상 등 23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연기력뿐만 아니라 연출과 제작까지 인정받은 리즈 위더스푼의 합류 소식에 또 하나의 명작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수잔이 인생의 두 가지 사건을 맞이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엄마의 죽음과 결코 원치 않았던 ‘엄마’가 되는 것. 그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고향 버밍엄에서 알게 되는 또 다른 진실들이 그녀를 뒤흔들고 여기에 ‘롭’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매력적인 남성이 등장한다. 고독하고 인간미 없이 질서정연하기만 했던 한 여성이 사랑 넘치는 예측불가한 순간들을 맞닥뜨리며 겪는 가슴 벅찬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소설 제목의 '캑터스'는 식물도감에 따르면 그리스어 에리오(erion, 양모의 뜻)와 (선인장의 뜻)을 의미하는 'cactus'에서 유래하고, 자좌(刺座)에 양모(羊毛)상의 털이 있는 것에서 이름지어진 선인장이다. 표지에 있는 선인장이 캑터스라 불리우는 선인장인 듯하다. 캑터스는 기둥선인장아과 식물로 원산지는 파라과이, 브라질 남부에 3종(種)이 분포한다. 짧은 원통부터 점차적으로 긴원통상으로 된다. 꽃은 크고 넓은 누두상(漏斗狀)으로 황색이다. 꽃의 통부에는 갈색의 양모상(羊毛狀)의 털이 붙는다. 주두(柱頭)는 황색. 주두(柱頭)가 적색의 노토캑터스[Notocactus]와 구별된다. 저자가 주인공 수잔의 삶의 방식이나 성격을 은유하기 위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선인장의 성격이 대부분 그렇듯 혼자 물 없이도 생명력이 강하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몸에 가시가 돋쳐 있다.



소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살아가는 수잔이 용기 있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며 세상과의 화해를 통해 새로운 관계맺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와의 관계맺기에 대해 보여주는 성장 스토리다. 까칠한 선인장에도 꽃이 피어나듯,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사랑 가득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수잔과 그녀를 둘러싼 매력적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사라 헤이우드의 유쾌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마흔다섯 살의 수잔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고 사람들과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맺기보다는 아파트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을 더 즐기며 사는 매우 독립적인 여성이다.

그런 그녀가 애정을 쏟는 유일한 대상은 사무실과 집에 있는 선인장뿐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남에게 쉽게 원한을 품지 않는다. 의견 차이를 놓고 며칠씩 고민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의심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싸움에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도 아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원칙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예외는 있다. 누군가가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한다." 지극히 평범하며 개인적이며 정의감 있는 이 여성이 고백처럼 소설의 첫 장면을 장식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증오의 대상인 남동생 에드워드로부터 듣게 되고, 하필 그때 수잔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상황에 놓인다. 게다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엄마의 유언장과 엄마의 유산이 에드워드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어딘간 미심쩍은 유언장. 수잔은 분명 ‘사건’의 배후에 남동생 에드워드가 있을 거라 확신하고 직접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벗어나고 싶은 어린 시절의 기억, 단 한 번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남동생 에드워드, 그리고 ‘롭’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이다.

“있잖아, 수즈. 엄마 유언장 있어. 몇 주 전에 쓰셨어. 라디오에서 유언장을 꼭 써놔야 한다는 내용을 들으셨다나 봐. 나는 엄마한테 유언장은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필요하다고 그러시더라고. 엄마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는 누나도 잘 알잖아.”

나는 그의 목소리에 약간 방어기제가 깃들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그때 이상한 낌새를 챘던 건 아닐까?(p.20)



수잔은 가족이 함께 뭔가를 하면서 즐겁게 웃거나 어디를 간 기억조차 없다. 성장 배경이 그녀를 세상과 불화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란 짐작도 가능하다. 성인이 되어 가족을 이루는데 부정적인 수잔이기에 짐작 가능하다. 여기에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하나뿐인 남동생은 어린 시절 아팠다는 이유로 엄마의 과보호를 받아 누나의 모든 것에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었다. 동생과 사이가 좋을 리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이런 상태에 마지막까지 엄마는 유산을 동생에게 더 물려줌으로써 수잔으로 하여금 자신이 동생보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수잔이 돈에 욕심이 많지 않으면서도 기를 써서 유산에 이의를 제기한 이유에 설득력이 생긴다.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한 사람은 있었지만 결혼을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수잔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임신이 확인되면서 변화는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을 윗집의 두 아이 엄마 케이트에게 작은 도움을 주면서 시작된 관계는 뒷날 수잔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사람 간의 관계가 가슴을 아프게도 하지만, 관계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를 버티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또 새로운 마음으로 앞으로 살아나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움츠러들고 숨고 싶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 속에서 치유받고 성장한다. 수잔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용이리라. 매일 내리쬐는 직사광선이 선인장의 꽃을 피우게 만드는 것처럼 수잔에게도 따가운 햇살 같은 일들이 그녀의 삶에 내리쬐었고 그것은 그녀의 삶이 꽃 피울 수 있게 한다. 수잔의 삶의 이야기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부터 새롭게 시작될 것만 같다. 선인장 같았던 45세 예비 싱글 맘의 성장 이야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응당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 것 같다.

“결국 저는 그린 양의 인생에 그리고 아마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중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라서요. 그리고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직접 털어놓아야 하는지 계속 고민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어머님께서 비밀을 공개하시려고 했다,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래도록 심사숙고 끝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비밀 유지 의무보다는 진실을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좋아요. 다음 주 금요일 오후 어떠세요?” 내가 물었다.

“완벽합니다.” 그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친구나 친척을 데려오도록 하세요.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드실 겁니다.”(p.351~352)



“요즘 동화의 결말은 다양한 내용으로 바뀌었어요. 공주는 왕자와 함께해도 괜찮고, 하인과 함께해도 괜찮고,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도 괜찮아요. 또 다른 공주와 사랑에 빠지거나 고양이 여섯 마리를 키우며 살아도 되고, 자기가 왕자가 되겠다고 선언해도 돼요. 그렇다고 해서 더 페미니스트라거나 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단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그대로 살아가는 게 중요해요.”(p.243)

저자 : 사라 헤이우드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한 후, 런던과 버컨헤드에서 사무변호사로, 리버풀 톡스테스에서는 법률자문가로 활동했다. 현재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리버풀에 살고 있다. 《캑터스》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역자 : 김나연

영미문화와 영문학을 공부하고 번역에 처음 뜻을 품었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20세기 현대미국 소설을 전공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전문 번역가로서 첫발을 내딛었으며, 현재 출판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리뷰어 및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최강의 일머리》, 《부의 해부학》, 《혼자만의 시간을 탐닉하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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